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욕(貪慾)의 늪에서 헤어나기
공의가 실현되어 공평한 세상이 되는 것이 힘든 이유는 공평의 문제보다 인간 내면의 탐심 때문이다.
탐욕은 관계도 불편하게 하고 마음도 내내 불편하게 한다.
'에이~ 이 가벼운 인간아! 그깟 콩밥 하나에 밤새 네가 힘들었자녀.'
ㅡㅡㅡㅡㅡㅡ
며칠 전 저녁, 부부가 앉아 식사하던 밥상머리에서의 고백이다.
똑같이 담은 밥 두 공기를 보니 남편의 것은 적겠다 싶고 내 것은 많다 싶었다. 그래서 덜어주려고 했다. 덜어주려는 생각을 하니 보이지 않던 검은색의 콩과 흰 밥이 분리되어 보였다. 내가 좋아하는 검은 콩밥이다.
가리지 말고 푹 떠서 덜어주어야 했지만, 남편 밥그릇에도 콩이 많아 보였다.ㅡ보였다는 것은 모두 내 마음이 보고 싶은 대로 본 것이리라ㅡ 공깃밥을 줄 때 콩이 많아 보이는 쪽을 준 것은 맞다.
나는 의식적으로 콩이 없는 쪽에 숟가락을 넣어 콩을 밀어내며 흰밥을 덜어 주었다. 순간에 덜어 준 밥 두 숟가락이 miss였다.
남편은 모르는지 아는지, 내 속을 아는 나는 얼굴 낯이 근질거리고, 쪼잔하다는 생각이 들면서 슬금슬금 눈치를 살피게 되었다. '이 인간아~' 하며 아무렇지 않은 척 식사를 하긴 했다.
점심에 이미 콩두유를 만들어 마셨고, 내 밥에도 콩은 충분했는데, 남편에게 갈 몇 알의 콩에 그리 인색하게 굴었다.
난 그리 욕심이 많은 편이 아니다. 남의 것은 탐하지 않고 특히 큰 것에 대한 물욕에 지극히 경계를 하는 편이다. 그런데 그런 내가, 가만 보니 자잘한 것에 쪼잔한 욕심을 부린다.
갈아 마신 것까지 이미 얼마나 많은 콩을 먹었는가! 그런데 가질수록 더 가지고 싶고 먹을수록 더 먹고 싶은 게 맞는 건가?
식사 후 설거지 할 때까지도 남편께 한 알도 더 허락하지 않았던 검은콩에 괜스레 몸이 오그라들었다.
몇 알의 콩으로 내 마음이 이리 불편할 줄 몰랐다. 분명 남편도 내가 덜어준 밥에 콩이 하나 없음을 보았을 텐데... 신경 하나 안 썼겠지만, 혹시나 알아도 되레 모른 척해주는 남편이 고맙기까지 했다.
의식적으로 했던 일이라 미안한 맘과 부끄러운 마음이 깊었다. 저녁 시간 어물쩍 넘어갔지만, 다음날이 밝을 때까지 불편했고 깊이 반성했다,
한편,
'그깟 콩? 더 많이 넣으면 되지. 겨울에 1년 치 사둔 콩도 음청 많은데 말이다.' 했지만, 나의 불편함은 콩 몇 알로 남편을 홀대한 듯하고, 특히 드러난 내 탐심과 탐식에 더 불편했던 것이다.
'소망, 더 많이 넣으면 된다고?'
'아니.'
'넌 알잖아. 기준이 높아지고 커질수록 사람의 욕심도 점점 더 커진다는 것 말이야.'
많이 넣어서 밥을 했어도 이 내 마음은 또 콩이 덜 있는 쪽을 찾아 덜어주었을 것이다. 작으나 크나 문제는 욕심인 게다.
"내일은 콩두유 갈아서 콩국수 해줘야지." 했지만서도...
나는 큰일보다, 작은 일에 쪼잔하다.
큰돈을 쓸 때보다 적은 돈 쓸 때 더 쪼잔하다. 세간에서 사람들은 손이 작다고 한다. 그렇다고 인색함은 아니다. 계획적이고 알뜰하다는 변명이 더 통할 듯하다. 크게 쓸 때는 주변 누구보다 크게 쓰기도 한다. 여튼, 변명 일색이다. 그런데 그날의 문제는 아주 작은 일에서도 드러나는 이 내 욕심이 보인다는 것이다.
