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아침, 쓴 커피가 주는 안도감

서늘, 질문하는 직장인

by 이솔지

서늘은 아무리 해도, 자기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없었다.

삶의 의미. 그런 게 정말 존재하기라도 한다면 말이다.


삶의 의미란 무엇인가. 오래도록, 혜주를 사로잡아 온 의문이었다. 그 의문을 풀고 싶어 혜주는 공부했고, 글을 썼고, 학위 논문을 썼고, 봉사활동을 다녔고, 죽지 않고 살았다. 그러나 여지껏 찾지 못했다. 애초에 답이 없는 질문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답 없는 질문’이 이토록 오래 사람을 괴롭힌다. 서늘에게 삶은 그런 방식으로 흘러갔다. 서늘에게 삶이란, 명사가 아니라 동사였고, 고정되어 있지 않았으며 지독하게 역동적이었다. 혼란과 혼돈 그 자체였고, 너무 변화무쌍하다 보니, 오히려 그 변화무쌍조차 지겨워지기 시작했다.


서늘은 아침마다 커피를 마셨다.

진하게, 쓰게.

블랙 커피 가루를 남들보다 1.5배에서 2배는 더 많이 넣어 마시곤 했다. 때로는 3배까지도!

그 쓴 맛이 안정감을 주었다.

오늘 아침도 쓰구나, 여전히 쓰구나. 변함없이 쓰구나, 하는 생각에 안도했다.

누군가 서늘의 커피 타는 모습을 보면 기겁하고는 했다. 그런 반응도 서늘은 좋았다. 자신이 늘 하고 싶던 일, 이 세상을 놀래키거나 이 세계의 견고함에 균열을 일으키는 일을 아주 조금이라도 실현하는 느낌이었으니까. ‘남들과 다른 무언가’를 조금이라도 한다는 느낌은, 꽤 좋았다.


학부 때 조금 흥미가 느껴져 진학한 대학원. 그 시절은 서늘의 삶 속에서도 가장 어지러운 시기였다. 졸업하면 뭘 할 수 있을까, 어디에 이 학문을 써 먹을 수 있을까, 이 공부의 본전을 뽑을 수 있을까? 같은 생각들 속에서 마음은 타들어가기만 했다.

그런 마음이니, 연구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원하는 바는 빠른 졸업과 탈출뿐이었다.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적당히 지도 교수님의 구미에 맞는 논문을 쓰고 나왔다.


그렇게 졸업을 하고 나니, 매번 지나치던 햇살이 눈에 들어왔다.

하늘이, 눈부셨다. 졸업식은 2월 말. 소금 덩어리처럼 쏟아지는 눈 속에서 서늘은 학위기를 들고 사진을 찍었다. 동시에 구직자가 되었다.


*


운 좋게 직업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직업.

생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자신의 적성과 능력에 따라 일정한 기간 동안 계속하여 종사하는 일.

직업이 주는 안정감은 아주 잠깐만 유효했다.


*


직업인이 되고 나니, 왜 공부를 하고 있을까, 라는 의문은 금세 몸을 바꾸어 다시 나타났다.


무엇을 위해 일을 하고 있나.


무엇을 위해 이 시간을, 회사에 쏟고 있나.


우스운 일이었다. ‘생계를 유지하기 위하여‘라는 명확한 답이 있는데도, 계속 질문을 던지다니. 그런데, 그조차 서늘에게는 명확한 답이 아니었다. 생계를 꼭 유지하기 위해 이 방법밖에 없는가, 이렇게 버텨내며 유지하는 생계에는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가, 따위의 질문이 다시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러던 차에, 누군가 이렇게 말하는 걸 들었다. 자기는 공짜 커피를 마시러 회사에 온다고. 그게 왜 공짜 커피냐고, 시간과 노동을 팔아 얻게 되지 않느냐고 묻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하지만 그 말은 어쩐지 서늘에게 강력한 영향을 주어 버렸다.


이게 공짜 커피라면,


서늘은 검은색 봉지를 하나 까서 컵에 털어 넣으며 생각했다.


나는 더 마실래.


고작해야 비품 축내기 주제에, 그게 작은 반항이라든가 비행이라도 되는 것처럼, 약간은 꼬소한 감정을 느끼며 검은 가루를 컵에 몇 차례 더 뿌렸다. 얼마 후에 이런 말이 생겼다. ‘소확횡’. 소소하지만 확실한 횡령. 그렇다면 나는 소확횡을 하고 있는 걸까, 라고 서늘은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서늘이 그 쓴 커피 한 잔에 부여하는 의미는 두세 배 분량의 공짜 커피나, 소확횡 그 이상이었다.

인상이 찌푸려질 정도의 쓴 커피로 목구멍을 축이고 나면 모든 일들이 조금 견딜 만해지고는 했다. 매일 아침 회의실에서 들리는 고함도, 밀폐된 공간에 직원들이 닭처럼 채워져 있는 사무실의 공기도, 하고 싶은 일이 뭔지도 모른 채 타자를 치면서 보내는 시간도, 줄어들지 않는 자신의 불안감도.


아직 미각만큼은 제대로 살아 있다는 데서 오는 안도감인지, 커피 맛만큼은 일정하다는 데서 오는 안심일지. 사실 그런 건 다 상관없을지도 모른다. 자꾸 ‘이게 무슨 의미야?’라고 질문하는 자기의 뇌를 커피 물에 적셔 멈추고 싶다.


그래도 서늘은 계속 질문을 멈추지 않는다.

오늘도 커피를 타면서, 그리고 마시면서 묻는다.


나의 의미는 뭐지?





*선곡: 크러쉬, <Beautif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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