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것도 사랑으로 취급되나요?> 18

세 번째 밤

by 에스

18


5월


세 번째 밤


우리는 원래 일요일에 만나기로 약속을 했었다.

그래서 나는 토요일 오후를 여유롭게 피아노를 치며 보내고 있었다.

아니, 치려고 이소라 악보를 열심히 뽑고 있는데, 갑자기 전화가 왔다. 넬의 '섬' 벨소리.

나는 한달음에 받았다. 지금 대학원 수업을 마치고 나에게 온다고 했다. 지금?


정말이지 이럴 땐 센스가 없다.

적어도 2시간 전에는 알려줘야지, 고작 한 시간 남짓 남았는데 자기 멋대로 통보다.

나는 뽑던 악보를 버려두고 세수를 하고 화장을 하고 한바탕 난장판을 벌였다.


화장을 하면서, 어디로 가지? 뭘 먹이지? 뭘 하러 가야 재밌을까? 하며 몸뚱이 하나로 세 가지 이상 생각을 해내야 했다.

겨우겨우 정신을 부여잡으며 맛집을 검색하다가 지난번 지나가다가 봤던 작은 레스토랑을 생각해 냈다.

한 시간 만에 번갯불에 콩 볶듯 준비를 다 하고 나니 또 전화가 왔다.

삼십 분 정도 늦는다며. 역시나 변함없이 대책 없는 모습이다. 나는 그 삼십 분이 마치 영원 같았다.


우리는 그의 자동차 케이를 타고 레스토랑을 삼만리를 찍었다. 양식 레스토랑인데 어울리지 않게 외진 곳에 있어 찾기가 어려웠다.

차에서 내려서도 조금 걸어야 했는데, 그는 얼마 전에 배구를 하다가 무릎부상을 당해서 걷는 모습이 힘들어 보였다. 하지만 부축해 줄 수 없다. 그저 한 걸음 물러서서 바라볼 뿐.


우리는 천신만고 끝에 레스토랑에 도착해서 고르곤졸라와 샐러드와 파스타를 먹었다.

사실 뭘 먹었는지, 맛있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와 함께 있을 때는 늘 그렇다. 먹는 건 의미가 없다. 단지 함께 있기 위한 수단일 뿐.


일 때문에 이래저래 힘들다고 했다. 말이 많은 편인 그 사람은 잠시도 쉬지 않고 자기가 지내온 이야기를 했다. 넋두리를 다 듣고 나니 9시가 넘어 있었다. 우리는 시간이야 어쨌든, 나와서 시내의 스타벅스로 향했다. 얼마 전에 새로 생긴 곳이라 그런지 늦은 시간인데도 사람들이 바글바글했다.


조각케이크 하나와 커피, 이상한 스무디(? 역시 애들 입맛)를 시켜 놓고 우리는 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여전히 곤란한 그의 사생활. 역시나 이번에 그가 옮겨간 학교에서도 그에게 구애하는 여자가 있었다. 정말이지 마성이다. 믿기지 않을 만큼! 하지만 그는 가차 없었다. 그래서 나는, 내심 기뻤다.


그의 위험한 마성(?) 이야기를 하다 보니 11시가 넘었다. 애초에 자고 갈 생각이었는지 우리는 집으로 향했다.

집에 와서는 방바닥에 이불도 깔지 않고 엎드려서, 그가 작곡해 놓은 음악들을 들었다.

임용공부할 시절에도 본인 폰에 열심히 녹음하더니, 요즘도 꾸준히 하나보다.

그의 목소리로 녹음한 음악을 들으며, 파일을 구하고 싶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나는 몇 개를 피아노로 쳐보고, 그는 좋아하고, 또 다른 곡도 들려주고, 이걸 자신의 소설 중 여기에 이렇게 넣어야지, 하고 얘기하고, 나는 빨리 완성한 곡을 보내라고 하고, 그는 또 좋아했다. 나는 그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게 좋다.


그러면서 나는, 전보다 더 달라붙고, 팔을 때리고, 엎드려 있는 그의 위에 비스듬히 기대고, 누르고, 머리를 쓰다듬고, 입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그저 그런 일들에 행복해한다.


그저 거기까지만이다. 그럼에도 나는 내 삶이 퍽 괜찮다고 느끼는 것이다.


그가 폰에 틈틈이 기록해 둔, 사랑과 이별에 관한 글귀들을 보며, 사랑에 빠진 사람의 그 문구들이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고 해도_말이다.


그러고 나니 또 새벽... 몇 시였는지도 기억이 안 난다. 2시~3시였던 것 같다.

그는 어기적어기적 저번처럼 이불의 반쪽에 몸을 뉘이고, 마지막 말이 끝나자마자 코를 곤다. 나는 어이가 없어져서 픽 웃고는 불을 꺼준다. 씻고 나와보니 세상모르고 잠들어 있다.


낮에 마신 커피와, 내 옆의 그 사람 때문에 잠이 들지 않는다. 들 수 없다. 얼마 만에 보는 건데, 또 얼마간 못 볼 텐데 어떻게 잠들 수 있는가. 나는 다 합쳐도 30분도 채 잠들지 못했다.


그동안 내내, 나직하게 코 고는 소리를 들으며, 혹시나 무슨 잠꼬대는 안 하나 귀를 기울이며, 살금살금 옆을 다가가서 내 손가락을 셔츠에 닿게 하고는 뒤통수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그러면서, 밤을 지새운다.


일어나서는(사실 눈을 뜬 것뿐,) 김치찌개를 끓였다.

매번 올 때마다 뭔가를 먹여야 하니, 나는 시어머니에게 평가라도 받는 느낌이다(요리 연습을 많이 해야겠다). 그는 이번에도 맛있다며 먹어준다.


저번에 썼었던 칫솔로 이를 닦고, 세수를 대충 하고, 나를 롯데마트에 데려다주고는 가버렸다.

롯데마트에 나온 건 잘한 일인 것 같다. 나 홀로 집에 남았다면 반드시 울었을 것이다.

그리고는 또 기도한다. 허락되지 않은 이 쓸쓸한 사랑 때문에 내 몸에, 내 마음에 난 상처들을 모두 모아 하루라도 빨리 나를 죽게 만들도록. 죽을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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