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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lwrts Jan 19. 2021

엄마의 엄마의 말

나와 화목하려고 매주 화, 목에 쓰는 시 - 13



엄마는

엄마의 엄마가 쓰던 단어를

자주 끌어다 썼다


겪어 본 엄마가 엄마뿐이라

살아본 딸도 엄마뿐이라

그녀의 그녀가 쓰던 말이

자꾸만 쏟아졌다


시간이 많이도 흘러

대물림해 쓰기엔

아귀가 맞지 않는 말도

더러더러 튀어나왔는데

채 솎아낼 틈이 없었다


그런 날은

문장이 끝나기도 전에

웃음이 피죽 새었다


어느 날은 그랬다


신문 속 사진처럼

흐리멍덩하게 살지 말라고

나를 다그쳤다


사상 가장 또렷한 컬러 신문이

세상에 쏟아지던 때의 일이다


어느 날은 더 심했다


소풍 나온 것처럼 살지 말고

전쟁 난 것처럼 살으라고

정신 똑바로 차리라고


엄마의 엄마의

엄마의 말일 테지 저건

도대체 몇 대를 거스른 단어를

끌어 왔는지

엄마 조차 아득해

문장을 채 닫지 못했다


전쟁도 신문도

사라진 지 오랜 날의 일이다


나는 말을 물려받지 않겠노라

말 뚜껑을 덮고는

대를 끊듯 돌아섰는데

걷다 보면 결국

말 무덤가로 도착했다


엄마의 엄마의 엄마

그 엄마의 말이 

결국 옳았다


오늘의 뉴스는

어느 시대보다 흐리멍덩하고

세상은 여전히

소풍이 아니라 전쟁을 치르니


엄마가 끌어다 쓴 말들은

하나도 틀린 것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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