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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상 소설가 Nov 18. 2020

엄마, 나 대신 울어줘서 고마웠어.

“  엄마, 그때 나 대신 울어줘서 고마웠어.

   그때 나 사실 많이 막막했어.  어떻게 살아야 하나?  누구랑 밥을 먹고, 얘기를 해야 하나? 그랬었거든.

   엄마가 내 마음을 알아줘서 견딜 수 있었어.  “    


        

이 곳 송도로 이사 오기 전

우리는 신혼살림을 시작했던 그곳에서 17년을 살았다.

남편은 십오 년이 넘게 시부모님과 가게를 운영했고

나는 인근 초등학교, 유치원, 학원으로 출강 영어 수업을, 우리 집에서는 과외 등을 하고 있었다.    

오랜 시간 한 동네에 거주를 하고 일터까지 있으면

그 동네 사람들 모두에게 나를 무방비로 노출하게 된다.

자영업자가 가게를 접고 다른 곳으로 일을 나가게 되더라도

세상은 좁고 좁아서 전에 왔었던 손님들과 우연히 마주칠 때가 있다.    


‘ 누구지? 어디에서 많이 본 사람인데.......  ’    


남편은 대번에 전에 왔었던 손님들을 기억했지만

기억하지 못해 호기심과 궁금함에 수 초간 남편을 응시하거나 뚫어지게 쳐다보는 사람들이 아주 많았다.


“ 안녕하세요 ” 반갑게 인사를 하거나 안부를 묻는 사람들은 만에 하나지만

남편은 너무 고맙고 반가워서 길거리 카페에 들어가 커피라도 한 잔 사주고 싶었다 했다.

눈인사나 가벼운 목례를 하는 사람도 드물고

거의 대다수의 사람들은 의문을 해결한 후 모르는 척 지나간다.    

그곳이 벌거벗은 목욕탕이나 스포츠클럽에서 운동 후 샤워실이면 아주 아주 난처하다.

자영업을 하는, 했던 사람들은 이 경험들을 한번 이상은 하게 된다.  

그것이 아무렇지 않은 사람이 있고, 고역인 사람이 있다.

우리 남편은 그 점이 불편했고, 새로운 곳에서의 삶을 시작하고 싶다고 했다.    


현재 시부모님은 강원도에 전원주택을 지어 살고 있지만

남편이 중학생 때부터 결혼 전까지 살아온 본가에는 도련님이 거주하고 있다.

동네를 다니다 보면 본가를 지나가게 마련인데 남편과 나는 본가를 보는 것이 썩 좋지 않았고

( 궁금하시면 맨 처음 에피소드 글 들을 보시면 됩니다. )

그 점도 이사를 결심하게 된 원인 중 하나였다.   


 

그러나 이사를 결정하게 결정적인 이유는 나의 일과 딸아이였다.

20 여념 넘게 아이들을 가르쳐왔기 때문에

주변 지인들로부터 자기 아이들을 가르쳐달라고 부탁을 받는 경우가 많았다.

딸아이가 유치원을 다닐 때부터 중학교까지

딸아이 친구들로 시작해서  그 형제자매들까지

아이들을 가르치다 보면 그 집안 사정에 대해 훤히 알게 된다.

어른들이 숨기고 싶은 이야기들을 아이들은 거침없이 말한다.


대화를 나눌 때

그들이 말하는 자신과 자녀가 바라보고 이야기하는 부모인 그들은 다른 경우가 매우 많았다.     

한 동네에서 딸아이와 유치원부터 초등학교 중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나에게 와서 수업을 받은 딸아이 친구들은  내 아이의 친구들이면서도 제자이기도 했다.

그 아이들이 내게는 소중했다.  


‘ 사교육 시장에서 제자가 웬 말이냐? ’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강사이면서도 친구 엄마. 동네에 사는 재미있고 푸근한 아줌마가 되고 싶었다.    

꼬맹이부터 여중생까지 어렸을 적부터 봐온 아이들이기 때문에

나에게는 흔히 말하는 중학생이 아닌 코찔찔이 초등학교 1학년 애기들로만 보였다.   

 

“  너는 교사가 아니라 강사야.  그렇게 정 주면 안 돼.  ”    


남편은 매번 그렇게 나에게 말했으면서도 내가 아이들을 데리고 워터파크, 스키장, 놀이공원에 데리고 다니면

군말 없이 콘도를 예약해주고, 기사 노릇까지 해주었다.

아이들은 그렇게 함께 자라났고

그 아이들의 엄마와 썩 친한 사이는 아니어도 오가다 인사를 나누고,

도움이 필요할 때 전화를 나눌 정도의 관계는 유지하고 있었다.   

