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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스 Oct 18. 2023

다 함께 제주로

3부 EP06. 정신과 의사 선생님과의 작별인사


   한 달 만에 육지로 올라와서 정신과 진료를 받았다.


   나는 공방을 차린 얘기를 했다. 의사 선생님은 대단하다며 응원을 해 주셨다. 그리고 매번 육지로 오게 하는 게 너무 미안하다며 병원을 제주로 옮기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을 하셨다. 이제 육지에 집이 없는 처지라 그러겠다고 했고, 선생님은 다른 병원에 제출할 소견서를 써 주셨다. 우리는 담담하게 마지막 인사를 나누었다. 이제 더는 의사 선생님을 볼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찡해졌다. 


   진료를 받고 나와서 정말 오랜만에 별군을 만났다. 그가 살고 있는 번화가 동네로 가서 맛있는 밥을 먹고 카페에서 그동안의 근황에 대해 이야기했다. 별군은 변함없이 자신의 직업에 만족하고, 열심히 일하고, 자부심 있는 멋진 사람이었다. 나는 겨울에 꼭 제주로 놀러 오라고 했다. 말을 하긴 했지만 워낙 바쁜 인물이라, 아마 쉽지 않을 것이다.


   저녁에는 울산으로 내려와서 엄마가 계신 본가에 갔다. 오랜만에 보는 엄마는 전화로 통화할 때와는 다르게 상태가 많이 안 좋았다. 염증성 위장병이 심해서 열이 났다가 추웠다가 하고 밥도 제대로 못 드신다고 했다. 하루에 밥을 한 공기 먹을 정도이니 심각한 상태임에 틀림없었다. 나는 엄마의 상태에 충격을 받고, 이대로 혼자 두면 안 될 것 같다고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그래서 제주로 같이 가자고 설득을 했지만, 엄마는 가기 싫다며 거절을 하셨다. 나는 며칠 내내 설득을 해서 결국은 허락을 받아 내는 데 성공했다.


   제주에 내려오기 전, 동생이 휴가를 내서 간만에 모이기로 했다. 대구의 동생 집에서 만난 우리는 팔공산 근처에 있는 카페를 갔다. 원래는 팔공산을 등산해 보려고 했었는데 장마철이라 비가 부슬부슬 계속 내린 탓이다. 카페를 두 군데나 갔다가 저녁 6시쯤 렌터카를 반납하고 동생 집이 있는 동네로 귀가했다. 근처 식당에서 엄마가 좋아하시는 양념갈비를 먹었는데, 워낙 허름하고 외진 동네라 그런지 맛있지는 않았다.

   동생이 사는 집은 원룸이지만 거의 투룸이나 마찬가지로, 꽤 넓은 안방과 부엌 겸 거실이 갖춰져 있었다. 본인이 산 깨끗한 싱글침대가 있고, 바닥에는 회색 카펫까지 깔아놓아서 아늑했다. 엄마는 방에 들어서자마자 잔소리를 한 바가지 하시며 방청소를 시작하셨지만, 나는 집이 생각보다 괜찮다고 칭찬을 해 주었다. 이것저것 정리를 하고, 밤늦게서야 우리는 보드게임을 시작했다. 울산에서 가져온 '우노'를 가지고 거의 새벽까지 깔깔대며 놀다가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엄마와 나는 동생과 작별하고 울산으로 돌아왔다. 엄마 집에 있는 만두를 데려가기 위해 돌아온 것이다. 진정제를 먹여 울부짖지는 않지만 찡얼대는 만두를 데리고 기나긴 여정을 거쳐 제주에 도착했다. 엄마는 비행기를 정말 무서워하시는데, 그래도 침착하게 한 시간여를 버티시는 데 성공했다. 공항에는 강이 데리러 나와서 편하게 집으로 갈 수 있었다. 강은 일이 있어서 우리를 데려다주고 인사만 잠시 나눈 후 다시 차를 타고 사라졌다. 우리는 만두를 집에 데려다 놓고 공방으로 왔다. 엄마는 공방을 꼼꼼히 둘러보시면서 칭찬과 잔소리를 한 번씩 번갈아 하셨다. 모든 걸 그만두고 차린 8평도 안 되는 작디작은 나만의 공간. 그걸 보는 엄마는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제주 오기 싫다고 버티던 것과는 달리, 엄마는 우리 집에 오시자마자 눈빛이 달라지셨다. 이제까지는 의욕이라고는 없는 병든 노인이었는데, 지금은 반짝거리는 눈으로 우리 집과 사무실을 왔다 갔다 하며 잠시도 가만있지 않고 정리와 청소를 하셨다. 나는 공방에서 앞으로 무엇을 할지 엄마께 브리핑했다. 그리고 오일파스텔을 직접 보여드리며 한 번 체험해 보자고 권했다. 엄마는 초등학생 이후로는 그림을 그린 적이 없는 분이라 처음에는 쭈뼛거리며 싫다고 하셨지만, 막상 두 시간 여를 오일파스텔 그림을 그리시고 난 뒤 오일파스텔에 빠지셨다. 매일 공방에 오셔서 심심할 때마다 그림을 한 장, 두 장씩 그리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간단한 해바라기, 복숭아 같은 것들을 그리시다가, 나중에는 제주의 야자수와 폭포를 멋지게 그리고는 뿌듯해하셨다. 취미생활이라고는 즐길 여유가 없었던 바쁜 우리 엄마. 괜스레 마음이 찡해졌다.


   휴무날에는 엄마가 보고 싶다고 하신 폭포를 보러 가고, 강과 셋이서 김녕으로 물놀이를 가기도 하며 엄마가 제주의 여름을 최대한 즐기시도록 신경을 썼다. 퇴근하고 집 현관문을 열면 따끈한 밥 냄새와 함께 만두가 나를 맞이한다. 엄마의 다녀왔냐는 목소리. 만두야, 하고 부르면 느적느적 일어나서 앞발을 내밀며 켜는 기지개. 그 모든 것들이 온전히 박제해 놓고 싶을 만큼 그립고, 사랑스럽다.


여행 싫다냥!!!!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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