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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욱 Jul 20. 2020

공대생이여, 자부심을 가져도 좋다

교양 있는 배우자를 만나는 방법

오늘날 많은 사람이 여러 가지 이유로 위기에 처해 있다. 특히 우리가 교양이라고 부르는 기본적인 소양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은 더 큰 위기를 눈앞에 두고 있다. 이때의 교양은 "음식을 입에 넣은 채 말을 해서는 안 된다."라거나 "무대에서 쇼걸의 스트립쇼를 구경한 뒤 그녀에게 다가가 몸을 팔라고 제안해서는 안 된다."와 같은 암묵적 규칙을 가리키는 게 아니다. 일반적으로 교양은 사회의 품격 있는 성원으로서 지녀야 할 '인문학적' 지식을 뜻한다.


한 가지만 잘하면 충분히 대접받는 세상에서 교양이 무슨 소용이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우리의 교육 목표는 인간을 한 사람의 전문가로 키우는 것 아니었던가? 물론 그런 경향이 강했고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전문화된 종은 변하는 환경에 잘 적응하지 못해 일반적인 종보다 더 쉽게 멸종한다는 생물학의 연구 결과는 한 가지 분야만 연구함으로써 전문가라는 이름을 얻은 사람들이 귀 기울여 들을 만한 이야기임이 분명하다.


엔지니어를 생각해보자. 이들은 특화된 지식을 공부하고 응용하는 사람들로 자신의 분야에 관한 한 뛰어난 지식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한 가지 분야에만 몰두한 탓에 전공이 아닌 것은 거의 배우지 못한다. 그래서 이들은 종종 교양이 부족하다는 소리를 듣는다. 이런 처우는 우리가 자연과학 분야의 지식을 교양으로 치부하지 않는 현상과 관련되어 있다.


예를 들어 보자. 고흐나 햄릿을 모르면 교양이 부족한 사람이라는 소리를 듣지만, 분자 운동이나 쿼크를 모르는 사람은 교양 없다는 소리를 듣지 않는다. 소개팅 자리에서 처음 만난 남자가 고흐를 모를 때와 쿼크를 모를 때의 차이를 생각해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쿼크를 모르는 건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지만, 고흐를 모르면 무언가 문제가 있는 사람, 스타일에 결함이 있는 사람처럼 보인다.


그래서 공학을 전공한 사람은 돈벌이가 되는 안정적인 직업을 얻더라도 인문학을 전공한 배우자에게 무시당하기 쉽다. 다양한 경험과 독서를 통해 통찰력을 키운 배우자의 눈에는 일이 끝나면 컴퓨터 게임이나 장난감에 열광하는 이 공학도가 네안데르탈인처럼 보인다. 어쩌다 영화관에 가도 마법사나 초능력자가 등장하는 아동 취향의 히어로물을 보자며 보챈다. 공학도는 돈은 잘 벌지만 그뿐이어서 대화가 잘 통하지 않고 앞으로도 그럴 것만 같다. 그래서 결혼이 고민된다. 결혼하는 순간 인생이 끝나버릴 것 같은 기분마저 든다. 혹시라도 결혼 후에 배우자가 자신이 돈을 벌어오는 덕택에 식구가 먹고 산다는 점을 강조하면 여성은 여성 해방론자가, 남성은 역차별론자가 될 가능성이 있다.


이것이 우리가 교양을 바라보는 일반적인 태도다. "교양을 쌓으려면 세계사, 문화사, 철학사와 관련된 입문서를 보세요."라는 조언에서 교양의 의미를 추론할 수 있다. 실제로 고귀한 신분의 양반이나 귀족은 교양을 자신을 방어하는 최후의 수단으로 쓰곤 했다. 천민에서 중인 계급에 이르는 야만적 소시민이 자본을 탐욕스럽게 획득하여 상위 계층인 자신보다 더 부유하게 되었을 때, 이 고귀한 존재들은 인간을 동물과는 다른 '진짜' 인간으로 만들어 주는 교양에서는 자신들이 훨씬 앞선다는 믿음으로 자존심을 지키려 했다.


그런데 이상한 생각이 든다. 교양이 그저 지식에 관한 것이라면, 왜 지식인이라 할 수 있는 사회학 교수가 학교 잔디밭에 가래침을 뱉는 모습을 볼 때마다 '참 교양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걸까? 아침 드라마에 등장하는 해외 명문대 출신 시어머니가 검정고시 출신 며느리의 얼굴에 물을 뿌리며 "이 교양 없는 것!"이라고 소리를 지를 때도 그런 생각이 든다. 아무래도 시어머니 쪽이 교양이 없어 보인다. 검사, 변호사, 교수, 아나운서 출신의 정치인들은 자신들의 모습이 TV로 중계되는 걸 뻔히 알면서도 국회에서 막말을 주고받거나 서로에게 삿대질해대는데, 그런 걸 보고 있으면 교양을 소중하게 여기던 시절은 아무래도 끝장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된다.