 

딸아이를 학원에 보내지 않아 왔고

딸 친구들 엄마가 부탁을 해와 딸과 함께 아이들을 가르쳤는데

우리 아이가 속해있는 팀은 딸 친구 2명, 중 1 동생, 중 3 언니 이렇게 5명이었다.    

무난히 잘 지내다가

언제부턴가 수업시간에 이상한 기운이 흐르기 시작했다.

딸과 공부를 하던 아이들의 어머님들은 학년말까지 속진을 해주길 부탁했고

나도 잘 마무리하고 싶은 마음에 진도를 빠르게 나가고 있었다.    

진도가 빠르면 그만큼 숙제의 양이 많아지게 마련이다.


딸아이는 착실히 숙제를 해오고 있었지만 아이들은 숙제를 안 해오고 있었다.

숙제를 다 할 때까지 집에 보내지 않고, 평일에도 보강을 하고, 주말에도 수업을 하면서

묘한 기운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특히나 딸 친구 2명이 급속도로 친해지며 딸아이가 말을 걸어도 대답도 하지 않고 본체만체 대할 때도 있었다.    

아이들끼리 ‘ 무슨 일이 있었나? ’ 하면서도 예민한 여중생 시기이다 보니 다시 잘 지내겠지 하면서 넘겨버렸다.    

“  엄마, 그 애들 나랑 얘기를 잘  안 해.  반에 다른 친구들이랑 친해져서 그 애들끼리만 놀아.

   나는 그 아이들 말고 다른 아이들이랑 놀아.  “

“  그래?  왜 그러지?  다른 아이들이랑 노는 건 괜찮아?  ”

“  응, 괜찮아.  ”

“  네가 말실수를 한 적은 없는지, 친구 마음을 상하게 한 적은 없는지. 한번 잘 생각해봐.  

   만약 그랬다면 사과하면 되고.  잘 지내려고 노력해봐.  “

“  알았어.  ”    


딸아이는 자기 마음에 들지 않으면 톡톡 쏘는 성격도, 자기주장이 강한 면도 있었고

외동으로 부족함이 없이 자라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것을 알고 있기에 노심초사 지켜봤다.

내 자식이지만 나도 딸의 단점은 알고 있기에

모든 걸 남의 자식 때문이라고 말하는 부모는 되기 싫었다.    

그러다




‘  아, 내가 잘못 생각했구나.  

   우리 딸의 잘못만은 아니었구나.  ’  

   후회할 일이 생기고 말았다.    


당시 우리 식구들은 스마트폰을 공유하는 사이였고

여중생들이 수다를 떠는 페이스북 메신저 ( 일명 페메 )를 딸아이도 그 아이들과 하는 사이였다.

딸아이의 표정이 전처럼 밝지 않기에 스마트 몬의 채팅창을 보여달라고 했다.

나는 그 채팅 내용을 보고 기절할 뻔 놀랬다.

일방적으로 딸을 몰아붙이는 아이들

딸은 사과를 하고 다시 잘 지내고 싶다고 하고

그 아이들은 절대 싫다고 하고 그러다

며칠이 지나자 다른 아이들과 잘 지내던 딸아이에게

다시 너에게 우리랑 놀 기회를 주겠다는 둥

딸아이를 만만히 보고 나누는 대화였다.    

그 아이들과는 관계를 끊었어야 했는데

네 잘못을 생각해보고 다시 잘 지내보라는 나의 조언에

딸아이는 일방적인 사과를 했던 것이다.


그제야 이해가 갔다.

수업시간에 딸이 말을 걸어도 딸아이를 병풍 보듯 했던 아이들

그러면서도 그 아이들은 내가 주는 간식을 먹고

배가 고프면 식탁 위의 간식도 심지어 냉장고의 우유나 음료수도 꺼내먹었다.

그 아이들은 딸아이와 나를 만만히 보고 있었던 것이다.    


“  엄마, 오늘 학교에서 일진 남자애들이 우리 반에 찾아와서 내 이름 부르면서

   뒷문을 걷어차고. 소리 지르고 그랬어.

   친구들이 화장실로 나를 찾으러 와서 지금 교실에 가면 안 된다고 말려서 교실에 안 갔지만

   너무 무서웠어.  “

“  왜? 그 애들이?  일진 남자애들이 왜 찾아와?  ”  

      

나에게 수업을 받던 딸 친구 2명 중 한 명은 딸과 같은 반이었고, 다른 한 명은 다른 반이었다.

같은 반에 다른 친구까지 셋이 지내다 다른 반 친구까지 네 명이서 친하게 지냈는데

세 명이 더 친해지고 딸아이가 그 무리에서 나오게 된 것이다.    

