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과 교류하다 보면, 꼭 한 번씩 듣게 되는 말이 있다.
“페이지 씨랑 있으면 마음이 편해져요.”
“다른 사람에게는 잘 털어놓지 않는데, 왜 페이지 씨한테는 말이 나올까요?”
듣기만 해도 얼굴이 뜨거워질 정도의 칭찬들이다. 귀가 간지러울 만큼 과분하다고 느껴질 때도 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면 문득 생각한다.
‘이런 칭찬을 내가 받아도 될까?’
나는 그저 말하는 것보다 듣는 걸 조금 더 좋아했을 뿐인데 말이다.
— 사실 비밀이지만, 나 꽤 수다쟁이다. 잘 들어주다 보니 말을 덜 하는 사람처럼 보일 뿐이지.
살아오면서 조금씩 깨달은 게 있다.
사람들은 조언보다 경청, 해결보다 공감을 더 원한다는 것.
괜히 끼어들어 조언하려기보다, “그랬구나, 힘들었겠다” 하고 말없이 옆에 있어주는 것.
그 단순한 행동이 누군가에게는 마음을 여는 열쇠가 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런 능력을 가진 사람이 흔치 않다는 것도.
그런 걸 깨달을 때마다, 나는 내가 가진 이 조용한 재능이 조금은 자랑스러워진다.
누군가에게 편안한 존재라는 건 쉽게 얻을 수 없는 칭찬이니까.
물론, 나는 완벽한 사람이 아니다.
모든 사람에게 친절할 수 없고, 어떤 이야기는 이해는 되지만 공감까지는 도달하지 못할 때도 있다.
그럴 때면 어색하게 웃기만 하거나, 적절한 리액션을 찾지 못해 허둥대는 나를 보며 스스로 민망해지기도 한다.
그래서 가끔은 생각하게 된다.
‘내가 정말 잘 듣고 있는 걸까?’
‘말할 땐 역시 세 번쯤 생각하는 게 맞나?’ 하고.
또래보다 경험은 많지만, 깊지 못한 경험들이라 어떤 상황에선 적절한 말을 찾지 못해
입을 다물어야 할 때도 있다.
어쩌면 그게 나의 한계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그 조심스러움 덕에 내가 나아지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나는 나와 마주 앉은 사람이
“아, 이 사람 옆에 있으면 괜히 편하네.”
그렇게 느끼게 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게 내가 ‘좋은 사람’이라고 스스로 인정할 수 있는 기준이기도 하다.
누군가에게 편안함을 선물한다는 건, 세상에서 제일 조용하지만 가장 깊은 영향력이니까.
일을 잘하고 못하고, 능력이 뛰어나고 부족하고를 떠나
이성적으로 바라보았을 때도
“저 사람이랑 있으면 내 마음이 편안해지는 그런 사람이야.”
이 말 한마디로 충분한 사람이 되고 싶다.
적어도 내 곁에 앉아있는 누군가가
잠시라도 긴장을 내려놓을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바로 ‘나’였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