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화목하려고 매주 화, 목에 쓰는 시 - 13
엄마는
엄마의 엄마가 쓰던 단어를
자주 끌어다 썼다
겪어 본 엄마가 엄마뿐이라
살아본 딸도 엄마뿐이라
그녀의 그녀가 쓰던 말이
자꾸만 쏟아졌다
시간이 많이도 흘러
대물림해 쓰기엔
아귀가 맞지 않는 말도
더러더러 튀어나왔는데
채 솎아낼 틈이 없었다
그런 날은
문장이 끝나기도 전에
웃음이 피죽 새었다
어느 날은 그랬다
신문 속 사진처럼
흐리멍덩하게 살지 말라고
나를 다그쳤다
사상 가장 또렷한 컬러 신문이
세상에 쏟아지던 때의 일이다
어느 날은 더 심했다
소풍 나온 것처럼 살지 말고
전쟁 난 것처럼 살으라고
정신 똑바로 차리라고
엄마의 엄마의
엄마의 말일 테지 저건
도대체 몇 대를 거스른 단어를
끌어 왔는지
엄마 조차 아득해
문장을 채 닫지 못했다
전쟁도 신문도
사라진 지 오랜 날의 일이다
나는 말을 물려받지 않겠노라
말 뚜껑을 덮고는
대를 끊듯 돌아섰는데
걷다 보면 결국
말 무덤가로 도착했다
엄마의 엄마의 엄마
그 엄마의 말이
결국 옳았다
오늘의 뉴스는
어느 시대보다 흐리멍덩하고
세상은 여전히
소풍이 아니라 전쟁을 치르니
엄마가 끌어다 쓴 말들은
하나도 틀린 것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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