그 네 명 중 한 명이 일진 남자 무리 중 한 명을 사귀고 있었는데

자기 남자 친구에게 딸아이와 나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말하니

일진 남자애 무리들이 딸아이 반으로 찾아와 협박을 한 것이다.

종종 일진 남자나 여자애 무리들이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아이를 찾아와 복도에서 협박을 하고

공개적인 망신을 준다는 소리는 들었지만 그 일을 딸아이가 겪게 될 줄은 몰랐다.

또한 그 일을 겪을 이유도 없었다.    


더 이상 참을 수는 없었다.

담임 선생님께 전화를 해서 딸아이가 겪은 일들을 얘기했다.

다시 한번 이런 일이 있으면 학폭을 열어야 할 것 같다고    

가르치던 친구 두 명의 엄마들을 만나

집에 있던 교재를 주며 더 이상은 가르칠 수 없겠다고 말했다.

지내다 보면 다투고 싸우는 일은 있을 수 있지만

일진 무리까지 동원해 아이를 협박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고

그러나 3명의 엄마들의 반응은 가관이었다.   


 

세 명의 엄마들 모두 독실한 크리스천이면서 성당에서 세례를 받은 사람들이었다.

수요일, 금요일, 토요일  철야 예배와 주말예배

주말이면 교회나 성당을 다니며 봉사활동을 하는 사람들

과연 그들은 교회나 성당에서 무슨 설교를 듣고,

어떤 기도를 했던 것일까?   

 

“  남자애들 몇 명이 찾아와서 이름 부르고

    좀 그랬던 것 같은데,  별 것 아니었데요.  

   ** 엄마랑  딸아이가 너무 예민한 거 같아요.

  나는 평화주의자라  ** 엄마처럼 해결하지는 않아요.  ”     

  

자기 아이를 다른 아이가 별명을 부르고 놀려서 아이가 상처를 받았다고 하소연하던 엄마가

일진 남자아이들 7,8명이 찾아와 복도에서 난동을 피우는 것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을 했다.

   

‘  자기 아이 상처 받는 것에는 예민하면서도

    남의 아이 상처에는 참 태연하구나.  

   평화주의자라는 말을 제대로 알고서 저렇게

   지껄이는 걸까?

   부모들 반응이 이렇다면 우리 아이만으로 그치지 않을 텐데.  ’    


더 이상은 좋게 지낼 필요가 없었다.    


“  한번 더 이런 일이 벌어지면 학폭을 열거예요.

   변호사를 사서 고소를 할 수도 있어요.  

   더 이상 내 아이를 건드리면 가만있지 않을 거예요.  “    


단호하게 말하니 한 동안은 잠잠했고 딸아이를 건드리지 않았다.    

그러나 그 평화는 오래가지 않았다.

그 아이들은 딸아이를 건드리지 않고 다른 아이들을 건드리기 시작했다.


일진 남자 친구를 둔 여자 아이가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아이들이 있다고 남자 친구에게 말하면 일진 남자 친구나 일진무리들이 그 아이를 찾아가서 협박을 하고

집단으로 한 아이에게 린치를 가하는 상황이 자주 벌어졌다.

에서 학교로 전반적인 분위기가 점차 폭력적인 성향으로 물들어 가고 있었다.


그 아이의 엄마가 학교에 정식으로 문제를 제기해 조사가 이루어지고

다행히 학폭까지 열리지는 않았지만 담임 선생님은 애를 먹었으며

예상대로 학교는 엉망으로 가고 있었다,    

선생님들은 아이들 지도는 이미 포기했다고

담임을 맡지 않으려 애를 쓴다는 말을 운영위원회 엄마로부터 들었다.


화장실 앞 복도에서는 담배 연기가 자욱했고

아이들은 일진 무리를 동경하고 그들에게 보호받으려

그 무리에 들어가려 애를 썼다.

무리들은 점점 커져 수 십 명이 되어 복도를 활기치고 다녔다.  

아이들을 괴롭히는 행위는 집단적이고 집요했으며 지능적이었다.

무엇보다 문제는 가해학생들 부모님의 대처방법이었다.

  

‘  고등학교를 가면 그 아이들과 함께 다녀야 하는 데 아무래도 안 되겠다.  ‘    


남편과 한 동안 얘기를 나누다 이사를 가기로 결정했다.

먼저 이사를 간 지인들에게 도움을 청하고, 적당한 곳을 알아보고 이사를 갔다.    

이사를 와서 딸아이는 한 달 동안 고생을 했다.

코로나로 인해 원격 수업만 한 달

학원도 다니지 못해 집에만 있던 아이는 너무 심심하고 외롭다고 했다.  


  

코로나가 잠잠해지고 등교를 하자 딸아이는 빠르게 적응해 나갔다.

