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무의 정체성 2
좋아하는 나무가 있으세요? 음~생각해 보자~ 나무와 특별한 인연이 없다면 대개 소나무를 떠올리지 않을까요? 강직과 절개를 상징하는 역사와 문화에 알게 모르게 정신 깊숙이 스며들었겠지요. 한반도 전역에 분포하기에 요람에서 무덤까지 함께도 하죠. 태어나자 금줄에 솔가지가 걸리고, 소나무로 지은 집에서 살다가, 소나무로 만든 관에 잠드는 일생을 살았습니다. 우리나라 사람이 제일 좋아하는 나무 조사 결과 압도적인 1위가 소나무랍니다. 조사 시기와 방법에 따라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단순한 바늘형 잎에다 일 년 내내 같은 모습인데 왜 좋대? 의미와 아름다움은 다르지 않나? 숲해설가 교육을 받을 때 들었던 의문입니다.
숲해설가로 입문해 제일 먼저 공부하는 나무도 소나무입니다. 흔한 나무라 접근하기 편해서이죠. 소나무의 한자 ‘송(松)’은 진시황제가 내렸다지요. 소나기를 피하게 해 준 공으로 받은 벼슬 (公)을 나무와 합진 상형문자입니다. 우리말 '솔'은 푸르고 힘차게 치솟은 수형에서 솟다의 의미에서 솟→솔로 이어졌다는 설도 있습니다. 솔나무의 잎은 솔잎, 말라서 땅에 떨어진 솔갈비와 솔가지, 솔방울에다, 종류에 따라 다복솔 잔솔 참솔 곰솔, 송진 많은 관솔도 있습니다. ‘솔’ 뒤에 나무를 붙이면 ㄹ이 탈락합니다. 자주 쓰는 말이니 혀 꼬부라지는 ㄹ이 걸리적거렸나 봅니다.
일반적으로 소나무를 크게 두 종류로 구분합니다. 해안지역에 사는 소나무는 줄기가 검은빛을 띠어 곰솔이라 하고, 줄기가 위로 갈수록 붉어지는 내륙형 소나무로 구분합니다. 소나무는 일반명사이자 고유한 이름의 종명이기도 합니다. 해안형 곰솔을 해송, 검은빛이라 흑송, 잎이 크고 억세어서 남송이라고도 하고, 소나무는 곰솔에 빗대어 참솔, 내륙에 산다고 육송, 잎이 부드러워 여송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관심의 대상인지라 작은 차이도 구별해 이름을 달리 불렀지요. 이제는 한 덩어리로 뭉쳐서 그냥 소나무가 되었지만요.
소나무의 큰 특징은 변치 않는 모습입니다. 더우면 꽃 피고 추우면 잎 지는 다른 나무와 달리, 늘푸른 성질을 충절이나 절개 강직에 비유했습니다. 쉽게 변하는 사람 마음을 굳게 다잡으려는 의지의 표상이랄까요.
소나무는 생태계 천이 과정에서 숲이 형성되는 초기 개척자입니다. 양분 축적이 안된 척박한 토양에 살기 때문에 잎을 만들면 2~3년을 사용합니다. 잎에 저장된 에너지와 양분을 최대한 오랫동안 사용하기 위해서이죠. 겨울에도 잎을 달고 있어 얼지 않으려고 잎 속에 부동액을 만듭니다. 바늘잎은 표면적이 적고 왁스층이 있어 증산에 의한 수분 증발을 최소화합니다. 덕분에 소나무는 겨울철에도 따뜻한 한낮에는 광합성을 할 수 있지요. 철갑을 두른 듯한 두꺼운 껍질도 추위를 방어합니다. 진화적으로 개척자의 삶에 온몸을 맞춤한 내공. 그 애달픔을 겉으로는 무심한듯 단조롭기만 합니다. 이런 소나무를 아니 좋아할 수 없지요.
솔방울이 숲해설가한테 마법의 도구이듯이 솔잎도 만능이랍니다. 솔잎이 두 개이면 소나무, 다섯 개이면 오엽송이라 부르는 잣나무입니다. 잎이 세 개인 리기다소나무는 산림녹화사업으로 심었지요. 솔잎은 숲에서는 바늘과 실입니다. 바늘같이 생겨서 넓은 나뭇잎을 잇고 꿰매고 붙이며 다양한 모양을 만듭니다. 솔잎씨름은 두 개의 솔잎을 벌려 서로 걸어 당겨서 끊어지지 않으면 이기는 놀이인데요, 솔잎씨름 챔피언이 되는 비법을 보너스로 공개합니다. 그런데 비법을 알려줘도 당기는 척하는 시간을 스스로 참지 못하고 먼저 당기고 맙니다. 솔잎 놀이 2탄은 넓은 잎에 솔잎을 꽂아 입바람으로 부는 솔잎바람개비, 3탄은 솔잎과 넓은 잎 두 개로 만드는 양팔저울과 모빌 등등. 놀이에 성공했을 때 '소원침맞기'는 솔잎을 가지런히 모아 손바닥이나 머리에 지압침을 줍니다. 당장 이루어지는 소원이 아니라 시간이 흘러야 이루어지는 소원을 빌어야 한다고 꼬드깁니다. 물건을 갖고 싶다는 소원이 많은데, 어떤 아이는 엄마의 건강을 빌어서 숙연했답니다.
조선시대에는 생활 전반에 쓰임새가 많아 소나무 보호정책을 폈습니다. 특혜를 누리며 엄친아로 살아왔지만, 이제는 우호적이던 세상이 달라졌습니다. 남산 위의 저 소나무가 철갑을 두른 강직함보다 유연성을 더 선호하는 시대입니다. 솔잎 없이도 송편은 냉장고에서 변하지 않습니다. 숲이 짙어지며 활엽수에 밀려 건조한 산등성이로 내몰리는 소나무, 기후온난화와 재선충의 습격으로 이중삼중 위태롭습니다. 산림 정책에서도 산불에 취약한 소나무 식재에 논란이 있습니다. 세상만사 흥망성쇠가 있다지만 송(松) 자가 들어간 그 많은 지명들은 어떨까요? 부산에도 송정 송도 해수욕장과 반송동 재송동 같은 동명이 있습니다. 이런 문화유산은 변하지 말아야 할 인간성을 강조하려 지은 이름이 아닐까요?
검은 피부의 곰솔과 위로 갈수록 붉게 변하는 소나무
줄기 색 때문에 곰솔을 흑송 소나무를 홍송으로도 불러
곰솔로 이루어진 숲은 전체적으로 어두워
빳빳한 긴 솔잎은 놀이의 도구로 좋아
일제 때 송진을 빼앗긴 아픔이 새겨진 두꺼운 껍질
깊은 곡선 주름 피부는 직선 잎을 보완하기
부산 금강공원의 바위를 뚫고 자란 소나무
굳센 생명력 꺾이지 않는 의지의 메시지
솔씨에서 발아한 소나무의 어린싹
햇빛이 좋아야 자라는 극양수 성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