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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스 Nov 12. 2023

꿈에 대해 결론을 내리다

3부 EP10. 평행세계에 관하여

   이상한 꿈을 꿨다.


   꿈속에서 나는 이유를 모르겠지만 엄청나게 화가 나 있었다. 등장인물은 아빠 외에는 기억나지 않는다. 여하튼, 나는 무언가에 너무나 화가 난 나머지 죽기로 결심을 했다. 눈앞에는 거대한 사각 수조가 있었는데, 그 속에 물고기들과 손가락 굵기의 뱀이 살고 있었다. 벽에는 뱀에 대한 주의사항이 붙어 있었다. 물리면 죽을 수도 있는 맹독을 가진 녀석이니 조심하라는 문구였다. 나는 망설임 없이 수조 속으로 오른손을 넣어 뱀에게 손목을 들이밀었다. 뱀은 내 손을 보자마자 손목 안쪽의 핏줄이 지나가는 부분을 콱 물었다. 작은 이빨 두 개가 살 속을 파고드는 느낌이 생생하게 전해졌다. 나는 뱀을 떨어뜨리려고 손을 흔들었는데, 갈고리 형태의 뱀 이빨이 살에 걸려서 떨어지지 않고 대롱대롱 매달렸다. 뱀도 나도 요동을 쳤다. 여러 차례 팔을 흔든 후에야 뱀은 떨어져 나갔다. 나는 곧바로 왼쪽 손도 내밀었다. 뱀은 왼쪽 손목도 물었고, 똑같이 여러 번 흔들어 뱀을 떨쳐내었다.

   그러고 나서는 바닥에 쭈그려 앉아 죽기를 기다렸다. 손끝이 조금씩 저려왔다. 손가락 끝부터 아주 조금씩. 나는 바닥에 앉아서 손이 마비되는 기분을 생생하게 느꼈다. 그러나 그뿐, 더 이상 독이 퍼지지 않아서 나는 죽지 않았다. 나는 또다시 화가 치밀었다. 왜 안 죽는 거야. 한참을 기다렸는데.


   그러다가 잠에서 깼다. 뱀한테 물려 자살하는 꿈이라니, 진짜 웃기다.라고 생각하고 다시 잠들었다. 꿈은 이어졌다. 꿈속의 나는 죽지 못하자 방법을 바꾸기로 한 것 같았다. 장소는 학교 과학실 같은 곳으로 바뀌어 있었다. 아무도 없었고, 동그랗고 하얀 작은 약병 같은 것에서 알약 두 개를 꺼내서 먹었다. 이것 역시 먹으면 위험한 약인지, 나는 또 죽음을 기다렸다. 그러나 바닥에 쓰러졌을 뿐 죽지 않았다.

   어느 순간 잠에서 깨자 아침이 되어 있었다. 어처구니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왔다. 살다 살다 별 이상한 꿈을 다 꾸는구나. 그렇게 원했는데 죽지 못하다니 아쉬운데,라는 생각도 함께. 이제껏 죽는 꿈은 꽤 많이 꾼 편이었다. 대부분 총에 맞아 죽는 꿈이었다. 꿈에서는 전쟁이 나거나 외계인이 침공을 해오고, 나는 허둥지둥 도망치다가 죽임을 당하는 편이다. 그런데 이렇게 스스로 죽으려고 하는 꿈은 처음이었다. 꿈속의 나와 깨어있을 때의 내가 동일시된 것 같았다. 그날 하루 종일 꿈에 대한 생각을 놓을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강한 확신 같은 것이 확 들었다. 확신의 근거는 뱀이었다. 나는 이제껏 뱀을 제대로 본 적도 없고 뱀에게 물리는 것은 상상도 해본 적이 없다. 그런데 뱀에게 물리는 꿈을 꾼 것도 이상한 데다가, 무엇보다도 물리고 난 후의 상황이 생각할수록 신기했다. 보통 뱀에게 물리는 생각을 할 수는 있어도 물린 후에 뱀 이빨이 걸려서 잘 떨어지지 않는다고까지 디테일하게 생각하기는 힘들다. 애초에 꿈을 꾸기 전에는 갈고리모양의 뱀 이빨 두 개가 쉽사리 떨어져 나가지 않을 거란 걸 알 수조차 없었다. 그런데 이렇게 자세하고 생생한 꿈을 꾸고 나니 꿈이라는 것이 마치 어딘가에서 실존하는 또 다른 현실처럼 느껴졌다. 다른 세계 속의 내가 겪은 일이 아닐까. 이제껏 내가 꿈을 많이 꾸는 이유도 그만큼 또 다른 내가 무한히 많이 존재한다는 뜻이 아닐까. 전쟁 상황에 처한 나, 누군가에게 쫓기는 나, 누군가를 쫓는 나, 하늘을 나는 법을 알게 된 나, 부모님이 이혼하지 않은 나, 퇴사하지 않은 나... 원래 평행세계관을 믿고 있던 나였지만 뱀 꿈을 계기로 그 믿음은 더욱 확고해졌다. 동시에 이렇게 미쳐가는 건가, 싶어 순간 무서워졌다


   나는 강에게 조심스럽게 꿈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그는 과학 영화와 물리학에 대한 영상을 굉장히 많이 보는데, 내 얘기를 듣더니 나를 미친 사람 취급하지 않고 요즘은 우주 홀로그램설 같은 것도 있다며 신과 우주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해 주었다. 우리는 세상의 존재와 신에 대해 열띤 토론을 했다. 알면 알수록 이 세상은 신기하다. 애초에 누가 만든 것일까. 어디까지 존재할까. 차원이란 무엇일까. 무한히 다른 세계에 무한한 나는 과연 존재할까. 죽음은 무엇일까. 죽으면 '나'라는 영혼은 어떻게 될까. 그 어떤 질문에도 답을 찾지 못한 채, 나는 오늘도 꿈을 꿀 준비를 한다. 오늘은 죽음과 관련 없는, 행복한 꿈을 꾸기를. 굿나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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