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던 밤
09
우리는 벌써 4학년이 되었다.
사범대 미술과 4학년인 그와 나. 임용고시를 준비해야 할 나이가 된 것이다.
학교 독서실은 너무 작았기 때문에 공부할 장소가 필요한 우리들을 모두 수용하지 못했다. 그래서 자리 잡기는 아주 치열했다. 새벽같이 나가서 자리를 잡거나, 잡은 자리를 계속 지키고 있어야 했던 것이다. 그 사람은 일찌감치 독서실의 가장 구석진 곳에 자리를 잡아놓고는-지금 생각해 보니 정말 못된 사람이었다-아무도 그 자리를 건드릴 수 없도록 더럽게(?) 해 놓았다. 자리의 뒷공간과 옆공간은 모두 그의 책과 온갖 잡동사니로 가득 차 있었고, 책상에도 온통 책과 벽면에는 온통 그의 날카로운 손글씨가 적힌 포스트잇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오빠는 좋겠다, 독서실 자리 진짜 좋아 보이던데. 구석지고.“
“내가 자리 잡아줄까? 옆에?“
“진짜요? 대박!“
나는 그가 자리를 잡아준 덕에 그의 바로 옆자리에서 공부를 하게 되었다. 나는 비록 옆자리에 있었지만, 칸막이 때문에 그의 잘 보이지 않는 모습에 의지하며 그다지 열심히는 아니었지만, 어쨌든 공부를 했다.
그 사이사이엔, 추억이 많다.
***
그와 다른 오빠들은 틈틈이 옆 건물의 체육관에서 탁구를 쳤는데, 나는 종종 옆에서 구경을 했다. 그는 날렵한 몸에 어울리게 탁구를 정말 잘 쳤다. 같이 탁구를 치는 다른 오빠도 실력이 만만치 않아서, 둘이 탁구를 치면 고개가 쉴 새 없이 좌우로 돌아가곤 했다. 나도 기회가 된다면 배우고 싶은데, 그럴 기회는 찾아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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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하다가 힘들어서 잠깐 쉬는 시간에는, 독서실 바로 앞에 드리워진 아주 커다란 나무 밑의 평상에 모두 드러누워 그가 해주는 군대 이야기를 들으며 웃었다. 보통 여자들은 대부분 싫어하는 군대 얘기지만, 그 사람이 해주는 얘기는 정말이지 재미있었다. 미친놈들이 많다며 그 미친놈들 일화를 얘기해 주었는데, 정말 이상한 사람이 많았더랬다. 우리는 낄낄대며 웃어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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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은 그가 두부 다이어트를 한다고 했다. 군살이 없고 탄탄하고 날씬한 체격도 하루종일 앉아 있어야 하는 공부에는 지고 마는 모양이었다. 나는 뱃살이 많다고 놀려댔고, 그는 맘만 먹으면 언제든 뺀다며 입을 삐죽거렸지만, 어쨌든 살을 빼고 싶긴 했나 보다. 어느 날부터 그는 학식을 먹지 않고 본인이 싸 온 두부를 먹기 시작했다. 매일 점심 두부 한 모를 식탁 위에 두고 먹는 그는 좀 불쌍해 보였다. 이 두부 다이어트가 언제까지 이어졌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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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자리에 앉으면 졸지 않고 계속 공부를 하는 편이다. 어쩌다가 아주 가끔 엎드려 잘 때가 있는데, 그러면 나는 흘끔흘끔 옆자리를 보곤 한다. 나와 그를 가로막고 있는 칸막이 위에는, 내가 전에 학교 정문에서 따달라고 난리 진상을 부려서 그가 결국 따주었던 플라타너스 나무 열매 몇 개가 언제까지나 걸려 있다. 몸에 딱 붙는 티셔츠, 검은색에 초록색 줄무늬 체육복 바지. 그런 것들을 물끄러미 보면서 나는 이런 생활도 나름 행복하다고 느끼는 것이다.
그리고 동시에,
올해가 지나면 과연 다시 볼 수 있을까?
