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善은 물
나무를 좋아하던 사람도 나이가 들면 꽃을 더 좋아한다고들 하던데...
꽃은 꽃이고 나무는 나무인 건가!
나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나무가 더 좋다.
예쁘지만 가녀린 꽃보다는 꿋꿋하고 뚝심 있어 보이는 나무가 든든해서 좋은 것이다.
색에서 느껴지는 안정감과 자유롭게 뻗어가는 줄기의 기상이 좋기도 하다.
화려하고 향기로운 꽃은 눈과 코의 감각 기관을 희롱하지만, 나무는 깊은숨을 쉬게 하고 내면의 고요와 평화를 준다. 격이 다르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서일까?
어느 순간, 나무보다 더 좋은 게 생겼다. 바로 물이다.
물에는 더 큰 道가 있음을 알았다.
'지혜로운 자는 산으로 가고 너그러운 자는 바다로 가라.'는 말을 들어봤다. 젊은 날에는 바다보다 산을 좋아했다. 그러던 나의 선호가 바다로 향했다.
숲도 물론 좋지만, 숲과 바다의 또 다른 격을 느끼게 되었다.
생각이 바뀌고 만난 바다는 그 위상도 위상이지만 파도가 소란하거나 잔잔하거나 관계없이 내면에서 들리는 숱한 소리들을 싹 씻어가고 나로 하여금 일체감을 느끼게 한다.
바람 속에서 함께 일렁이는 바다는 상대가 누구든 가리지 않으니 경외감마저 들며 한없이 작아져 무릎 꿇지만 그 앞에서 마음은 한없이 평온해진다. 혹시 나는 바다에서 온 물방울인가?
많은 사람들이 왜 바다를 좋아하는지 나는 뒤늦게 알았다. 바다를 굳이 찾아 나서는 이유를 말이다.
노자 철학을 접하며 '상선약수(上善若水)'에 대해 깊이 생각했다.
'최고의 선은 물과 같음이라.'
모든 도가 물과 같음이라. 물은 한 방울에서 시작해 바다를 이룬다. 늘 낮은 곳으로 흐른다. 깨끗한 것과 더러운 것을 구별치 않는다. 분명 물은 낮음과 높음, 작음과 큼 등 이분적인 세상의 이치를 품고 있어 가장 넉넉한 품을 가지면서 또한 가장 겸손하다. 그러면서 때론 도도하고 무지막지하게 위험하여 경외하지 않을 수도 없다.
'지혜의 숲'을 인정한다. 그러나 산과 숲은 세상만사 작은 일들이 복잡하게 얽히고 빼곡하여 지혜를 배우기에 좋은 장소이다. 그러나 바다는 가장 단순하나 가장 본질의 진리를 담고 있다.
내가 좋아하던 나무를 보며 물을 생각했다.
물이 나무를 보고 말할 것이다.
'에게~~ 넌 바람만 세게 불어도 꺾이잖아.
난 바람과 무척 친하지. 바람과 늘 함께 놀거든. 바람은 화가 나도 결코 날 해치는 일은 없어.'
세상에는 많은 것들이 천적을 가지며 소멸되고 사라진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땅 위에 있는 물은 영원하지 않을까.
가장 작지만 가장 클 수 있는 물이야말로 최고의 선(善)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성현들은 늘 가르쳤다.
물처럼 살라고.
보이지 않는 뿌리 같은 존재
매일 시청하는 뉴스 끝에 스포츠뉴스를 본다.
내게는 한참 젊고 어린 선수들이 어쩜 저리 장할까! 싶고 k 한류를 이끄는 주역들 중 거의가 젊은이들이다.
내 젊었을 때는 젊음의 위치와 능력이 어떤 건지 얼마인지 몰랐다. 이제 나이 들어 경제 주역의 위치에서 물러나니 TV 같은 매체에서나 세상 돌아가는 상황을 보며 세대교체라는 말을 나날이 실감하고 있다.
