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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l Kim Apr 13. 2021

0과 6이 무서워요

새로 시작된 숫자의 공포

잘 때는 꼭 엄마를 찾는 태민이가 요새는 가끔 내 손을 잡고 방으로 들어갈 때가 있다. 어제도 그렇게 체포 (?)되어 아이와 함께 침대에 누워 뒤굴거리며 폰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아이가 소리쳤다.


"10시 7분 하고 싶어!" 


내 폰을 들여다본다. 10시 6분. "태민아, 우리 숫자 세어 볼까? 59, 58, 57..." 

기특하게도 아빠를 따라 열심히 세는 아들. 이러다 보니 어느새 10시 7분이 되었고, 그걸 확인한 후에야 아이의 눈엔 다시 평화가 감돈다.




 


자폐 아동이 감각 문제 (sensory issue)를 가지고 있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 태민이도 시각과 청각, 촉각 등이 매우 예민한 편인데, 시간이 지남에 따라 민감하게 느끼던 자극에 둔감해지기도 하고 반대로 아무렇지 않아 하던 걸 갑자기 심각하게 받아들이기도 한다. 어릴 때만 해도 본인이 모든 문을 다 닫아야 했고 보이는 모든 엘리베이터를 꼭 타야 직성이 풀렸지만 요샌 이런 강박은 거의 없어졌다. 또한 이전엔 이발기의 사용이 아예 불가능할 정도로 이를 무서워했지만 요새는 살살 달래가면서 하면 이발기로 옆머리를 짧게 치는 정도는 가능하다.


이런 긍정적인 변화도 있는 반면 갑자기 새로운 증상이 시작되기도 하는데, 요새는 숫자에 대한 민감함을 보여서 나와 아내를 곤혹스럽게 만든다. 우리 집 안에는 시계, 밥솥, 전자레인지 등 다양한 기기가 숫자를 보여주는데, 주로 0, 4, 6으로 끝나는 숫자를 보게 되면 싫다고 난리를 친다. 빨리 다음으로 넘어가게 하라는 식이다. 밥솥은 자기가 껐다가 켜서 숫자를 리셋해버리고, 전자레인지는 아예 숫자가 나오는 부분에 종이를 붙여버렸지만, 핸드폰이나 아이패드 등 시간이 자동으로 세팅되는 전자기기의 경우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 어제도 아이패드로 영상을 보던 태민이는 갑작스레 "8시 1분 하고 싶어!!!"를 외치며 두 번이나 방문을 열고 들어가 영어 수업을 듣던 와이프를 당황시키기도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왜 0, 4, 6이 무서운 건지 모르겠다. 아마 아이 본인이 설명해주지 않는 이상 알 길은 없겠지. 그저 아이가 무서워할 때마다 달래주고 이 순간을 넘길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일 것이다. 언젠가 아이 스스로 '아무것도 아니구나'라는 걸 깨닫고 이를 넘겨버릴 수 있기를 바랄 뿐... 


그나저나 늘 침대에서 폰을 보다 늦게 자던 와이프가 '10시 17분 하고 싶어!!'를 몇 번 당하더니 요샌 잘 때 폰을 마루에 놓고 들어간다. 아들, 혹시 엄마 잠 푹 자라고 효도하는 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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