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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립 Mar 31. 2021

어릴 적 옷장에는 파란색 옷이 가득했다.

여자=분홍색, 남자=파란색?

난 여자인데도 불구하고, 어릴 적 사진을 보면 내 모습은 남자 같았다. 초등학교 입학 전에는 치마를 입은 사진은 없었고, 긴 생머리인 적도 없었다. 짧게 친 머리에 핀도 없고, 색깔도 파란색, 초록색, 보라색이다. (초록색, 보라색은 색채학에서 중성적인 색으로 분류하기도 합니다.) 반면 언니는 원피스에 알록달록한 핀에 분홍색, 노란색의 옷을 입혔다. 나를 ‘남자 애’처럼 입힌 것에 대해서는 별로 기분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언니와 비교해서 나만 그렇게 입힌 것이 좀 서운했다. 속으로는 ‘엄마는 아들을 원했던 건가?’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어릴 적에 남자 애처럼 입었다고 해서 지금 ‘여성스럽게’ 입지는 않는다. 그냥 나 편한 대로 입는다.


난 엄마한테 계속 '왜 어렸을 때 여자 애처럼 안 입혔냐'라고 여쭤봤다. 바로 내가 여자 옷이 어울리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엄마는 이모의 말을 잘 따르는 편인데, 내가 여자 옷을 입으면 어울리지 않는다고, 보이시하게 입히라고 하셨다. 어이없는 이유지만, 나름 납득이 갈만한 이유였다. 어린 시절의 모습이 그다지 예쁘장하진 않기 때문이다….

그래도 지금 생각해보면 의도치 않았지만, 엄마는 성별에 대한 편견을 깨고 옷을 입혀주셨다고 생각한다.




내가 어릴 때는 ‘성 고정관념’이란 게 심해서 분홍색=여자, 파란색=남자였다. 그래서 분홍색을 좋아하는 남자애가 있으면 주변 애들이 “너 여자야?”라고 하기도 했다. 옷뿐만 아니라 필통, 준비물, 우산, 지우개, 연필 등등 색깔로 남자와 여자로 편을 갈랐다. 색깔 고유의 색으로 부르기보다는 ‘남자색’, ‘여자색’으로 말하기도 했다.


‘남성스럽다.’, ‘여성스럽다.’는 보기에 남자 혹은 여자의 성질을 가진 데가 있다는 것이 사전적인 의미다. 남자의 성질이라는 건 좀 각진 직선의 느낌, 여자의 성질이라는 건 부드러운 곡선의 느낌이 있다. 난 사전적인 의미가 아니라 그냥 들리는 대로, 느끼는 대로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려 한다.


출처 Unsplash @Tim Mossholder


여자가 남자처럼 짧게 머리를 잘랐다고 해서 그 사람이 여자가 아닌 것이 아니다. 남자가 여자처럼 화장한다고 해서 그 사람은 남자가 아닌 것이 아니다. ‘남성스럽다’,‘여성스럽다’라는 단어 자체가 성 고정관념을 더욱 고착화시킨다고 생각한다. 여자도, 남자도 그 단어 때문에 자신의 욕망을 펼치지 못하고, 욕망 조차 꿈꿀 수도 없다고 생각한다. 사회적인 편견에서 어긋난 행동을 하게 되면 “여자애가 왜 그래?”, “남자 답지 않게 왜 그래?”라고 한다.




‘성 역할’을 없애야 한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젠더리스 패션, 화장도 눈에 띄고 있다. 좋은 반응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들 책에서도 성 역할을 고착화시키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구름빵>으로 유명한 백희나 작가님은 “주인공을 동물로 내세우면 성별의 기준이 모호해 성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을 덜 수 있어요.”라고 얘기하셨다. (여담이지만 구름빵이 뮤지컬로도 탄생하면서, 작가님의 의도와 관계없이 고양이에게 여자로 알 수 있게 리본 표시를 하게 됐다. 너무 안타깝다고 말씀하셨다.) 어릴 때부터 성별에 대해 자유로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아이들도 나중에 생각하는 폭이 깊어지고 넓어질 수 있다.


'젠더리스'라고 검색했을 때 뉴스 면.


그러나 아직도 여자, 남자가 하는 역할이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예를 들어 '집안일, 육아는 여자가, 돈 벌어오는 일은 남자가.'라고 한다. 이 부분엔 모순된 것이 있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요즘은 여자도 돈 벌어야 하는 시대라며 직장인으로서의 역할과 집안일, 육아를 동시에 요구한다. 이렇게 성 역할이 심화되고, 고착화되면 남녀 간의 차별이 심해진다. 차이만 남으면 좋겠지만, 이 관념을 바꾸지 않으면 차별이 언제나 존재하는 세상이 될 수밖에 없다.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지만, 특정 사람만 못 하게 하거나 하게 하는 것은 차별을 두는 것이고, 누구나 할 수 없어서 특정 사람만 하게 하거나 못 하게 하는 것은 차이를 인정하는 것이다. 차이인데 차별로 혼동하거나 그 반대의 경우가 있다. 집안일, 육아는 오로지 여성만 할 수 있을까? 요즘은 남자 전업주부도 있다. 돈은 남자만 벌 수 있을까? 알고 있듯이 이미 많은 여성들이 돈을 벌고 있다.


분명 몇십 년 전보다는 이런 고정관념이 많이 깨진 것 같은 분위기다. 그러나 아직 그 수평을 맞추려면 한참 멀었다.

누군가는 얘기한다. "불편하게 왜 바꾸려고 하냐? 별 게 다 불편하대. 그냥 있는 그대로 살아."
난 그 사람에게 묻고 싶다.
"그렇다면 지금 이 세상에 만족하시나요? 이 세상을 미래의 자녀가 그대로 겪어도 괜찮으신가요?"


그렇지 않다고 말하면, 불편함을 감수하고서라도 바꾸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만족한다고 말하면, 불편하다고 말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전혀 생각해보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저 자신이 지금 이대로가 좋다는 이유만으로 그 입장을 고수하려고 한다. 한 번이라도 상대방 입장에 서서 진심으로 생각해본다면, 그 문제가 불편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장기적으로 봤을 때, 모두가 행복하고 이득을 얻으려면 불편함을 감수하고라도 이를 바꿔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미래의 아이들이 고통받지 않고 자랄 수 있다.


아이들을 차별이 무수히 존재하는 세상에서 살게 할 것인지,
차이만을 인정하는 세상에서 살게 할 것인지는 지금 어른들의 언행에 달려있다.




(타이틀 이미지 출처 Unsplash @jordanni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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