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라이프 인사이트 12... 삶과 신앙

종교와 신앙 그리고 믿음

by 소망

살라는 명의 실행... 삶



일본 막부 시대의 기독교 ㅡ천주교ㅡ 탄압의 실화를 바탕으로 쓴 엔도 슈사크의 '침묵' 속에는 배교에 얽힌 특별한 두 신부와 키치지로라는 인물이 나옵니다.


무조건적 순교를 고집했던 젊은 신부들이 일본의 박해를 견디지 못하고 죽어가던 차, 종단에서 믿고 보낸 한 신부가 배교를 합니다. 그 진실을 알아내는 임무를 받고 파견된 젊은 신부가 배교와 순교 사이에서 방황하게 되는 이야기입니다. 절대적 순교의 길을 택하던 신부들은 신자들까지 죽음을 면치 못하는 17세기 일본 기독교 탄압의 현장에서 심리적 갈등이 깊었습니다.


신앙을 가졌으나 위험 상황이 오면 즉시 예수님을 배신하는 키치지로. 그는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예수를 부인하고, 회개하고를 반복합니다.


소설의 결말은 예수님의 뜻은 순교도 아니고 배교도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든, 누구든 삶을 포기하고 순교하라고 하지 않으셨고, 성육의 예수님은 인간의 삶과 고통, 마음까지 너무나 잘 아셨기에 예수의 상(像)을 밟는 것을 용인하셨고 살라 하셨습니다.


모습을 본뜬 형상은 형상일 뿐이니, 상을 버리고 살라하셨습니다. 그뿐입니다......


예수의 상을 밟는 것이 배교의 행위일까요?

교단에서 보면 분명 배교겠습니다. 맨 정신으로 할 수 없으나 목숨이 걸린 상황에서는 어떠할까요?......


소설 속 인물, 배교와 회개를 반복하는 키치지로를 미워할 수 없었습니다.

그가 믿음을 저버렸나요?

예수를 부인한 일이 벌을 받아야 할 일이었나요?


가장 믿었던 제자 베드로도 예수께 임박한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세 번 '그를 모른다' 부인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아셨습니다.

인간이 그리 나약한 존재임을요.


키치지로는 배교 후 다시 회개를 거듭했습니다. 그의 믿음을 누구와 빗댈 것이며 뭐라 비난할 수 있을까요?


잘잘법의 김학철 교수는 신앙 속 의심은 어둠 속에서 길을 찾을 때 쓰는 지팡이와 같은 것이라 했습니다. 앞에 놓인 장애를 지나면서 더 평평한 넓은 길로, 빛이 있는 길로 나아가게 하는, 믿음을 더 굳게 해주는 것이라고요. 믿음을 저버렸다가 다시 붙잡는 과정도 신앙의 상태라고 했습니다.


때론 강퍅한 신념이 생명을 앗아갑니다. 사는 게 먼저입니다. 신념도 산 자의 것이니까요.


저의 모습도 키치지로를 닮았습니다.

그리고 신앙인이라 말함에 있어 예수의 제자 도마처럼 저도 의심이 많았고, 아마도 소설 속 상황이 온다면 키치지로처럼 목숨을 부지하기 위한 배신을 할 것입니다. 목숨을 부지하고 사는 것이 신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신앙인의 길에서는 순교일지라도 자살하진 않습니다. 종교의 틀에서 순교라는 이름으로 목숨을 잃는 것도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살아내라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종교와 신앙에 대한 시각


저는 우리 사회의 현실 속 종교와 교인들을 보며 묻게 됩니다.

저들은 종교를 믿는 것인가?

그들의 신을 믿는 것인가?



하나님이란 이름은 부처가 말한 즉비시명의 가르침에 속합니다.


금강경의 게송 중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가 있습니다. 이에서 말하는 상(相)이란 보이는 것, 인식하는 것, 상상하는 것, 형상이 있는 것 등을 모두 말하며 이 상들은 모두가 실체가 없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란 이름조차 이름일 뿐이라 보니, 저에게 종교도 하나의 상일뿐입니다.


우리의 창조주 하나님은 이름이 그러하나 성경 속 모세에게 드러내신 selfㅡl am that l amㅡ의 존재인 이유입니다. 하나님이란 이름이 실체는 아닙니다. 깨달아 부처가 된 싯다르타를 존경하지만, 하나님을 넘어설 수 없다고 늘 생각하니 기독교가 아니어도 저는 하나님이란 존재를 믿습니다.


신앙은 신과의 영적 영역에 속한다고 봅니다. 그러나, 종교는 인간이 세상을 운영하기 위해 만들어낸 룰 속 한 개체라고나 할까요. 제 눈에는 어떤 종교이든 그 속에는 교조적 요소가 있고 종교별 편의를 위한 잘못된 믿음을 주장하는 경우도 보입니다.


진정한 신앙의 길로 인도하는 책무를 가진 종교이나 현실 속에서 각기 다른 길로 향하는 세계를 봅니다.


종교는 신앙을 다지기 위한 배움의 장이라고 생각합니다. 주체이신 하나님을 믿는 것이 신앙이며 그 뜻에 따라 삶을 인도하고 믿음을 다지고 신앙생활을 돕는 것이 종교라고 봅니다. 종교는 믿는 대상이 아닙니다.

신의 뜻을 알고 따르는 신앙의 길을 가는 것이 인간의 소명입니다.

신비한 영적 세상으로부터 ㅡ하나님 세상ㅡ창조되었고 다시 그 세계로 돌아가는 것이 인간의 운명입니다.