우리 집으로 딸아이 친구들이 놀러 와서 간식을 만들어 먹고 수다를 떨고, 아이도 친구 집에 놀러 가고

학원을 가고, 카페를 가고, 떡볶이를 먹으러 다니고

예전의 일상으로 돌아왔다.    

남편, 나, 무엇보다 딸아이가 너무나 좋아했다.    


“  엄마, 우리 이사 정말 잘 왔어.  더 일찍 왔으면 좋았을 텐데.

   아이들이 착하고 순해.  너무 좋아.  공부도 잘하고, 열심히 하면서 어떻게 이렇게 착하지?  “    


딸아이는 친구들이 놀랍다고 까지 했다.

   

“  그래, 정말 잘 됐다.  엄마랑 아빠도 너무 좋아.  ”    

        

나는 딸아이와 자주 포옹하고 뽀뽀를 한다.

아침에 자고 있는 아이에게 뽀뽀 세례를 퍼부으면

잠이 덜 깬 목소리로    “ 이제 그만~~~  ”

하고 아이는 말한다.  그러면서도 뽀뽀세례를 강하게 거부하지는 않는다.


딸아이는 아빠와도 사이가 좋아서

내가 바쁠 때는 쇼핑이나 영화관 카페나 팬시점에 같이 가기도 한다.

아빠로부터 사랑을 받은 경험이 없는 나는 가끔 그런 부녀 사이가 너무 부럽기도 하다.   


 

얼마 전

남편의 늦은 퇴근으로 딸아이와 둘이서 저녁을 먹다 갑자기 아이가 말을 건넨다.    


“  엄마, 그때 내가 한 참 힘들 때 말이야.

   엄마가 내 대신 많이 울어주고 같이 힘들어해 줘서 너무 고마웠어.

   그때 말을 안 했지만 나 많이 힘들었거든

   점심을 누구랑 먹을지?  

  누구랑 얘기를 하고, 운동장에 나갈지?  

   너무 막막하고 두려웠어.

   근데 엄마가 나 대신 슬퍼하고, 걱정하고 위로해주니까

   난 참 잘 견딜 수 있었어.    

   엄마가 밤새 잠을 못 자고, 눈이 퉁퉁 붓고, 벌건 눈으로 나를 보는데  엄마가 얼마나 안쓰러웠는지.

   사실 난 그 정도로 난 힘들지 않았거든

   엄마가 너무 그러니까 난 좀 웃음이 나더라.  

   그러면서 엄마가 나를 정말 사랑하는 구나.  

   나보다 더 엄마가 힘들어하는구나.

   내가 힘을 내야겠다.  그 생각이 들었어.  “    


“  그래, 네가 나보다 낫다.  

   엄마는 그때 얼마나 힘들고 아팠는지 몰라.

   네 상처가 크고 깊을까 봐.

   여자아이들은 또래끼리 문제로 잘못된 선택을 하기도 해서

   엄마가 너를 잃어버릴까 봐 너무 두려웠어.  “    


“  엄마, 근데 정말 엄마가 생각할 정도로 그렇게 힘들 진 않았어. 큭큭큭~~

   나 여기로 전학 오면서 많이 생각했거든

   내 단점에 대해서 고쳐야겠다고, 다시 실수를 반복하지 말아야겠다고

   여기 아이들과 잘 지내야겠다고 말이야.

다행히 잘 지내고 있으니까  더 이상 걱정하지 마. “

“  응, 알았어.  ”    

  


나도 이곳으로 이사와 새로운 인연을 만나 무척이나 행복하다.    



오늘 아침

다시 시작된 기말고사 준비로 잠을 푹 자지 못한 딸아이가 한숨을 쉰다.    


“  엄마, 얘네들 왜 이렇게 공부를 많이 하지?  

    지치지도 않나?  정말 대단하다.  ”

“  그래?  그럼 그만해도 되는데.  

   다음 주에 원격 수업이니까 아빠 휴가 내고

   우리 롯데 월드 놀러 가자.  

   아니면 우리 당일 치기로 바다 보고 올까?  ”

“  엄마, 미쳤어?  기말고사 준비해야 해.  

   지금 코로나가 다시 난리인데.  

   그리고 애들하고 기말고사 끝나고 롯데월드 가기로 했어.

   엄마는 아빠랑 둘이서 놀아.  난 친구들이랑 갈 거야.  “

“  알았어.  힘들면 쉬엄쉬엄 해.  ”    


엘리베이터를 누르고 복도에서 우리는 뽀뽀와 함께 작별을 했다.

아이가 가고 가만히 창을 내려다보다 아이가 남긴 말이 다시 떠오른다.    



“  엄마, 나 대신 울어줘서 고마웠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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