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성 우울이자 만성 우울을 함께 달고 사는 나는, 날이 추워지기 시작하면 어김없이 동굴 속으로 들어가는 사람이 되어버린다. 아니, 사실 우울을 조금이라도 겪어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겨울이 시작되면 모든 감정의 골이 더 깊어진다는 것.
꽤 오랫동안 겪어온 질환인데도, 이상하게 겨울만큼은 여전히 적응이 안 된다.
몸이 기억해 버린 계절의 패턴은 쉽게 고쳐지지 않는 법인가 보다.
병원 원장님을 비롯해 여러 전문가들도 같은 말을 한다.
“겨울은 병이 커지는 계절이다.”
햇빛은 줄고, 일조량은 떨어지고, 활동량은 급격히 감소한다.
그 말이 이젠 통계처럼 느껴질 정도로, 내 몸도 겨울만 되면 똑같은 반응을 반복한다.
나는 사실 모든 계절에 우울의 구간이 있다.
여름엔 여름이라서, 가을엔 가을이라서, 그리고 겨울엔 더 심각해져서.
정말이지 총체적 난국이다.
돌이켜보면 겨울이 특히 견디기 힘든 이유는 단순하다.
집 안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나면, 생각의 양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기 때문.
생각은 많아지고, 떠오르는 감정도 넘쳐나는데 정작 정리는 되지 않고, 말로 풀어낼 힘도 사라지는 시기.
인풋만 넘치고 아웃풋은 막혀버리는 그런 계절.
그래도 올해는 다르다. 다른 계절들에 글로 풀어낸 날들이 많아서,
이전보다 훨씬 잘 버텼다고 스스로 말할 수 있다.
글로 풀지 못하던 시절에는 하루하루 버티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갑자기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조증이 찾아오기도 했고, 반대로 바닥을 치는 우울 속에서
‘아, 이건 내가 끝을 봐야 끝나는구나’
그런 어두운 결론까지 가본 적도 있었다.
그러다가 글을 쓰기 시작했고, 브런치 작가가 되고,
나를 표현할 작은 창구들이 생기면서 그 극단의 파동이 현저히 줄어든 것을 나 자신도 체감했다.
글이 나를 구해낸 거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치 않는 재경험들이 갑자기 치고 들어오거나, 알고 있는 그 우울이 다시 손을 흔들며 돌아올 때면 여전히 무너질 것 같은 순간은 있다.
‘다시 대인기피가 시작되는 걸까?’
'다시 또 나를 가둬두려나?'
그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올 때도 있었다.
다행히 가을부터 시작한 또 다른 SNS 덕분에 그런 생각을 조금 덜 하긴 한다.
물론 나도 안다.
이 도파민은 언젠가 툭 끊길 것이라는 걸.
여러 해를 지나오며 쌓인 데이터로 예측이 가능하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늘 말한다.
“너무 들뜨지 말 것.”
그래도 잠시나마 힘든 생각을 잊을 수 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는 위안이다.
그렇게 나는, 천천히, 올 겨울을 버틸 준비를 하고 있는 중이다.
겨울을 지나야 봄이 오고, 봄이 와야 내가 다시 안정감을 되찾는다는 걸
오래 겪은 나 자신의 리듬을 통해 알고 있다.
아마 나는 처음부터 그런 사람인가 보다.
겨울을 견디고, 겨울을 통과해, 봄을 기다리는 사람.
그 계절의 순환 속에서 조금씩 다시 살아나는 사람.
그게 나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