이 느닷없이 올라온 욕심.
나는 가끔 상상해 본다.
내가 굶어 죽어갈 때 하나밖에 없는 떡을 타인에게 건네줄 수 있을까를 말이다. 분명 이성은 그래야지 한다. ㅡ 허나 난 당장 남편에게 주는 몇 수저에 들어있는 콩을 욕심내고 있었다. ㅡ과연 그런 상황이 오면 한 개의 떡을 건넬 수 있을까?... 의지는 하고 싶지만, 마음이 따르지 않을까 심히 우려된다.
이 마음이 문제이다.
그렇기에 이성은 첨예해도 마음을 이길 수 있을까 싶다. 마음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이다.
'제발이지~~ 소망, 욕심 좀 버려.
욕심은 낼수록 점점 더 커지는 거야.
다시 또 외워 봐. '유구개고 무욕즉강'
하나님의 뜻을 헤아려 살려는 사람이라 더 부끄럽다. 그러나 뭐든 다 아시는 하나님께서 이 마음, 탐심을 모를 리 없으실 테지. 얼굴 붉히며 '죄송해요' 한다. 그러면 그러시지. '죄송하다면 뭐 해? 또 그럴 테잖아~~.' '믿어 보세요.'라고도 못한다. 그러니 알게 모르게 늘 잘못하고 용서를 구하는 것이다.
욕심이 올라오는 건 어쩔 수 없으나 다스릴 수 있는 마음, 양심이 있어 다행이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물건을 샀는데 계산의 오차로 생긴 이익에 순간적으로 마음에서 '앗싸~' 할 때가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 적은 이익에 양심을 팔아버린 꼴이 될 수 있었다.
그런 경험이 있을 수 있을 때 행동유형을 생각해 보았다.
첫째, '이런 행운이!'라며 상황을 묻어버리는 사람.
둘째, 부정직을 꾸짖고 양심을 꺼내 행동하는 사람,
셋째, 아무런 거침ㅡ머리나 가슴속 양심 운운하는 절차ㅡ 없이 도덕적으로 행동하는 사람.
나는 다행히 양심을 찾았다.
분당에서 들른 공방카페에서 가방을 두 개 샀다. ㅡ 일행과 구경하며 몇 가지를 사는 바람에 가격을 점검하지 못했다. 물건 값을 지불하고도 한참 동안 카페에 머물렀는데, 주인도 몰랐다는...ㅡ집에 와서 영수증을 정리하다 보니 가방 한 개 값이 지불되지 않았다. 'ㅎㅎ 이런 행운이...' 하기에는 서슬 퍼런 양심이 날 노려보는 듯했다. ㅡ참고로 난 도덕도 가르치는 선생이었음에도 말이다. ㅡ 전화를 걸어 확인 후, 계좌이체로 가방 값을 송금했다.
나 자신 아직도 그런 마음이 있나... 픽 웃음이 나왔다.
사람은 가끔 아주 미미한 일로 자신의 행운을 점칠 때가 있다. 특히 나 같은 위인이 아닌가 한다.
아주 작은 경계에 무너지는 이 인간은 뭐란 말인가.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자유의지와 양심을 주셨다.
하나님 뜻을 따라 살고자 하는 인간에게 악의 마음을 물리칠 수 있는 선한 방패로 양심을 주셨을 터이다. 선한 양심을 주신 하나님께 깊이 감사한다.
그리고 난 거침없이, 마음의 시험 관문 없이 도덕적으로 행하는 세 번째 인간이 되고 싶다.
깨우침은 천둥처럼 오지만 실천은 달팽이가 기어가듯 느리고 변화는 티끌만큼 이루어진다.
by 소망
내 마음엔 탐물, 탐식... 외에 탐법도 가득하다. 貪하는 마음, 慾이 문제이다. 느려도 꾸준히 실천해가야 한다.
일곱 가지 죄 중 하나가 탐욕이다. 경계하고 살아야 할 죄목이다.
참, 희한하죠?
식탐이 많아 허겁지겁 음식을 취하고 누구보다 더 먹으려고 하는 나를 볼 때마다 느끼는 건데요. 입이 가장 큰 탐욕의 주체인 듯해요. 마음과 다르게 게걸스럽게 먹고 있을 때 꼭 ㅇㄹ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님들도 그러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