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살아야 하니까 살아냈다

그날 그 딸기는 가장 아름답고 예뻤다

by 솔솔솔파파

광주 큰아버지 집에 도착해서 현관문을 열었을 때를 어머니는 아직도 기억하고 계셨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냄새가 코를 찔렀어. 썩은 냄새 같기도 하고... 정체를 알 수 없는 냄새 때문에 알 수 있었지. 시어머니가 이곳에서 제대로 돌봄을 받지 못하고 계시구나 하고. 내가 앉아서 큰 형님과 이야기하고 있는데 시어머니가 내 옆에 와서 내 등을 손으로 쓸어내리시더라고. 나는 그게 너와 같이 집에 가고 싶다고 말씀하시는 것 같았어. 그래서 큰 형님께 말씀드렸지. '어머니 제가 모시고 갈게요.'라고. 그리고 시어머니께도 여쭤봤어. '어머니, 그냥 저희 집으로 가요. 괜찮죠?' 그랬더니 아무 말씀 없이 고개만 끄덕끄덕 하시더라고."


이미 내려오기 전부터 어느 정도 마음은 먹었지만, 와서 보니 마음이 아파서 도저히 할머니를 두고 올 수 없었던 어머니. 결국 어머니는 스스로 언제 끝날지 모르는 그 고난의 길을 가기로 결심하셨다.


작은아버지들이 집 근처 시장에 물건을 사러 간 사이, 어머니는 할머니를 씻기고 옷을 입혀서 업고 나오셨다. 작은아버지들은 집으로 와서 큰아버지와 할머니 모시는 문제로 이야기를 나누려 했으나, 이미 어머니가 업고 나오시니 더는 말하지 않고 순순히 어머니를 따랐다. 근처 식당에서 식사를 할 때 두 작은아버지는 어머니를 잠깐 식당 밖으로 불러내셨다.


"형수님, 이제 이렇게 모시고 가시면 형수님 아프실 때 저희에게 연락하시면 안 돼요. 저희는 이제 어머니를 모실 수 없어요."

"그래요. 내가 쓰러져도 어머니 다른 곳에 안 보내요. 걱정 말아요."


광주에서 돌아온 어머니는 할머니를 다시 깨끗이 씻기셨다. 그동안 엉성하게 씻은 탓인지 엉덩이에는 욕창이 나 있었다. 일주일 정도는 씻고, 햇빛에 바짝 말리고, 약 바르고를 반복했다. 집에 온 지 일주일이 지나서야 냄새도 많이 없어졌고, 욕창도 다 가라앉았다.


그 일을 겪은 후 어머니는 다른 집에 가서 제대로 돌봄을 받지 못하는 할머니가 가여워서 다시는 어디도 보내지 않겠다고 결심하셨고, 그렇게 6년을 더 돌보셨다.

하루 종일 아이들, 가게 일, 시어머니를 돌보고 나면 어머니는 녹초가 되었지만, 그래도 어머니는 포기하지 않으셨다.


"아니 그 시절을 어떻게 사셨어요?"

어렸을 때 두 눈으로 보고 자랐지만, 내가 기억하는 장면은 별로 없었다.

"뭘 어떻게 살아, 살아야 하니까 산 거지. 그래도 '이만하니 다행이다~' 하면서 했어. 힘들 땐 기도도 하고, 울기도 하고, 노래도 부르고 그러면서 했지."


착한 시어머니의 착한 치매. 과연 그런 것이 있기나 할까? 그 시절 어머니의 희생은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고, 그 무게를 감당하며 살아온 어머니의 마음속에는 원망보다는 체념이, 그리고 그마저도 감사함으로 승화시키려는 마음이 자리 잡고 있었다.


정신력으로 버티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다시 식사하시는 것이 불편해졌고, 잘 드시지도 못하니 기력이 떨어지고, 다시 한번 쓰러지셨다. 어머니가 쓰러지신 후 아버지가 처음으로 아침에 할머니 방에 들어가셨다. 그리고 펼쳐진 광경에 아버지는 놀라셨다. 가게 일을 하시는 아버지는 한 번도 아침에 할머니 방에 들어가지 않으셨고, 어머니도 한 번도 얘기를 하지 않으셔서 그 광경을 처음 직접 목격하신 것이다. 급한 대로 아버지는 이불을 치우고, 옷을 벗겨서 닦아 드리셨다. 하지만 이불과 옷 빨래는 하지 못하시고 마당 한쪽에 쌓아두고 출근을 하셨다. 그날 저녁 아버지는 어머니와 부부동반 친목 모임이 있으셨다. 어머니는 아프셔서 못 가셨고, 아버지는 가셨지만 거의 드시지 못하셨다.


"나중에 네 아빠 친구가 나한테 와서 말하더라고. '임사장이 그날 저녁을 거의 못 먹었는데 그 이유가 아침에 자기 어머니 변 치우고 와서 그렇다고 하더라고. 그러면서 아내가 너무 고생이 많다고...' 그런 말을 나한테 와서 할 것이지... 왜 밖에 나가서 그런 소리를 하는 거야. 안 그래?"


어머니는 살짝 미소를 띠셨다.


그 고생을 해도 아버지에게 고생한다는 말 한마디 못 들으신 어머니. 그날 아버지가 친목회에 가서 그 좋은 음식들을 못 드시고 온 것으로 조금은 보상이 되셨을까?


할머니는 갈수록 쇠약해지셨다. 정신이 멀쩡한 시간보다 그렇지 않은 시간이 많았고, 앉아 있는 시간보다 누워 계신 시간이 많았다. 어느 날 오랜만에 정신이 맑은 날이 있어서 어머니는 딸기를 사서 할머니께 드렸다. 딸기가 아주 크고 신선했다.


"어머니, 오늘은 얼굴이 아주 좋아 보이시네. 이것 좀 드셔 보셔요. 딸기가 아주 크고 신선해요."

어머니가 딸기 한 접시를 내려놓으시면서 말씀하셨다.

"정말 크고 맛있어 보인다. 얘미야, 여기~"

할머니는 딸기가 담긴 접시에서 가장 크고 싱싱한 것을 하나 골라 어머니께 내밀었다.

"어머니, 부엌에 또 있어요. 어머니 다 드셔요."

"그래도 이건 내가 주는 거니까 하나 먹어라."

할머니가 건네는 딸기는 정말 탐스럽고 먹음직스러웠다. 할머니 팔이 계속 공중에 오래 머물러 있어서 어머니도 더 이상 거절할 수 없어서 그 딸기를 받으셨다.


그리고 며칠 후... 할머니는 돌아가셨다.


마지막 맑은 정신으로 고생한 며느리에게 가장 예쁜 딸기 하나를 선물로 주고 가셨다고 어머니는 생각하셨다. 그렇게 어머니와 할머니의 인연은 끝이 났다.


어머니는 이제 그때 할머니 나이가 되셨다. 그리고 이제 그때보다 그분을 더 이해하시게 된 것 같았다. 자신의 몸이 아파서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만 살 수 있을 때. 그 사람은 무슨 힘으로 버틸 수 있을까?


살아야 하니까 살아냈다는 어머니의 말씀이 마음에 오래도록 남았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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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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