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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l Kim Sep 18. 2021

Allergy & Sensory

하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들 태민이에게는 견과류 알러지가 있다. 땅콩, 호두, 잣, 피칸 등 거의 모든 견과류에 심한 반응을 보이며, 조금이라도 먹으면 몇 분 지나지 않아 온몸을 벅벅 긁으며 밭은기침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심지어 컨디션이 좋지 않은 때는 냄새만 맡아도 증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그나마 항히스타민제를 먹으면 금세 증상이 가라앉으니 다행이긴 하지만, 약을 먹으면 굉장히 졸려하고 컨디션이 떨어지는 모습이 완연한 데다 내성이 생길지 않게 이 독한 약을 며칠씩 먹여야 하니 약을 주더라도 마음이 편할 수는 없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약을 먹게 되면 감각 문제 (sensory issue)가 굉장히 심해진다는 점이다. 아주 심한 편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태민이 역시 자폐 아동 특유의 민감한 감각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다. 남들에겐 아무것도 아닌 조그만 피부 자극에도 죽어라 낄낄거리고, 신호등 불빛의 깜빡거림을 엄청난 집중력으로 쳐다보기도 한다. 그나마 나와 아내가 코어 운동을 시키고 마사지를 하는 등의 노력을 하면 이런 민감함이 조금씩 줄어드는데, 알러지 약을 먹이는 순간 각고의 노력을 통해 얻어낸 진전이 사라지고 다시 Sensory가 증가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거센 비바람을 뚫고 비탈길을 겨우 몇 발 걸어 올라갔는데 미끄러져 내려온 몸이 흙투성이가 된다면 아마 나와 비슷한 기분을 느낄 것이다.






아이가 학교와 테라피를 다니기에 우리가 아무리 조심시킨다 하더라도 이런 일들을 완전히 막을 수는 없다. 최근에도 두 번이나 알러지 이슈를 겪었다. 지난달 여름방학 캠프 등굣길에 스쿨버스에 굴러다니던 초코바를 집어먹은 후 눈이 혈안이 되어서 학교에 앰뷸런스가 왔었고, 어제는 갑자기 아이의 눈두덩이 퉁퉁 부어올라 급히 알러지약을 주었지만 부기가 완전히 빠지지 않아 오늘도 오전 수업만 마치고 조퇴시켜야 했다 (아마도 어제 학교에서나 하굣길 스쿨버스에서 굴러다니는 너트 조각을 입에 넣지 않았을까 싶다). 약을 이틀째 먹이니 붓기는 많이 가라앉았지만, 집에서나 테라피에서나 평소와 달리 집중력이 상당히 저하된 모습을 볼 수 있었고, 별거 아닌 일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며 계속 떼를 써서 결국 아이는 나와 아내에게 혼이 나고 울다가 잠이 들었다. 


혼낸 나도 속상한 마음에 독한 술을 들이켜야 했다. 오늘은 예상치 못한 영주권 관련 진전이 있어 하루 종일 감사하고 기분 좋은 날이었는데 결국 답답한 마음으로 마무리하게 된다. 자폐든 알러지든 하나만 있었으면 이 정도는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면 속상함은 더욱 커진다. 아이의 잘못도 나의 잘못도 아닌데 언제까지 이렇게 힘들어야 할까? 이 길에 끝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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