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메일을 사용하지 않는 방법

by 김영욱

인터넷은 참으로 멋진 도구이다. 기원전 44년 로마력 3월 15일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보려고 인터넷에 접속했다가, 갑작스럽게 뜨는 배너를 실수로 클릭하여 내 무의식이 원하고 있던 뜻밖의 정보를 만날 수 있게 해 주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현란하게 움직이는 하이퍼텍스트를 기웃거리다가 자신이 원래 찾으려고 했던 정보가 로마 건국 기원 44년인지 율리우스력 3월 15일인지 잊게 해 주어 자신의 어리석음을 성찰할 수 있는 계기까지 마련해 준다.


무엇보다 인터넷 메일 서비스를 빼놓을 수 없다. 오래전에는 편지 한 장을 쓰려면 어디에 처박아 두었는지 알 수 없는 편지지를 찾는 일부터 마음에 드는 봉투를 고르는 일, 글씨를 정성 들여 쓰는 일까지, 당사자에겐 헤라클레스의 열두 과업처럼 느껴질 만한 온갖 고생을 해야 했다. 그런데 메일 서비스가 나타나 우리를 이 모든 것에서 해방해 주었다. 이메일은 우표를 사고 편지를 부치러 밖에 나가야 하는 수고조차 들지 않으며 사실상 무료였다. 무료라는 게 중요한데, 국내의 한 인터넷 업체는 무료였던 이메일에 우표세를 붙이려 시도했다가 크나큰 타격을 입어 한동안 침체에 빠질 정도였다.


이런 무료 이메일의 유용함을 확실하게 이용하는 사람 중에 스팸 메일 발송자가 있다. 이들은 동일한 내용의 메일을 무수한 사람들에게 발송하는 것으로 하루를 보내는데, 이런 행위는 이메일이 유료였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들은 이 서비스를 은근한 협박성 발언을 즐기는 데 사용하며 그 내용은 대체로 다음과 같다. '보안 경고! 당신의 컴퓨터에 치명적인......', '1억 원 무이자 대출 - 마지막 기회!' 그런데 내 컴퓨터에 있는 바이러스를 치료해 주거나 1억을 공짜로 대출받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알려준 그 고마운 글을 읽으려고 제목을 클릭하면 갑자기 수백 개의 창이 아름다운 포물선을 그리거나 컴퓨터가 멈춰버리곤 했다.


스팸 발송자들의 메일이 항상 그런 식으로 동작하지는 않는다. 때론 스팸 발송자의 인터넷 상품 홍보 페이지를 보여 주기도 한다. 그런 사이트는 대개 특별한 서비스를 약속하며 가입을 유도한다. 믿음을 미덕으로 여기고 의심을 죄악으로 여기는 선량한 사람들은 그런 곳에 개인 정보를 입력하곤 하는데, 그럴 경우 천만 원 상당의 경품에 당첨되었다는 고마운 소식을ㅡ봐! 믿으면 복이 온다니까!ㅡ곧 알려 온다. 다만 지금 당장 신용카드 번호와 비밀번호, 거래 은행 따위를 입력하지 않으면 경품이 다음 고객에게 넘어간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함께 전한다. 경품을 받는데 어째서 신용카드 비밀번호가 필요한지 사이트 관리자에게 물어보면 안 된다. 그곳에 적혀있는 전화번호는 열에 아홉이 불통이라서 공연히 시간만 낭비하게 될 것이다. 전화를 받았다고 마냥 좋아해서는 안 된다. '작업'은 대개 그런 방식으로 진행되니까. 하지만 갑작스럽게 나타난 눈앞의 왕자를 미끼일지도 모른다며 경계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신데렐라 콤플렉스는 남녀를 구분하는 법이 없다.


한때 이 스팸 발송자들은 내가 관리하던 솔라리스 서버에 수만 통의 폭탄 메일을 보내서 서버의 서비스를 마비시키고 그 틈을 타 루트 권한ㅡ쉽게 말해서 우리집 안방 열쇠를 획득하려는 시도를 벌였다. 나의 인내심을 더욱더 강하게 해 주려는 그들의 시도는 아주 성공적이어서 나는 서버를 원상태로 돌려놓기 위해 며칠간 밤을 새워야 했다. 그간 학생들은 마비된 대학원 홈페이지를 보며 인터넷 세계의 유약함과 백업의 중요성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할 수 있었다. 나도 깨닫는 바가 있었다. 예수는 "네 겉옷을 가져가는 자에게 속옷도 가져가게 하라." 하고 말했는데, 바로 그런 방식을 통해 우리가 타인에게 끌려다니지 않는 주체적인 삶을 살 수 있음을 설파했다. 상대가 요구하는 것보다 더해줌으로써 내가 그 행동의 주인이 되라는 것이다. 나 역시 그런 마음가짐에서ㅡ홈페이지를 빨리 복구하라는 원성을 뒤로 한 채ㅡ해커가 이끈 것 이상으로 인터넷 프로토콜을 탐험하며 불교에서 말하는 수처작주의 삶을 실현할 수 있었다.


그런데 스팸 발송자들의 이런 고마운 행동에도 불구하고 난 이제 나에게 오는 메일의 97%를 읽지 않고 버리고 있다. 그들의 수고는 매우 고마운 일이지만, 나는 모르는 사람이 공짜로 베푸는 도움을 계속 받을 수가 없었다. 아무래도 나는 '주고받는' 일이 더 편했다. 이런 감정이 나에게만 국한되는 건 아닌 것 같다. 사례를 보면 이제 대다수의 사람이 이메일을 읽지 않는 듯하다. 그런데도 스팸 메일 발송자들은 여전히 수많은 메일을 보낸다. 이런 행위에서 낙천성을 강조하는 우리 사회의 특징을 엿볼 수 있다.


결국 수십 년 전만 해도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업무용 문서를 주고받았던 혁신적 이메일은 이제 아파트 1층에 있기 마련인 우편함 같은 존재가 되었다. <백조 왕자>에 나오는 엘리제의 남편처럼, 우편함에 편지를 넣는 사람들은 어떤 답장도 기대하지 않게 되었다. 이제 수신 여부에도 관심에 두지 않는다. 어쩌면 엘리제처럼 쐐기풀로 옷을 만들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혹시, 너도 한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