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스 괴담 : 어머니의 전쟁

여름맞이 오피스 괴담 제14화

by 공감디렉터J


Q의 아버지는 흙냄새와 쇠 냄새가 몸에 밴 사람이었다.

그는 중견 건설사인 ‘반석건설’의 대표였지만, 그의 본질은 책상 앞의 경영자가 아닌, 현장의 정직한 기술자에 가까웠다. 그의 철학은 설계도처럼 명료했다. 지정된 규격의 철근을 쓰고, 약속된 배합비의 콘크리트를 타설 하며, 약속한 공사기일을 목숨처럼 지킨다. 하도급 업체 대금은 단 하루도 미루지 않았고, 이익을 위해 안전을 저버리는 일은 죄악으로 여겼다.


그런 강직함은 거대 시공사나 부패한 발주처에게 눈엣가시였다.

입찰 담합 카르텔의 회유를 비웃었고, 악성 하자 분쟁을 예고하는 협박에도 굴하지 않았다.

현장을 어지럽히는 용역 깡패들 앞에서도 그는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법과 원칙, 그리고 해머드릴 소리를 신뢰하는 사람이었다.

그렇게 강철 같던 아버지는, 그러나 집에 오면 산처럼 따뜻하고 기댈 수 있는 존재였다.


Q가 중학생이던 어느 늦가을, 그 산이 무너져 내렸다.

완공을 눈앞에 둔 주상복합 아파트 현장. 아버지는 감리를 위해 설치가 막 끝난 엘리베이터에 탑승했다.

그리고 다시는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뉴스에서는 ‘안전점검 중이던 엘리베이터의 와이어로프 파손으로 추정되는 사고’라고 보도했다. 하지만 업계 사람들은 쉬쉬했다. 갓 설치한 독일제 트랙션 케이블이 끊어지고, 3중 안전장치가 동시에 먹통이 되는 것은 사고가 아니라 작품이라고. 누군가의 치밀한 악의가 빚어낸 살인이라고.

아버지의 회사도, Q의 가정도, 모든 것이 40층 높이에서 추락한 엘리베이터와 함께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절망의 잿더미 속에서, Q의 어머니가 일어섰다.

그녀는 남편의 피와 땀이 밴 ‘반석건설’을, 그의 분신과도 같은 회사를 하이에나들에게 넘겨줄 수 없었다.

그녀는 연약한 피아노를 치던 손으로 남편의 거친 안전모를 썼다.

그녀의 전쟁은 처절했다. 남편의 이름만 믿고 계약했던 고객들을 붙잡기 위해 밤낮으로 뛰었고, 경쟁사들이 퍼뜨린 악의적인 소문과 싸웠다. 과거 남편이 쌓아 올린 신뢰의 조각들을 하나하나 다시 주워 모았다.

현장을 점거한 용역회사 앞에서는 피하는 대신, 그들의 우두머리와 밤새 소주를 마시며 그들의 자식과 미래를 이야기했다. 그녀는 그들을 적으로 두는 대신, 설득하고 회유하여 자신의 방패로 만들었다.

그녀에게 회사는 죽은 남편의 또 다른 모습이었다.

회사를 지키는 것은, 남편의 영혼을 곁에 두는 유일한 방법이었을지도 모른다.


어머니가 삶의 의지를 다지며 전장을 헤쳐나가는 동안, Q는 묵묵히 제 몫을 해냈다.

어머니의 그림자를 응원하며 우수한 성적으로 대학을 졸업했고, 모두가 선망하는 대기업에 입사했다.


“회사 생활은 할 만하니?”

“그럼! 선배님들이 얼마나 잘해주시는데. 집보다 편해, 아주.”

안도와 서운함이 교차했지만, 딸의 밝은 얼굴에 어머니는 오랜만에 희미하게 웃었다.


Q에게 남은 가족은 어머니뿐이었다. 어머니를 위해 Q는 외로움을 견디고 모든 것을 혼자 해냈다.

어머니 또한 마찬가지였다. 모녀는 서로의 존재가 버팀목이자 살아가는 이유였다.


“지난번에, 그 높으신 분 들하고 중요한 자리 있다고 했잖아. 그건 잘 끝났어?”

어머니의 물음에 Q는 잠시 머뭇거렸다.

“... 응.”

“왜... 뭐 실수했니? 괜찮아. 신입 때는 다 실수하면서 배우는 거야.”

“... 엄마, 나...”

Q의 목소리가 잠겼다. 어머니는 직감적으로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느꼈다.

“응, 딸. 무슨 일인데? 엄마한테 말해 봐. 괜찮아.”

“... 아니야. 다음에 얘기할게.”


회사 생활이 마냥 즐거울 리 없다. 어머니는 그렇게 생각했다. 누구보다 자신이 잘 아는 세상이었다.

그러나 딸의 영혼이 어떤 끔찍한 방식으로 조금씩 갉아 먹히고 있는지는, 결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엄마, 나 그냥 회사 그만두면 안 될까? 엄마 회사에 자리 하나만 만들어주면 안 돼?”

“또 그 소리. 우리 강단 있던 딸이 왜 이렇게 약한 소리를 할까. 그 회사는 배울 게 많은 곳이야. 딱 10년만 채우자, 응? 그때 되면 엄마가 우리 딸 부사장 자리 만들어 놓을게.”

“... 그래. 그냥 한번 해본 소리야.”


그 대화가 있은 지 1년 후. Q는 집으로 영영 들어왔다.

극심한 불안과 공황장애 진단이 적힌 병가 서류와 함께.

Q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잠들지 못했고, 먹지도 않았다. 그저 어두운 방 안에 유령처럼 틀어박혀 있었다. 어머니는 딸의 눈을 보았다. 그 순간, 어머니의 세상이 다시 한번 무너져 내렸다.

그 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빛도, 희망도, 어머니가 알던 딸의 모습도 없었다.

남편을 잃었을 때와는 다른 종류의, 살아있는 것을 눈앞에서 잃어버리는 공포였다.

남편의 유산을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바쳐 싸우는 동안, 정작 세상에 남은 단 하나의 보물, 자신의 딸을 잃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날 밤, 어머니는 잠들지 않았다. 그녀의 슬픔은 이내 차가운 분노로 응축되기 시작했다.

그녀는 전화기를 들었다. 그녀가 지난 십수 년간 사업을 하며 구축한 인맥은 단순히 비즈니스 네트워크가 아니었다. 그것은 전쟁을 통해 엮인, 피보다 진한 연대였다.

어떤 시스템이든 우회하는 보안업체, 돈으로 무엇이든 알아내는 흥신소, 법의 그림자 속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용역회사의 대표들. 그녀는 그 모든 연줄을 동원하기 시작했다.

딸의 영혼을 파괴한 그 회사의 모든 것을, 임원들의 사생활부터 말단 사원들의 평판까지, 샅샅이 캐내기 위해서.


남편은 콘크리트와 강철로 자신의 유산을 지켰다.

어머니는 이제, 딸의 부서진 영혼을 위해 자비 없는 칼을 빼 들었다.

복수의 설계도가 그녀의 머릿속에서 그려지기 시작했다.


"본 소설은 허구이며, 등장하는 인물, 단체, 지명, 사건 등은 실제와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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