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하는 사람은 자살을 꿈꾸지 않는다
일상에 감사함을 느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요!
감사한다는 것은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졌다는 뜻입니다.
저는 하나님을 만나고 삶과 나, 일체의 존재를 생각하면서야 비로소 진정한 감사를 알게 되었습니다. 물질이 오가는 give and take 말고요. 존재로부터 드러나는 삶의 깊은 희열 같은 거요.
무지함 속에서는 감사함도 왜곡됩니다. 진정한 감사를 아는 것이 감사를 아는 것입니다.
직접 상대가 있는 give and take에서의 감사
저의 경우입니다.
무명 속에 살았던 젊은 날,ㅡ하나님을 모르고 살았던 55년ㅡ 감사는 그저 타인에게서 무엇을 받았을 때만의 인사였습니다. 어린 시절, 불우한 환경에서 외롭게 컸던 저는 누군가 내게 잘해주기만 하면, 무언가를 주기만 하면 고마웠습니다. 그런데 그 고마움은 보은 할 짐, 하늘 같은 은혜였습니다. 친절과 베풂, 은혜를 구별하지 못해 무조건 보은의 마음을 가졌습니다. 그러다 보니 마음에는 그 짐이 쌓여 하늘로 치달아요. 족쇄가 되어 갚지 못하면 그를 기피하려는 마음까지 생겼습니다. 죄인이 되는 거였습니다. 이는 제 마음만의 문제였는데요. 제게 친절을 베푼 상대는 다 잊었는데 저만 평생 갚아야 할 짐으로 착각하며 살았습니다. 지혜가 없던 이유입니다. 그러니 나이가 들면서 take보다 give가 편했고 가능한 take를 거부했습니다. 마음이 참 불편했거든요. 받는 것은 무조건 상대의 은혜였고 은혜는 삶의 짐이 되었으니까요.
이는 베푸는 상대에게 진짜 죄를 짓는 꼴이죠. 상대의 선한 그 마음을 제가 비틀어 왜곡시킨 것입니다. 이제는 압니다. 그것은 진정한 감사가 아니라는 것을요.
지혜의 하나님 안에서의 감사
슬픔은 눈물을, 기쁨도 눈물을
수용, 사랑, 존중, 연민, 용서를 보세요.
어느 것 하나 감정에 의해 결과의 모순을 일으키지 않습니다. 모순된 결과라 할까요?
감사만이 다릅니다.
감사는 눈물을 일으킵니다.
보통 눈물은 슬플 때, 아플 때 흘립니다. 그러나, 유일하게 기쁠 때도 눈물을 흘리는 건 감사를 아는 인간입니다.
바로 감사가 그렇습니다.
저는 감사로 흘린 눈물이 많습니다.
기쁨을 통해 눈물을 터뜨리는 건 진정 인간이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항상 기뻐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감사함을 가지라. 기뻐함 뒤에 감사함이 따르니, 기뻐하며 감사함 속에 살라 하시는 충만한 사랑의 말씀인걸요.
눈물을 흘린다는 것은 마음 깊은 곳을 자극한다는 뜻입니다.
기쁨과 경탄은 하나님께서 처음 아담을 창조하셨을 때부터의 의도셨습니다. 함께 경탄하며 살자고 동행자에게 내리신 신의 축복이고 바람이었습니다.
삶에서 사랑이 하늘과 바다라면, 기쁨과 감사는 삶이라는 골짜기와 하천과 강을 흘러 바다로 모이는 물입니다.
눈 뜨고 보는 만유 일체가 말씀이고 그 말씀이 사랑이라 합니다. 사람은 세상 만유 일체에서 감사를 느끼는 존재여야 합니다.
삶과 존재에 대한 사유가 있고 나서야 감사의 의미를 알게 되었습니다. 저 선생이었지만요, 가르치며 모르던 것들이 무척 많았습니다. 진정한 무지렁이였습니다. 선생을 떠나 대통령이라도 먼저 인간이 되라는 게 맞는 말입니다.
당연한 것들에 감사
당연함에는 감사가 없다고 하죠. 지극히 옳은 말입니다.
마음 따라 모든 것이 흐르고 변하지만 그 마음에 때론 하늘이 깊은 위안을 주고 바다와 숲 등 자연이 있어 우리는 삭막함에 벗어나 마음의 평화를 얻습니다. 세상을 꽉 채운 공기와는 30초만 격리되어도 이 몸은 혼절입니다. 이 모든 존재가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 믿으니 풀 한 포기, 작은 벌레 하나, 바람 등 존재하는 유 무형의 것들이 함께 있어 소중하고 감사하게 생각되었습니다.
인간관계에서도 당연해서 감사를 잊는 것이 있지요. 부모님 사랑입니다. 친구가 나를 사랑해 주면 무척 고마워서 함께 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부모님과 자식이라는 당위적 관계에서는 잊기 쉽습니다. 당연하다고 생각하면 감사는 잊고 소홀해집니다. 그래서 가족 간에 불화가 생기고 미움도 더 많을 수 있습니다. 인간관계에서 사람은 관계로 보지 말고 무조건 함께 존재하는 사람으로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인간과 자연 등 모든 관계에서 '당연히'라는 생각을 버린다면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되겠죠? 그러면 누구와도 좋은 관계가 될 것입니다.
지혜라는 것이 가만 보면 생각의 차이인 것 같습니다.
나의 진정한 감사는 이때부터 이렇게
저의 생각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니 생활이 바뀌었습니다. 바뀐 생활은 당연히 하나님의 은혜임을 기억합니다.
감사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나의 22년 간단히 기록한 일기를 소환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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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8월 9일
언제부터인지 불면이 시작되고 잠에서 수시로 깨는 일이 빈번했었다.
