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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립 Dec 18. 2020

실패도 돈으로 사야 한다.

'방황해도 괜찮다.'라는 무책임한 말

실패도 돈으로 사야 한다.

어렸을 때 꿈꿔왔던 화려한 꿈은 포기하고, 보통의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을 동경하게 되어버렸다. 원대한 꿈은 둘째치고 되려 평범함을 꿈꾸게 되었다.


'어디를 놀러 갈까?', '어떤 걸 살까?'보다는 '뭘 해 먹고살아야 하지?', '난 어떤 걸 잘하지?'를 생각하고, 월급의 반 이상이 월세로 나가고, 한 달에 5만 원, 10만 원 밖에 저축하지 못하고, 안정적인 노후를 생각할 수 없고, 경제적으로 빠듯한 현재만 생각한다.


몇 만 원만 더 있으면 더 고가의 브랜드를 살 수 있지만 나중을 생각하며 돈을 아끼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1500원짜리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소확행'이라며 자신을 위로한다.


이런 빡빡한 삶 속에서 '내가 나이를 먹더라도 이 일을 할 수 있을까?', '내가 하는 일이 비전이 없는 건 아닐까?', '지금이라도 기술을 배워야 하나?', '남들은 투잡, 쓰리잡까지 한다던데.' 혹은 '지금 내가 가는 이 길이 맞는 걸까?', '장수생인데 이대로 괜찮을까?', '이걸 해보고 싶은데 적성에 맞을까?' 하며 끝없는 고민의 시간을 가진다.


출처 Unsplash @alexander popov


이를 위로해 주고자 여러 에세이가 출간되고, 유튜브 콘텐츠, 강연도 나왔다. 가깝게는 SNS의 힐링글에서도 위로를 받을 수 있다. 이는 방황하는 세대들의 공감을 쉽게 얻었다.


그중에는 '방황해도 괜찮아. 다 그런 거야.'라는 무책임한 말도 더러 있다. 이 말에 대해 공감하지 못하고, 되려 무책임하다고 하는 이유는 미디어는 그냥 문장만 던져 줄 뿐이기 때문이다.


이 말을 믿고 '난 아직 젊어, 청춘이야. 이렇게 고민하는 것도 다 방황하는 거야!', '나중에 어떻게든 되겠지!'라고 자신의 삶을 그렇게 만들면서 방황하는 건 당연한 거라며 합리화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SNS 감성으로 사진을 찍고 '난 방황하는 중!' #에세이 #방황하는삶 #청춘 #20대 하며 감성만 뽐내다 마는 삶을 살 수도 있다.


혹은


'원래 이 시기에는 불안하고, 계속 방황하는 게 맞는 건가?'라면서 고민만 늘어간다. 고민은 고민을 낳고, 무기력한 삶을 더 무기력하게 한다. (실제로는 전자보다는 후자가 더 많을 듯하다.)




일부 성공 스토리에서는 '20대는 황금 같은 나이다! 즐길 것 다 누리고, 해외여행도 다녀오고, 실패도 해봐라!'라고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다.'라는 뉘앙스로 실패를 독려하는 듯한 서술 한다. 하지만 다 누릴 것 누리지 못하는 20대들은 너무나도 많다.


그러한 스토리에서 말하는 느낌을 가상의 예시로 들어보겠다.


출처 Unsplash @alexander popov

'제가 대학생 때 엄청 방황을 했었어요. 근데 그때 아버지께서 저를 보고 한심하다고 하시는 거예요. 아버지가 중소기업 대표님이셨는데 부지런하게 살아오시던 분이라 저를 이해하시지 못했던 거죠. 하하. 전 그 순간 정신을 차리고 마음을 비울 겸 여행을 다녀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전 아버지의 도움은 한 푼도 받지 않고 제가 아르바이트해서 세계 여행을 다녀왔어요. 여행을 다녀와보니 정말 많은 것을 느꼈어요. 그 경험이 회사를 세우는 데 큰 역할을 하지 않았나 싶어요.' -스타트업 IT기업 대표
'할머니가 물려주신 유산과 어릴 때부터 모으던 용돈으로 대학교 끝나자마자 첫 사업을 시작했는데, 처음엔 쫄딱 망했어요. 시장 조사가 부족한 거였죠. 그러다가 다시 다른 사업으로 도전을 했는데 또 실패를 하더라고요. 그렇게 한 3번 정도 실패하니까 빚이 장난이 아닌 거예요. 이제 20대인데 빚더미에 오른 게 참 서글프더라고요. 이대론 안 되겠다 싶었죠. 다시 심기일전해서 마지막 기회라 생각하고 도전하니까 되더라고요. 그때 만든 브랜드가 OOO이고요.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 실패가 지금의 저를 만든 것 같아요.' -외식 프랜차이즈 대표


개인적으로 나는 전혀 공감할 수 없다. 20대 중에 부모가 기업의 대표이거나 본인이 금수저, 은수저인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대학교 과에서 한 두 명 정도 있을까 말까 한 수준 아닐까?


물론 IT기업 대표처럼 본인이 아르바이트해서 해외여행을 간다거나 좋아하는 브랜드의 제품을 살 수 있다. 그러나 또 다른 20대들은 생계유지 목적으로 아르바이트를 한다. 남들 다 가는 해외여행 안 가고 싶은 것이 아니라 그 돈을 모아서 생활비로 써야 하기 때문에. 대학 등록금을 마련해야 하기 때문에. 내 동생들 뒷바라지, 아프신 부모님 뒷바라지해야 하기 때문에. 아르바이트를 한다.




수많은 책의 글쓴이들은 본인의 삶만 살아와서 남들의 삶을 100% 이해하지 못한다. 그리고 책 속의 그들은 좌절해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 집안이 든든하기 때문에 실패를 두려워할 필요 없다. 믿을 구석이 있기 때문에 실패가 허용되는 삶을 살고 있다.


그러나 그들 같은 삶을 살지 않는 일부 20대들에겐 단 한 번의 실패가 다시는 도전을 불러일으키지 못할 수 있다. 즉 그들과는 반대로, 실패가 허용되지 않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책 속의 그들이 실패하기 위해 쏟아부었던 돈은 누구에게나 쉽게 나오는 것이 결코 아니다. 어쩌면 그들이 말하는 실패는 돈으로 사야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타이틀 출처 Unsplash @thula-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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