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회복비용이 큰 사람이다.

by 딥페이지

사람들은 저마다의 결을 가지고 산다.
말로 명확히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기질적으로 유순한 사람, 겉으로는 강해 보이지만 속은 여린 사람, 말 한마디에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사람, 할 말 못 할 말 가리지 않고 쏟아내는 사람, 그리고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끝내 삼켜버리는 사람까지. 세상에는 참으로 다양한 결의 사람들이 섞여 있다.

늘 같은 결의 사람만 만날 수는 없다.


오히려 그런 일은 거의 없다고 보는 게 맞을지도 모른다. 살아가다 보면 누군가와 비슷하다고 느꼈다가도,

어느 순간 전혀 다른 결이라는 걸 깨닫게 되는 순간이 온다. 한 번 보고, 몇 마디 나눴다고 해서 저 사람이

나와 같은 결인지, 다른 결인지를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독심술이 있다면, 나는 아마 가장 먼저 배우러 갔을 것이다.


게다가 사람의 결이라는 건 고정된 것도 아니다.
환경 때문에, 삶이 잘 풀리지 않아서, 혹은 개인적인 사건 하나로도 사람의 결은 얼마든지 바뀐다.

특히 그 사람이 가까운 사이라면, 그 변화는 더 선명하게 느껴진다. 예전에는 이렇지 않았던 사람인데,

어느 순간부터 나에게 상처가 되는 말과 행동을 반복하는 모습을 보게 될 때가 있다.


나는 그런 순간마다 참 독하지 못하다.
결이 달라졌고, 분명 나에게 피해가 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원래 그런 사람은 아니니까’라는 이유로 한 번 더 참아본다. 먼저 사과하기도 하고, 이해하려 애쓰기도 하고, 받아들여 보려고도 한다.

그러다 결국은 내가 먼저 지쳐버린다. 끊어내는 법을 배우지 못한 사람처럼, 관계 안에서 혼자 애를 쓰다가 스스로 소진되는 쪽을 선택해버린다.


인간관계는 여전히 나에게 어렵다.
나는 아직도 알음알음 배운 사회성으로 사람을 대한다. 이럴 땐 어떤 말을 해야 하는지, 좋은 말을 건네야 할 순간인지 아니면 쓴소리를 해야 할 순간인지 그 경계를 자주 헷갈린다.

그래서 위로가 필요한 순간에 쓴소리를 하기도 하고, 분명 짚고 넘어가야 할 때 오히려 좋은 말로 얼버무리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상대도 헷갈리고, 나 자신도 헷갈린다.


가끔은 이런 생각도 든다.
인간관계에도 교과서 같은 게 있었으면 좋겠다고. 이 상황에서는 이렇게 말하시오,

이 지점에서는 한 발 물러나시오, 여기서는 선을 그으시오, 같은 명확한 기준이 있다면 얼마나 덜 힘들까 하고 말이다.

덕분에 나는 오늘도 진이 빠진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히 알게 됐다. 내가 인간관계를 하면서 생각보다 훨씬 많은 에너지를 쓰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랑이든 우정이든 이름을 붙이기 전에, 나는 그 순간순간 나름의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는 것.

아무 생각 없이 관계를 맺는 사람이 아니라, 늘 고민하고, 고려하고, 상처 주지 않으려 애쓰는 사람이었다는 걸 이제는 조금 인정하게 된다.


그럼에도 여전히 의문은 남는다.
언제쯤이면 이렇게까지 진이 빠지지 않고 사람을 대할 수 있을까. 힘들 때는 칼같이 말할 수 있고,

필요할 때는 쓴소리를 하면서도 관계를 망치지 않는 어른이 될 수 있을까.

혹시 나는 회복하는 데에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리는 사람은 아닐까 하는 안타까움도 함께 따라온다.


나이를 먹을수록 사람을 대하는 일은 더 쉬워질 줄 알았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나이를 먹을수록 사람을 대하는 방법은 더 어렵고, 더 복잡해진다.

그럼에도 오늘도 나는 또 한 번 사람을 배우고 있는 중이다. 서툰 채로, 지친 채로, 그래도 포기하지 않은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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