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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바람 May 02. 2023

땅 뒤에 무덤이

지는 해가 아름다운 홍성

2


마침내, 순조롭게 땅을 계약하게 되었다. 계약서에 도장을 찍고, 홍성역에서 기차를 타려고 기다리는데 갑자기 나는 그 자리에서 그대로 펑펑 울었다. 


그동안 땅을 보러 다니면서 겪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이곳으로 이끈 힘이 무엇이었는지는 아직도 모른다. 운명이라고 말하기에는 너무 많은 에너지를 쏟아부었다. 그렇다고 아무 연고가 없는 이곳을 3년을 다닐 수 있었던 것은 발품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집터를 찾는 일이 쉽지 않음을 발품과 끈기, 그리고 집을 지을 수 있다는 물질적인 조건과 미래에 대한 확신 등 너무 많은 것들이 하나하나 연결되어야 만 가능하다는 사실이 내 가슴에 순식간에 몰려왔다. 


봄날 홍성역은 이렇게 나를 울렸다.


화려한 벚꽃 무리가 지나간 홍성역이 이제는 새롭게 느껴졌다. 이곳에서 시작한 봄, 봄을 담아 보고 싶다는 생각이 저절로 일어났다. 


'봄담'

홍성의 우리 집 이름이다. 이날, 그 느낌이 이어져 내 마음과 몸이 잊지 않고, 집 이름을 '봄담'으로 했다.



이제 한 걸음 뗀 느낌으로 서울로 올라왔다.

그것도 잠시, 3년의 울분이 채 가시기 전에 또다시 넘어야 할 산이 생겼다.


문제는 그날이 아니었다. 그해 여름, 가족들과 함께  우리 땅을 보러 갔는데 동네 분들이 우리 가족을 향해 마구잡이로 말을 던진다.



“여기, 산소가 뒤에 있는데 왜 여기 와서 짓느냐.”


“뒤에 제분소가 있는데 누가 여기다가 짓느냐.”


“우리는 지금 소를 몇 마리 키우고 있다. 냄새가 나는데, 더 키울 거다.”


“여기 땅이 원래 우리 땅이었는데..."


“ 이쪽으로 집이 있으면 우리 집이 그늘이 진다.”



남편은 그만 아연실색으로 그 자리 떴고, 그날 이후 남편과 나는 불편한 이야기만 하게 되었다. 



“ 누가, 동네 입구에 집을 짓느냐.”


“ 산소를 어떻게 할 것인지.”


“ 다른 곳으로 다시 알아보자.”


“ 지역주민들의 텃세 봐라.”




솔바람- 아직은 이른 거야


우리 땅에 일이 있거나 방문할 때마다 동네 분들이 한마디씩 하는 바람에 그만 울고 말았다. 그날의 울음은 2년 전의 그 울음이 아니다. 서럽고 지쳐서 숨이 막혀서 나오는 울음이었다. 3여 년 그 긴 시간을 다니다 겨우 찾은 땅에서 말로만 듣던 원주민들의 텃세를 느끼는 것이 상상한 것보다 힘들었다. 정말, 우리 집만 땅을 샀다면 남편의 말대로 땅을 다시 팔고 이곳에 집을 짓지 않을 생각까지 했다.


사실, 무덤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았다. 나의 눈에 콩깍지가 씌었는지 그날따라 무덤은 멀어 보였고, 앞의 풍광은 확 틔워 보였다. 땅이 남쪽으로 향해 집을 짓더라도 남향으로 지을 수 있어서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였다.

그뿐만 아니라, 집터 앞에 외양간이 있는 줄 몰랐다. 부동산과 전 지주가 우리에게 설명하지 않았다. 물어봤을 때 없다고 했다.

확실히 잘못된 내용으로 우리는 계약한 것이 맞다. 다만, 그 또한 우리 불찰이었기에 넘어갔을 뿐이다.


무덤은 남편보다 내가 더 무서워하고 싫어한다. 하지만, 몇 년 동안 시골 땅을 보러 다니면서 무덤에 대한 무서움이 무덤덤해지고 있던 터라, 그날 우리 땅 뒤에 무덤은 정말 그렇게 가까이 있는 줄 몰랐다.


그곳은 말 그대로 유기농의 출발이나 다름없는 아주 멋진 동네로 주변에 풀무학교의 역사와 문화가 뿌리내리고 있는 곳이다. 내 주변의 지인들뿐만 아니라, 외부인들도 제법 들어와서 살고 있다. 또한 2가구가 살기에는 마을 초입이 안전하고 평지는 무난하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함정이었다. 무턱대고 믿었다. 아무 의심을 하지 않았다. 서울에서 사람들이 전입신고를 하고 들어 오면 좋아해 줄줄 알았다. 그리고 우리 삶의 가치를 함께 공유하며 살아 갈 수 있는 곳으로 여겼다.


한참 후에 들은 이야기지만, 아주 옛날부터 살아온 곳인데 살다가 어떠한 이유로 자신들의 땅이 남의 손에 넘어갔고, 또 넘어가서 이제는 남의 집터가 되었다. 우리가 매매하기 전에는 그래도 땅을 일구면서 억울한 심정을 내려놓았을지 모른다.


그런데, 어느 날 우리가 땅을 산 것이다. 앞으로 몇 년 후부터는 그곳에 밭농사도 지을 수 없게 될 것이고, 자신들의 땅이 다른 이들에게 넘어갔다는 것을 인식하는 순간이었을 것이다. 


아마 그랬을 것이다. 

땅을 사고 난지 3여 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은

그들의 마음을 이해한다. 


옆구리가 허전했을 것이고, 억울했을 것이다. 마음은 아프지만, 그렇다고 이렇게까지 나와 나의 남편에게 욕바가지를 할 필요까지는 없지 않았을까? 우리가 그 많은 사연을 알고 땅을 억지로 사지는 않았고, 또한 땅 주인은 이미 내가 처음으로 바뀐 것은 아니었을 텐데, 속상하다. 시골로 내려가서 살기의 첫 번째 환상이 깨지는 순간이다.

결국, 1층을 짓기로 한 지인이 산소 앞에 집을 짓게 되었고, 반대로 땅 모양이 쪼개진 땅에 우리가 집을 짓기로 했다. 또한, 앞집으로 인해 땅 모양이 옆집에 바짝 붙게 되는 모양으로 우리 집을 짓게 되었다.


결국 두 가구 모두, 문제점을 가지고 집을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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