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생각을 종종 한다.
우리나라는 왜 우울증에 이토록 인색할까.
2024년 기준, F코드가 기재되는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은 약 500만 명에 이른다는 통계가 나왔다.
자살률 역시 약간의 변동은 있지만 하루 평균 24명이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는 수치는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이 숫자들을 보고 있으면, 더 이상 우울증을 ‘개인의 문제’라고만 치부할 수는 없지 않나 싶다.
내 짧은 생각으로는, 우울증에 대한 개념 설명부터 잘못되어 왔다고 느낀다.
마음의 병, 마음의 감기라는 표현은 듣기에는 부드럽지만, 그만큼 이 질환을 너무 쉽게 오해하게 만든다.
감기처럼 마음만 먹으면 털고 일어날 수 있는 병처럼 여겨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울증은 명백히 호르몬 질환이자 뇌질환이다. 감정 조절이 어려워지고 사고의 폭이 좁아지며,
몸의 기능까지 영향을 받는 복합적인 장애다.
그럼에도 여전히 ‘기분 문제’, ‘마음가짐 문제’로 축소되어 이야기된다.
나 역시 우울증을 앓고 있다.
여기에 PTSD, 공황장애, 광장공포증, 사회공포증, 대인기피까지 여러 질환이 복합적으로 나타난다.
시기적으로 호전되는 구간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늘 비슷한 우울의 바탕 위에서 살아온 느낌이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돌아오는 말들은 대개 비슷하다.
“마음먹기 달렸어.”
“의지로 이겨낼 수 있어.”
심지어는 “배부르고 등이 따뜻하니까 그런 병도 생기는 거야.”라는 말까지.
무지에서 오는 한 마디 한 마디는 상처가 되어 더 날카롭게 찌르는 듯 했다.
시대는 이렇게나 빠르게 변하고, 기술과 인식은 발전하는데 왜 우울증에 대한 시선만큼은 여전히 제자리에 머물러 있을까.
우리나라의 문화적 영향일까. 유교적 가치관 속에서 감정은 억눌러야 할 것으로 배워왔고,
과거에는 정신질환이 있으면 가두거나 숨기거나, 심지어 제거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어느 글에서 본 문장이 떠오른다.
‘우울장애를 겪는 사람이 자신이 우울장애였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죽음뿐이다.’
너무 잔인한 문장이지만, 현실을 정확히 찌르고 있어 더 마음이 아팠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개인주의가 만연해져서일까, 아니면 각자 살기 바빠 남의 이야기를 들어줄 여력이 없어서일까. “내 코가 석자”라는 말처럼, 타인의 고통을 감당할 에너지 자체가 부족한 사회가 되어버린 걸까.
그럼에도 개선할 방법은 분명히 있다.
첫째, 비아냥거리지 말자.
정신과 질환을 쉽게 여기는 사람들이 많지만, 세상에 쉬운 병은 하나도 없다. 그리고 의지로 이겨낼 수 있는 병 역시 없다. 노력은 회복의 한 요소일 수는 있지만, 병을 대체할 수는 없다.
둘째, 강요하지 말자.
이 글을 읽는 당신의 팔이나 다리에 금이 가거나 부러졌다고 상상해보자. 주변 사람들이 “얼른 나아야 해”, “재활 열심히 해야지”, “의지로 이겨봐”라며 계속 재촉할까? 대부분은 그러지 않는다.
눈에 보이는 상처이기 때문에 함부로 말하지 못한다. 정신질환도 다르지 않다.
보이지 않을 뿐, 분명히 존재하는 상처다.
셋째, 기다려주자.
무기력하고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며 답답해질 수 있다. 하지만 그 상태를 가장 답답해하는 사람은 당사자다. 움직여야 한다는 것도, 이대로는 안 된다는 것도 본인이 제일 잘 알고 있다.
우울장애는 무기력을 가장 강력한 무기로 삼는다. 조금만, 정말 조금만 기다려주면 좋겠다.
아기가 기어 다니다가 결국 걸음마를 떼듯이.
‘패션 우울증’이라는 말이 존재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진짜로 아프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그리고 우울장애를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다. 병원 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자.
감기에 걸리면 병원을 찾듯, 어딘가 부러지면 치료를 받듯,
정신건강의학과를 찾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우리는 하루라도 더 살아갈 가치가 있는 사람들이다.
그 사실 하나만은, 부디 잊히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