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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벼락 너머, 나의 소풍

by 솔라담



나의 어릴 적 가장 먼 기억 중 하나는, 소학교 담벼락에 딱 붙어서 학생들 아침체조를 따라 하던 것이다. 이미 70년도 더 넘었지. 학교가 어찌나 가고 싶었길래 그걸 따라 한다고 손짓 발짓을 했는지... 특히 소풍날 벤또를 들고 웃으며 학교를 떠나는 그 얼굴들. 그걸 보며 부럽던 마음은 아직도 생생하다. 그때만 해도 계집애가 무슨 학교냐고, 소여물이나 쑤라던 시절이었다. 부모님을 탓할 생각은 없다. 그 시절이 그랬다. 요즘 공부 안 한다고 혼나던 손녀를 떠올리면 웃음만 나온다.


​손녀 말로는 우리 세대가 세계 역사상 가장 밀도 높게 살았을 거란다. 농업국에서 산업국, 최빈국에서 선진국, 독재정에서 민주정까지 다 겪은 세대는 우리뿐일 거라고. 고생하셨다며 추켜세우는데, 그런 거 없다. 그냥 자식들만 보고 산 것뿐이다. 못 배운 게 억울해서, 못 먹은 게 억울해서 너들은 억울하지 말라고 바쁘게 산 것뿐이다. 우리가 선진국이 뭔지, 민주화 가 뭔지 알았겠는가. 그래도 그 덕에 손자 손녀 놈들은 잘 배우고 잘 먹는다 하니, 참 여한이 없다.


​나이가 들어, 자식들 효도에 손주 놈들 재롱 보며 배부르고 등 따시게 살아도, 소학교 담벼락에 숨어 눈물 삼키던 어린 계집아이는 사라지지 않더라. 은행이나 애들 학교에서 이름 석 자만 겨우 쓰고는 나머진 좀 써달라고 머리 숙이던 그 부끄러움도 사라지지 않더라. 해서, 절대 늦은 게 아니라던 손녀의 성화에 못 이긴 척 글을 배우기 시작한 게 벌써 십 년 차다. 처음엔 비뚤비뚤한 글자 하나 배우는 게 그리 재밌더니, 이제는 글짓기도 배워 꼴에 시라는 것도 쓴다.


​얼마 전 동사무소 선생님이 교실에 우리 작품들을 전시해 놓고 가족들을 초대하셨다. 물감으로 서툴게 그린 그림이며, 비뚤비뚤한 글씨로 쓴 시 몇 장. 만들 때는 그리 뿌듯하더니, 막상 가족들 앞에 내놓으려니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게 창피하더라. 거기에 식구들이 '우리 할머니가 시인'이라며 호들갑을 떨어대니, 민망함에 몸 둘 바를 몰라 얼굴만 붉어졌다. 특히 손녀는 '부런치' 머시깽이인가, 아무튼 인터넷에 올려야 한다며 사진을 찍고, 나중에 원본까지 살뜰히 챙겨갔다.


​그리고 오늘, 손녀가 찾아왔다. 부런치인지 브런치인지 뭔가에 내 시를 올렸는데, 사람들이 그걸 보고 좋아해 준단다. 사람들 고맙긴 하지만 참 할 짓도 없다 싶다. 이 꼬부랑 할머니가 쓴 글까지 찾아 읽어주는 걸 보면 말이다. 손녀가 댓글이란 걸 읽어준다. 내 시에 대한 소감 같은 거란다.

​'작가님 삶의 무게가 느껴지는 글입니다.'
'작가님께서 어떻게 살아왔는지 그려져요. 감사합니다.'
'시인님, 건강하시고 좋은 시 많이 써주세요.'

한참을 읽어 주던 손녀가 내 얼굴을 빤히 보다가, 갑자기 울먹이며 와락 안긴다.

"할머니 울긴 왜 울어... 할머니 너무 멋져. 진짜 잘했어. 아니, 작가님, 우리 시인님 너무 멋져요."

가슴에 안긴 손녀의 머리 위로 굵은 방울이 뚝, 뚝 떨어진다. 참나... 내가 먼저였구나...


​이 아이가 태어나 처음 품에 안았을 때,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겠다 생각했었는데, 그걸 번복하게 될 줄은 참말로 몰랐다. 어느 시인이 삶은 소풍이라고 했던가. 담벼락 앞의 어린 계집아이는 그 소풍이 대체 무언지 평생 궁금했는데...

아, 소풍은 정말 이리도 즐거운 것이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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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