우리의 이런 반응에서 교양이라는 것이 단순히 인문학적 지식을 의미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만일 인문학적 지식의 양으로 교양 수준을 판단한다면 훗날 탄생할 인공지능 로봇보다 더 교양 있는 인간은 존재할 수 없게 된다. 우리가 과학적 지식이 아니라 인문학적 지식으로 교양을 대하는 것은 인문학적 지식이 인간을 '인간적으로' 만들어 준다고 믿기 때문이다. 우리가 근대사를 공부한 지식인에게서 기대하는 것은 1960년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단순히 낭독하는 것이 아니다. 만일 그뿐이라면 그는 전자사전과 다르지 않다. 우리는 그런 단편적 지식보다는 그가 과거에 있었던 일에서 오늘을 반추하고, 그를 통해 오늘날 우리가 어떤 태도를 견지해야 하는지 알려 줄 수 있기를 바란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이야기를 들어 보자. "교양은 어떤 하나의 생각을 받아들이지 않으면서도 그 생각을 즐길 수 있는 사람에게서 볼 수 있다." 그 역시 어떤 태도를 두고 교양을 말했다. 하지만 우리는 입으로 칸트의 도덕 이론을 이야기하면서도 눈앞의 아르바이트생에겐 사소한 문제로 호통을 치고, 고흐의 회화가 아름답다고 칭송하면서도 가난한 사람을 멸시하며, 문학의 순수와 지평을 이야기하면서도 소속 대학원생에게는 '순종'을 요구하는 기이한 현실을 마주하고 만다. 어느 순간 교양은 태도의 문제가 아니라 그저 지식의 문제가 되고 말았다.


그래서 오늘날 교양이 부족하다고 인식되는 인물들, 즉 공학도들은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 이들은 교양 없는 자들에게 교양 없다는 지적을 받는 이중 고통을 겪곤 한다. 공학도들은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을 받으면서도 억울한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해 우물쭈물한다. 그러다 먼저 화를 내기라도 하면 다시 한번 교양 없다는 소리를 듣게 되니 이것이 그들이 겪는 악순환이다.


만일 당신이 공대 출신이고 결혼을 하고자 한다면, 그리고 결혼 생활에서 마주할 수밖에 없는 인생의 불가해한 갈등과 고통을 조금이라도 줄여보고자 한다면, 같은 공학도 출신을 만나보기를 권한다. 연애는 성향이 다른 사람끼리 해도 좋지만, 결혼은 성향이 비슷한 사람끼리 하는 게 좋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공통점보다는 차이를 잘 인식하는데, 이런 성향은 결혼 생활에 커다란 장애를 일으켜 왔다. 만일 당신이 이성애자인 남성이라면ㅡ여성 공학도가 많지 않다는 점에서ㅡ이 조언이 매우 불합리하게 들리겠지만 세상에는 어쩔 수 없는 현실도 있다. 그런 측면에서 이성애자인 공학도 여성은 확률적으로 형편이 나을 수 있다. 이런 만남의 장점은 배우자에게 교양머리가 없다는 소리를 듣게 되더라도 당황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이젠 빙긋 웃으며 그건 당신도 마찬가지라는 점을 환기하도록 하자. 바로 그 웃음에서, 우리는 교양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조금이나마 깨닫게 된다.


결혼 성공 확률을 알아내기 위해 계산기 앞으로 달려가기 전에 다른 방법도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다. 그건 인문학 책을 직접 읽어봄으로써 그 세계를 이해하려고 시도해 보는 것이다. 물론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한 마음으로는 쓸데없이 형이상학적 이론들이 잘 이해되지 않을 수 있다.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혹은 "내가 당하기 싫은 일은 남에게도 하지 말라." 교양인에게 이것 외에 무슨 말이 더 필요하단 말인가? 하지만 괜히 그런 소리를 했다가 교양 없다는 소리를 들을까 봐 걱정스러울 수 있다. 그래도 괜찮다. 지금으로부터 약 2천 년 전에, 교양 수업이나 인문학 수업을 따로 들은 적 없는 갈릴리 출신의 한 가난한 나무 제작 기술자가 "어린아이와 같은 자만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라고 공표했기 때문이다. "존재가 의식을 결정한다."라고 했던 카를 마르크스의 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쉽게 풀이하자면, 도덕 윤리의 발달은 공학도에게 달려 있다는 뜻이다. 그러니 교양 없는 공대생이여, 자부심을 가져도 좋다.


마지막 당부. 공학도를 만났다고 안심하지는 마시라. 이 세상에는 인문학도 같은 공학도도 있게 마련이니까. 그리고 혹시 당신이 인문학도라면, 부디 공학도 같은 인문학도를 주의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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