,라는
슬픈 생각을 하고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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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실 앞에는 우리가 종종 그늘 삼아 평상 위에 누워서 쉬는 아주 커다란 나무가 있었는데, 우리는 어느 여름날 그 나무에 매미 허물이 있는 걸 발견하고는 깜짝 놀랐다. 가지마다 엄청나게 많은 허물이 있었는데, 놀랍도록 진짜 매미랑 똑같이 생겼던 것이다. 그는 매미허물을 하나를 떼서는 정말 신기하다며 계속 들여다봤다. 그러더니 겁 많기로 소문난 우리 과의 T를 찾기 시작했다. 우리는 T를 도서관 휴게실로 불러놓고는, 소파에 앉아서 작전을 짰다. T가 오자 그는 자연스럽게 옆에 앉히고는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갑자기 불쑥 매미허물을 코앞에 들이댔다. T는 이제껏 살면서 들어본 적 없는 삼단고음을 내지르며 꽁지가 빠지게 도망갔다. 나는 그걸 동영상으로 찍어놓았고 배꼽이 빠지게 웃었다. 우리는 몇 년이 지나도록 그 매미 허물 이야기를 하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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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생일에는 이벤트를 했다. 생일 전날, 밤 11시. 나는 졸렸지만 기를 쓰고 그 사람보다 더 늦게까지 도서실에 남아 있었다. 그가 가자마자, 미리 인쇄해 두었던 A4 여섯 장짜리 축하메시지를 그 사람 바로 뒤의 벽에 낑낑대며 붙였다. 그리고 화살표와 함께 '여러분, 오늘 제 생일임.ㅋㅋ'이라는 관종성 문구도 붙였다. 맞은편 여학생이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았지만 별로 상관없었다.
다음 날. 하필 생일날 가장 싫어하는 교수님의 수업에서 조발표를 맡게 된 그 사람이었다. 평소에 잘 입던 하얀색에 검은 줄무늬가 들어간 반팔 셔츠를 입었다. 나는 그 셔츠가 정말 좋았다. 조발표가 끝나고 나자 그에게서 문자가 왔다.
[ㅇㅇ아, 아침에 독서실 가서 보고 깜짝 놀랐어. 이거 언제 준비한 거야? 진짜 신기한 사람. 네 덕분에 행복한 생일이 될 것 같아!]
우리는 공강 시간에 누군가 사온 캐릭터 케이크를 가지고 생일축하파티를 했다. 그는 그날만큼은 부끄러워하지 않고 케이크를 두 손으로 든 채 사진에 찍혀주었다.
그 뒤의 일. 도서실에 대문짝만 하게 붙은 그 문구를 보고, 몇몇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생일 축하한다며 빵이며, 먹을 것을 그의 자리에 두고 갔다고 한다.
***
정말로 괴로운 날이 있었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몸이 가까우면 마음도 더 가까워지는 걸까. 옆자리에 그 사람이 있는 것을 원망하면서도, 그 자리를 떠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는 내게 종종 자신의 사생활에 대해 얘기해주곤 했다. 잘 지내던 여동생이나 친구가 갑자기 자신에게 고백을 해오는 일이 많다며, 정말 난감하다고 했다. 당연히 자신은 그 고백을 거절하고, 그러면 그들과의 인연은 그날로 끝이 난다는 것이다. 그 얘기를 들을 때마다 나는 소름이 끼쳤다. 아마 나도 내 속에 있는 말을 꺼내는 순간 이 사람과의 인연을 끊게 되겠지. 그건 내게 존재하지 않는 선택지였다. 그러니 남은 선택지는 죽을 때까지 이 마음을 숨기고 옆에 있는 것뿐이다.
그럼에도 나의 인내심은 서서히 옅어져, 비 오는 날, 기어코 내 마음을 말하고 말리라는 마음을 80% 이상 먹고 있었다. 여름방학이었고, 나는 학교 뒤의 원룸에서 지내고 있었다. 11시가 넘어서 공부를 끝내고는, 그는 나를 데려다 주기 위해 같이 캄캄한 학교 뒷길을 걸었다.
그날의 나는, 필요 없는 것을 기억하지 않는 그의 기억에 남아 있을 정도로 미친놈이어서, 빨리 들어가라는 그의 말을 무시한 채 이름도 모르는 원룸 주차장에 숨어 있거나 빗속을 우산을 든 채 뛰어다녔다. 헤어지기 싫은 나의 몸부림이란 걸 꿈에도 모른 채, 그는 난감해하며 거의 한 시간 넘게 나를 찾아다니고, 미쳤냐고 소리를 지르고는 했다.
“할 말이 있어요.”
“뭔데? 또 어디를 가는 거야?!”
나는 할 말이 있다고 했지만, 끝내 말하지 않았다. 결국 그에게 잡혀 집으로 밀어 넣어졌다. 나는 원룸 화장실로 들어가서 방금 헤어진 그에게 전화해서 잠깐 통화를 하고는, 물을 틀어놓고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