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폐인의 '변화'에 대한 공포
... 항상 기억할게 너의 그 모든 걸
사랑보다 깊은 상처만 준 날
이제 깨달았어 후회하고 있다는 걸
박정현, 임재범의 '사랑보다 깊은 상처' 중
오 주여. 또 시작이냐. 요새 뜸하다 했더니만...
아이는 말끔한 손등을 보여주며 울부짖는다.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다. 굳이 말하자면 문제가 없는 것이 문제랄까. 활기차게 놀다 보면 여기저기 부딪히고 상처가 나서 딱지가 앉는데, 아이에게는 그것이 매우 소중한 무엇인 모양이다. 딱지가 앉아 있을 때는 하루에도 몇 번이고 상처가 잘 있는지 확인하다가, 다 아물어 사라진 것을 확인한 순간 집은 아이의 고함과 울음소리로 엉망이 된다. 운 좋을 때는 난리가 하루에 끝나지만, 어떤 때는 며칠간 잃어버린 상처를 찾으며 징징거리면서 필자 부부를 곤혹스럽게 한다.
다양한 자폐 관련 책을 읽고 육아 경험이 쌓이면서 자폐인에게 '변화'가 무서울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태생적으로 민감한 그들에게 이 세상은 예측 불가능한 자극 투성이기에 자신의 일상이 깨지는 것이 두려운 것이다. 어제까지 나와 함께 있던 상처가 없어진 걸 알면 아끼는 장난감을 잃어버린 기분일까? 아니면 내일 가기로 한 놀이공원 소풍이 취소되었을 때의 기분? 자폐인이 아닌 필자는 도무지 알 길이 없다. 하긴 필자가 상처 때문에 이러는 태민이를 이해하기 힘든 것처럼, 이 아이도 자기의 마음에 공감하지 못하는 부모를 이해하기 힘들겠지. 어쩌겠어, 내가 이해해야지...
며칠 전 점심 무렵 학교로부터 전화가 왔다. "아이의 Anxiety가 너무 심하니 데려가는 게 좋겠다". Daycare에서든 학교에서든 이런 적이 단 한 번도 없었기에 아내는 당황해서 학교로 달려갔다. 필자는 일 때문에 함께 갈 순 없었지만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가 불안한 마음뿐이었다. 몇 분 후 엉엉 우는 아이와 함께 아내가 돌아왔고,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상처랜다" 학교에 급하게 가니 선생님이 충격받은 얼굴로 "아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라며 맞이했다고 한다. 한국말로 '상처'를 반복하며 고래고래 우는 아이에게 미국인 선생님이 무슨 일을 해 줄 수 있었을까... 그 날 내내 "상처 생길 거야", "I want 상처 please"를 반복하며 집을 뛰어다니는 아이를 보며 지끈거리는 머리를 붙잡아야 했다.
아이를 사랑하고 아이를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필자이지만,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마음에 시린 상처가 생기며 좌절감이 들 수밖에 없다. 분명히 하루하루 발전하고 있고 항상 밝게 웃는 모습을 보여주더라도 이 아이에게 어려움이 있다는 것을 잔인할 정도로 명확하게 드러내니까. 마음 상태가 좋지 않을 때 이런 일이 생기면 'Why me? Why him?'의 각종 변주를 마음속으로 계속 외칠 수밖에 없다. 나의 잘못도 아이의 잘못도 아닌데 왜 이리 힘들어야 하는 걸까? 어쩌면 네가 아니라 그냥 내 마음의 상처가 문제인 게 아닐까.
그저 상처가 사랑보다 깊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