신앙의 길... 믿음과 소통


하나님을 의심하고, 님께 도전하고, 회피하고 뭐든 다 해도 결국은 님께로 향하는 마음. 즉 성전에 속하지 않아도 일대일로 소통하는 길이 신앙의 길 아닐까요. 바로 믿음의 관계입니다.


김기석 목사님은 설교 중에 강조하시고 '고백의 언어들'에서 말씀하셨죠. Almost Christians과 altogether Christians을요.

믿는 척하는 종교인과 믿음을 가진 신앙인의 차이를 강조하십니다.


Almost의 종교인이 altogether의 신앙인으로 성화되어 가는 길을 걷고 있는 우리는 부족하나 신앙의 길에 있음입니다.

Almost도 좋고 altogether도 좋습니다.

온전한 신앙인이라면 좋겠지만요.

아님, 부족해도 믿고 순종하는 길이 신앙의 길이라 생각합니다만...... 우리는 미숙한 존재이기에 배워갑니다. 모방하면서라도 배워가야 합니다.


온전한 믿음조차 하나님께서 주십니다. 그러나 늘 하나님을 붙들고 그 안에서 살아야 함은 기억해야 합니다. 부모와 자녀 관계처럼요.

저는 종교인이 아닙니다. 신앙인이라 말하기도 부족하지만ㅡ키치지로처럼 흔들리는 인간의 마음으로 어찌 가능할지요!ㅡ 종교를 믿는 것이 아닌 창조와 우주의 질서를 운행하시는 신을 일대일로 믿기에 저는 신앙인입니다.


제 삶이 말합니다. 신은 계시다고요. 그리고 믿게 하십니다. 삶의 희망과 빛을 보니, 믿어졌습니다. 녹록지 않았던 삶의 슬픔을 위로받고 아픔이 치유되었습니다.


신은 알고 믿는 것이 아닌, 믿으면 알게 된다는 말도 맞고요. '기도하라. 그리고 다 이루어졌노라 믿으라.'도 맞습니다.


그러나, 신앙이라 생각지도 않고 믿음으로 가는 과정에서 의심 많던 저는 엄청 의심하고 헤맸습니다. 어느샌가 작은 틈이 생기며 빛을 보게 되니 긴가민가... 진실인가? 그러다 그 틈 속으로 빛이 들어왔습니다. 그냥 믿어지게 되는 것. 정확지 않지만, 서서히 마음에 차오르는 빛을 느낄 때, 바로 그때부터였죠.


그것이 신앙의 시초인 듯했습니다. 믿음이란 내려놓기이며 의지이며 염려와 불안 등에서 떠나는 것입니다.


세상의 허망한 상ㅡ유형과 무형, 생각과 마음 등ㅡ 을 붙들지도 말 것이며 분별하지도 말고 따지지도 말고 하나님께 맡기는 겁니다. 그 모든 대화와 소통의 통로가 기도입니다. 은밀하게 속삭여주신다 하셨습니다. 그 소통이 신앙인에게 중요한 기도입니다.


외진 다락방 깊숙한 곳에서 은밀히 기도하라십니다. 그는 현실의 장소가 아닌, 깊은 내 마음속에서 진실된 참모습으로 소통하자는 말씀이십니다. 그래서 신앙인에게 또 중요한 것이 묵상입니다. 외부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발견할 수는 있지만, 존재를 찾을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모든 삶의 운행자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그 운행에 몸을 맡기고 기도와 묵상으로 소통하며 뜻에 따르면 됩니다.


신은 내 안에 늘 모셔두는 딱 한 분이십니다. 성전에서도 집에서도, 세상 어느 곳에서나 함께 계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님을 추앙하여 믿고 말없이 순종으로 뒤좇는 것이 신앙입니다.





하나님 뜻은...


모든 우주 만물을 운행하시는 분은 한 분인데요. 사람들은 종교를 만들어요. 만드는 것은 좋습니다만, 문화와 관념, 이념. 사상, 신념 등에 따라 모두가 갈라져 있습니다. 제가 믿는 유일신, 하나님의 뜻은 같은데 말입니다.


유일신을 불교니, 이슬람교니, 힌두교니, 기독교니 하며 종교의 이름으로 분별해야 하나요?


종교의 경전들을 보면 이름은 달라도 맥락은 한 길로 통하고 진리와 가치도 통합니다.


그런데, 세상은 종교 다툼을 많이 합니다. 왜 하는지 전 모르겠습니다. 종교적 역사도 모르고 지식도 없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신의 뜻이 그것이 아닌 것은 압니다. 평화를 바라시고, 서로 사랑하며 살라하시는걸요. 적어도 미워하고 할퀴고 상해를 입히지는 말아야죠.


아무리 생각하고 또 생각해도 다양한 신들의 뜻도 듣고 알다 보면, 궁극의 커다란 뜻은 유일하신 한 분의 뜻으로 향하는 것을요.


왜 신의 전체를 보지 않고, 갈래갈래, 조각들을 붙들고 신이라 모시며 서로 분쟁하는지... 인간이란 존재를 그저 그리 보아야 하는 것일까요?


틀리던 맞던, 알아야 어느 방향으로든 한 발짝 내딛을 수 있습니다. 그도 믿어야 나아갈 수 있고요. 믿음이 먼저라지만 알아야 믿을 수도 있습니다.


종교와 신앙에 대해 평소 생각하는 바를 적어보았습니다.


라이프 인사이트는 글 전개도 정리도 내용도 다 어렵습니다. 순전히 제 삶에서 알고 느낀 것을 두서없이 써내려간 전개에 이해를 구합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