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것도 사랑으로 취급되나요?> 56

담담한 받아들임

by 에스

56



9월


지난주 토요일에는 작년 학교 선생님 결혼식이 서울에서 있었다.

그가 올걸 예상했기에 그다지 친한 사이는 아니었지만 결혼식에 참석했다.

그는 결혼식이 끝나고 연극을 보러 가야 해서 오래 볼 순 없었다. 결혼생활이 행복해서인지, 얼굴은 더 살이 통통하게 올라 있었다.


결혼식에 쓰인 생화는 식이 끝난 후 사람들이 자유롭게 가져가도록 하고 있어서 우리는 경쟁적으로 꽃다발을 모았다.

하얀 수국과 하얀 장미들 따위였는데, 예쁜 수국을 찾아달라는 말에 그는 여기저기 둘러보더니, 커다란 수국 한 다발을 내게 주었다.


그리고 그 수국은 피아노 위 유리잔에 예쁘게 꽂아두었다.

물에 줄기를 담가두니, 하루 지나자 생기를 되찾았다. 나는 물끄러미 그 눈덩이처럼 흰 수국을 바라보며, 이 수국이 지기 전에 그에게서 연락이 왔으면, 했다.

그다음 화요일이 되자, 나는 우울함이 바닥 끝까지 내려앉았다. 혼자 자전거를 타고 나가서 뭔가를 사러 갔다. 그 전날 술과 수면유도제를 같이 먹었더니 하루 종일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자전거는 휘청거리고, 몇 번 넘어질 뻔했다.

집으로 가는 긴 가로수길을 달리는 도중 전화가 왔다. 그 사람만 따로 저장해 놓은 전화벨 소리에 나는 단박에 자전거를 멈추고 전화를 받았다. 우리는 꽤 오래 통화를 했다. 그는 내가 K와 헤어진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나는 담담하게 내 이야기를 했고, 그는 묵묵히 들어주었다. 우리는 기약 없지만, 언젠가는 만나기로 약속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다시 돌아오는 길에, 나는 결국 자전거를 타다가 넘어져서 무릎을 까였다. 정말이지 되는 일이 없는 하루네, 하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자전거를 질질 끌고 걷다가 근방의 편의점을 발견하고는 맥주를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1월 5일


경기도로 이사 간 그가 겨울방학 동안 대학교 기숙사에 지내며 대학원 수업을 듣게 되었다.

그가 수업이 끝난 시간에 우리는 학교 안 카페에서 만났다. 그는 내가 새로 만나고 있는 Y에 대해 아주 냉소적인 관심을 보였다. 틈틈이 한 전화통화에서도 태도는 변함없었다. 동시에 그는 모든 면에서 염세주의자가 되어 있었다. 결혼하면 남자는 비뚤어지는 걸까, 하고 생각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흰색 셔츠를 입고 이왕 하는 거 즐겁게 하자고 외치던 사람은 이제 없었다. 뭐가 그를 변하게 만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는 달라져 있었다. 우리는 어둑어둑해져 카페에서 나와 근처 식당에서 제육볶음을 먹고 헤어졌다.



2월


2016년 9월에 나는 홀로 제주도 여행을 다녀왔었다.

어느 카페에서는 엽서에 편지를 써서 주면 100일 후에 받는 사람에게 전달하는 이벤트를 하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엽서를 썼다. 그 당시의 나는 짧은 시기에 많은 일들을 겪은 만큼 인간관계에서 깨닫게 된 것들이 많았다.


내가 속을 많이 썩였다고. 이제야 결혼을 축하한다고 썼다. 그건 진심이었다.


100일이 지난 후, 그에게서 엽서를 받았노라 카톡이 왔다. 그리고 경기도로 파견 갔던 그는 다시 오송으로 돌아올 거라며, 나에게 관외 복귀 공문을 봐달라고 부탁해 왔다. 아무래도 여러 사정이 있는 모양이었다.


결국 그는 자신이 떠났었던, 나조차 떠났던 그 학교로 다시 복귀해서는 2학년을 맡았다.

집 근처 아파트에 집을 얻었다며, 새 학기를 서로 응원했다. 그 후로도 아주 가끔씩, 전화나 카톡이 왔다. 심지어는 학교 메신저로 쪽지를 보내오기도 했다. 내용은 항상 실없었다. 잘 지내고 있어 보인다, 날씨가 덥다 등 시시콜콜한 말들이다. 나도 똑같이 대답해 주었다.

예전처럼 만나달라거나 하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 그런 말은 이제 필요치 않은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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