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내린다
비에는 너의 미소가 쌀알처럼 담겨
나는 가만히
네 목소리를 들으며 서 있다
손가락 사이로 흐르는
빗줄기
가렵기보다는
차갑기보다는
그리워서
가슴에 세모를 그린다
너와 내가 그렸던 날들에 대한 그리움
지워진 조각
흔적 없는 모래 위 글씨들
빗줄기가
파도가
쓸어 간다
하나 둘 셋 넷
의미 없이 반복하는 숫자 세기
모래사장에 쪼그려
얼굴을 가린 아이
어깨까지 마구 자란 머리카락이
축축하게 젖어 오이 냄새가 난다
파도가 왔다 가도
아이는 고개를 들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