피곤함을 느끼며 잠이 들고, 밤중에 깨면 다시 잠들고 하는 평범한 일들이 무척이나 감사한 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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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8월 10일
2018년 5월부터 앓게 된 족부질환 3종.
지간신경종으로 인한 찌릿함. 족저근막염으로 인한 통증. 아킬레스 건염으로 뒤꿈치까지, 양발이 모두 아파 10분도 못 걸었다. 삶의 질은 팍팍 떨어지고, 발이 아파서인지 갱년기의 반란인지 무릎의 퇴행까지 오면서 몸에 좋다는 요가운동마저도 할 수 없게 되자 우울감이 심했다.
좀처럼 낫지 않던 발바닥 통증. 아직도 지간의 찌릿함은 남아있고 뒤꿈치가 뻐근하지만 매일 5 천보 이상, 만보까지도 힘차게 걸을 수 있을 정도로 회복되었고 두 발로 걸을 수 있음에 감사하며, 걷는 즐거움이 얼마나 큰가를 실감하며 살고 있다.
조용히 내게 순종하며 이 몸을 지탱해 주는 사지를 본받아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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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8월 12일
매일 아침 눈을 뜬다.
어째 이상타. 눈꺼풀이 들리질 않아. 의식을 가다듬는다. 가슴이 또 짓눌린다. 팔을 움직일 수 없다.
자율신경계통의 이상인가. 고모님의 성화에 못 이겨 사가정한의원을 찾았다.
한의원 원장님 曰...'내과적 문제는 일희일비할 수 없어요.'
그렇다. 이 몸은 늘 종잡을 수 없이 왔다 갔다 한다. 이렇게 힘든 날 감사한 마음을 잃어버린다. 그러면 안 된다. 감사하지 않으면 우울에게 먹혀버리기 때문이다. 재빨리 머리를 굴린다. 무조건 찾아야 한다. 그러면 수많은 감사거리가 떠오른다. 내가 늘 감사하려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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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8월 13일
'~ 감사합니다´를 입으로 수없이 하며 살았다. 물론 감사했으니까. 그때는. 그 일은.
하지만 진정 내면에서 올라오는 벅찬 마음으로 느끼는 감사는 지난 해부터였다. 잔잔하게 계속 흐르는 감사는 다른 분이 주신다는 걸 알았다. 힘들 때마다 아니 늘 곁에 그분이 계셨음을 알고, 나의 인간됨을 인정하고 나니 세상이 바뀌어 보였고 이 세상에 내가 있음이 기적임을 알았다. 햇빛, 공기, 물 등, 다이아몬드가 아닌 꼭 필요한 것을 무한으로 주셨고 대가 없이 모든 걸 주신다. 요즘 난 많은 것에 진정으로 감사하며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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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8월 15일
불우했던 청소년기..... 중략
그때 만난 나의 단짝 친구는 씩씩하고 무척 밝은 아이였다. 커플이 될 정도로 둘은 잘 맞았다. 나의 청소년기, 학교가 즐거웠던 이유이며 버티게 한 힘이었다.
요즘에야 친구를 만나 고백했다.
'네가 내 청소년기를 환히 밝혀줬어. 난 네게 집착이었지만 네가 있어 지금의 내가 있는 거야. 내 곁에 있어줘서 정말 고맙다.'
나의 일기는 풀지 못한 한풀이며 새로운 삶을 위한 정화의 노력이다. 이 모든 삶은 그분의 계획이시기에 겸허히 받아들이고 감사하며 살아야 한다.
감사하는 사람은 자살을 꿈꾸지 않는다
아침에 눈을 뜰 때 하늘이 맑지 않아도 빛을 보시나요?
23년 팔목이 골절되었어도 다리 골절 안되어 정말 다행이고 감사했습니다.
오른손 전혀 못써 암거 못해도 왼손이 빠리빠리 움직여주어 밥 먹여주니 너무 감사했습니다.
'사지가 정상인 것이 이렇게 감사한 일이었구나.' 생각하며 무탈한 3지에 감사했습니다. 지금 족부질환 재발로 고생은 해도 이제 고생이라 생각 안 합니다. 이 작은 몸이 60년 긍매며 날 살려왔잖아요. 세심히 돌보지 못한 저를 질책합니다.
하늘, 구름, 스쳐가는 바람조차 그냥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아니, 모든 게 감사했습니다.
눈을 뜨면 보이는 것이 온통 빛일 수 있음을 감사로 알았습니다.
어린 날의 추위는 외로움으로 더 추웠습니다. 눈비 맞아 옷 젖고 추운 것도 너무나 싫어합니다. 흐린 날은 더 우울해서 싫었고요. 이제는 눈비 오는 흐린 하늘 뒤에 맑은 하늘과 태양이 있음을 아니 아무렇지 않습니다. 바람에 부대끼는 나뭇잎을 보아도 행복감, 감사를 느낍니다. 그 모든 것을 기뻐하며 감사하라는 하나님이 계시기에 그렇습니다. 사는 게 왜 이리 고달프냐고 죽고 싶어 방법을 생각하고 어설픈 죽음을 시도하려던 마음은 이제 없습니다. 하나님을 배신하는 행위라 생각이 듭니다. 힘들 때는 하늘을 보며 하나님이 안아주시기를 고대합니다.
감사는 이렇게 제 삶의 자세를 180도 돌려놓았습니다. 모든 감사는 영광 받으실 님께 드림입니다. 감사합니다!^^
참, 저는 눈물 흘리는 사람 좋아합니다. 기뻐서 흘리는 눈물도 넘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