젊은 세대는 아름다운 모습들로 나라의 위상을 높인다. 그런데 비교하기 싫지만 나이 든 어른들은 정치의 장에서 참으로 부끄럽고 일그러진 모습들만 보여준다.
사회마다 각 세대가 담당해야 할 역할이 있으니 젊은이들이 경제 역군이듯 어른들은 적어도 정치 역군이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젊은이들이 당당하게 담당해 내고 있는 것만큼 어른들도 잘하고 있는가 생각하다가 나를 돌아보았다.
내가 할 수 있는 일...
'경제 역군인 젊은이들을 응원하고 격려해야지. 어른으로서, 또 인생을 살아본 선배로서 귀감이 되어야 하지. 살아온 날의 업적이 딱히 없으니 지금 삶에서라도 모범을 보여야 하고 인격의 귀감이 되어야 할 것이지.'
내 젊은 날 들었던 '나이 들면 입은 닫고 지갑은 열라'는 말을 기억한다. 말보다는 행동으로 어른 역할을 하라는 말이겠다. 말로 품격을 떨구지 말며 너그럽고, 넉넉한 마음을 쓰라는 말. 그것들이 안되면 쪼그라져서 조용히 있는 것이 좋겠다. 뒤로 물러나서 조용하게 지켜보는 행동 말이다.
그리고 경제 역군들보다 시간이 많고 살아온 날이 많으니 자기 계발은 오히려 어른들이 하고 지혜를 쌓아 인생 후배들에게 나침반이나 방향키 역할을 해야 할 것 같다.
나는 이런 어른으로서의 역할을 생각하다가 묵묵히 보이지 않는 뿌리를 내리는 큰 어른 나무를 생각했다. 잔 줄기와 잎들이 푸르 창창하게 뻗어가며 필 수 있는 건 보이지 않지만 땅속으로 뻗어 굳건히 나무를 지지하는 뿌리가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나는 고목의 뿌리가 되고 싶다.
보이지 않는 존재감의 어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나무의 품
그리고 오늘 두 개의 스틱을 들고ㅡ아직 재활 중인 다리 골절 환자ㅡ 걷기 산책을 나갔다.
단지 내 흙이 있는 곳을 걸으면서 내가 볼 수 있는 건 제 집을 잃은 것만 같은 쓸쓸한 몇 그루의 나무뿐이었다.
머리 위 하늘에서 새들이 날아다니다가 내 곁의 나무 가지 위에 앉는 것을 보았다. 새들은 자유롭긴 하지만 참 시끄럽고 체신머리 없어 보였다. ㅎㅎ
그런 새가 계속 울어대며 나뭇가지의 고요를 깨는데도 나무는 미동도 않고 웃는 것만 같았다. 곁을 내어주는 품격이랄까...
새는 나무에 앉아 한참을 편안히 쉬고 있다.
나도 그 나무에 기대 보았다. 나무는 아무런 소리나 표정 없이 묵묵히 나도 받아 주었다.
'이 나무는 내가 계속 기대어 있어도 언제까지고 변함없을 것이다. 어느 누가 내 체중을 받으며 계속 지지해 줄 수 있단 말인가!'
나는 뻔한 이치라 픽 웃었지만, 나무란 이런 거구나 생각하며 또 한 번 가슴 뭉클함을 느꼈다. 감사한 마음으로 나무를 쓰다듬어주었다.
물이 최고랬지만, 나무도 이런 넉넉한 품을 가지고 있다. 자연은 이런 것이다. 인간은 늘 고요하고 넉넉한 자연에게서 배울 수밖에 없다.
베어진 나무그루턱이 여기저기 눈에 뜨였다. 동화 '아낌없이 주는 나무' 이야기가 생각났다. 보이지 않는 뿌리의 존재감으로 나무처럼 희생하며 살다 가도 괜찮은 인생이겠다 싶은 생각을 하며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