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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lwrts Jan 21. 2021

골목에 두고 온

나와 화목하려고 매주 화, 목에 쓰는 시 - 14



골목이 는다


한때 굽이 닳도록 걷던

더는 오를 일 없는

그러나 문득

어떻게 지내니 운을 띄우는

골목이 는다


내 나이 둘레와

길이가 꼭 같은

가파른 골목에

두고 온 얼굴이 몇몇


거기 어드매

흘렸던 웃음도

더듬대던 인사도

몰래 훔친 콧물

몰아 쉬던 숨도


하나도 줍지 않고

전부 떨구고 떠나왔다


골목에서 쓰던 것은

골목에 버려두고

도로로 나가자며

나이 하나를 얻고


시간도 쉬어가는

어느 멈춘 오후

감은 눈 아래

지나온 골짜기가 훤하다


주름 잡히도록 꼭 감으면

또렷이 떠오르는

노오란 고무 물이 밴 운동화

두 번 접어도 끌리던 바짓단

네임펜으로 야무지게 꺾어 쓴

어린 내 이름


오늘 마중 나온 얼굴은

빨간 뿔테 붉은 뺨

중학교 국어 선생님인데


내 이름 석자 연거푸 어루만지며

출세할 이름이네

읊조리신 날도 있었네


아무 글자도 쓰지 않은

포스트잇으로

다시 찬찬히 읽으리라

표시 남기듯

내 얼굴을 잠깐 훑었다


갈피 해 둔 그 자리로

잊지 않고 돌아온 사람은

선생이 아니라

그 이름으로 여태 산

내가 될 줄이야

약속받은 물건이 있는 마냥

길 끝에 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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