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에피소드 컷 3... 늙어도 여자

어머니는 지는 꽃일 뿐 천생 여자

by 소망

생로병사를 겪는 육체 그리고 이 세상 룰에 따라 살고 변해가는 생각, 마음이라 불리는 우리네 의식. 그러나 진정 알 수 없는 영혼은 늙음도 죽음도 없다는 반야심경의 뜻을 새기며... '몸은 늙어도 마음은 청춘'이라는 세간의 말을 실감해 보는 이야기.




어머니 생신에 입으시고 행사 때도 있으실 옷을 한 벌 사드리려고 어르신 의류 브랜드를 찾아보았다. 예전에는 발품 팔 시간이 없어 어쩔 수 없이 백화점 매대를 이용하거나 주로 온라인 쇼핑몰을 이용했지만 지금은 오며 가며 보는 단품점을 이용하기로 했다. 블로그 검색을 통해 크로커다일 레이디가 연세 드신 어른들 의류로 가성비 좋다는 정보를 들었다.


며칠 전 댄스 다녀오는 길에 크로커다일 매장이 보여 들어가 살펴보았다. 마음에 드는 옷이 있어 픽해 두었고, 어머니를 모시고 댁 근처의 지점을 찾았다.


베이지 핑크인가? 보아둔 밝은 색상의 핸드메이드 A 라인 재킷을 권해드리니 맘에 들어하셨다.


미리 사이즈를 알아본 후 어머니 동네 매장을 찾은 후라 옷 선택이 쉬웠다. 점원은 어머니 풍채를 보더니

"맞는 것 없을 것 같아요." 한다.

에이~ 내가 기분 나쁘다.

'어머니가 연로하셔도 여자인데 말이지... 저리 말하는가...'


"105 사이즈 주시고 바지는 전체 고무줄 패턴으로 36 주세요. 맞을 것 같아요." 했다.


"105는 88이에요."

여전히 점원은 어머니께 맞는 사이즈가 없을 거라는 생각으로 고개를 갸우뚱한다.


"나 88 입으면 맞는데......"

어머니의 어투는 잦아들었고 이미 자존심이 상하셨다.


겨울이라 내복과 티를 껴 입으시고 외투까지 풍신하게 입으시니 체구가 더 보이나 보다.


여하튼 사이즈가 없어 100으로 입어 보셨다. 좀 끼는 것 같다.

"105면 맞겠어요." 했다.

어머니는 스스로 내복 두 개를 입어 그렇지 나이 드니까 살이 더 빠져가니 맞을 것 같다고 하신다. 점원이 하나 벗고 입어보시라고 권해 그리하셨다. 딱 맞아 보인다. 입으시니 화사하게 이쁘시다. A 라인이라 넓어진 허리도 커버가 된다. 그 옷에 옆에 진열된 보랏빛 핸드메이드 모자를 씌워 드렸다.


"어떠세요?"


어머니 얼굴이 그저 아이처럼 환해지신다. 근데 보랏빛에 가로 줄무늬가 좀 아닌 듯하다. 놓았다 다시 씌워드렸다 하니 점원이 다른 꽃이 프린팅 된 모자를 가져다 권해준다.


"오 이게 훨씬 낫네요! 어머니~ 어떠세요?"

어머니도 보라보다 낫다고 좋아하신다. 재킷 컬러와도 잘 어울린다.


바지를 벗고 입고하시느라 애쓰셨다. 권해주는 바지로 코디하니 썩 괜찮았다. 그도 사이즈가 없어 다른 36으로 일단 사이즈 확인 후에 결정했다. 재킷과 바지를 쉽게 구매했다. 상품은 연락받고 찾아오기로 했다. 그러고 보니 어머니 아우터가 검정이나 그레이, 브라운밖에 없으신 것 같다. 밝은 컬러의 무늬가 있는 것을 하나 사드리면 좋겠다 싶어 둘러보았다.

점원이 권해주는 오리털 재킷. 가벼운 구스는 짧은 게 없단다. 어머니는 긴 아우터가 치렁거려 싫다고 짧은 것이 좋으시단다. 권해주는 옷보다 흰색이 입고 싶다 하셨는데, 입으신 걸 보니 별로이고 질감도 별로 맘에 들지 않네. 흰색은 추워 보이기도 하고 별로다. 어머니도 마음을 접고 권해주는 아우터를 선택하셨다. 소녀처럼 좋아하신다. 그러고는 아우터를 입고 모자까지 예쁘게 챙겨 쓰시고 생기 발랄한 새댁처럼 나오셨다.




어머니께서 피팅룸에서 바지 갈아입으실 때 점원이 내게 물었다. 칭찬하려고...ㅎ

"며느님이세요?"

"예."

"이리 살갑게 시어머니를 대하는 며느리 처음 봤어요. 시어머니 모시고 오는 사람도 드물지만, 모시고 와도 말은 잘 안 해요."

덧붙여,

"딸하고 와도 서로 옷 보는 안목이 달라 의견 일치를 못 보고 갈 때가 많아요. ㅎㅎ"


"ㅎㅎ 그렇군요!"


어머니는 엔간하면 내 뜻에 맞추신다. 무조건 고마워하신다. 그러기에 투정이 없으시다. 그리고

"며느리가 사주니까 무조건 좋아." 하신다.


이제 여든이 넘으시고 두 무릎도 수술하셔서 꼿꼿하시진 못해도 어머니 키가 크시고 체격이 좋으신 분이다. 눈썰미도 좋으신 편이다. 그래서 빨리 선택했다. 그러니까 점원도 처음에 미온적이던 태도가 바뀌어 매출로 이끈 것이다. 사은품으로 스카프도 챙겨 준다 했다.




어머니가 기분이 좋으셔서 점심 먹으러 가자신다. 쏘신다는 말씀이다.

"예. 어머니 쏘신다니 최고집으로 갑시다."


최고집에 가서 팥죽 하나 포장받고 하나는 어머니랑 나눠먹었다.

웨이팅 하는 동안 밖, 의자에 앉아 햇빛을 쪼였다. 어머니는 내가 화상 입었었다는 소리를 들으시고 얼굴을 보자시며 손으로 내 얼굴을 감싸 보셨다.


"우리 며늘 얼굴 어찌 됐노?"

"괜찮아요. 다 나았어요."


그저 다치지 않게 조심하라고 누누이 이르신다. 미리미리 건강도 챙기라고 신신당부하신다. "예 노력하겠습니다." 했다.

새 옷 입고 걷고 싶어 하시는 눈치였지만, 날씨도 춥고 빙판도 있어 모르는 척했다.

어머니 댁에서 쉬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이렇게 자식에게 고마움을 느끼실 때 어머니 마음이 울컥하시나 보다. 웃으셨다 눈물 찔끔하셨다 그러신다. 그러면서 재차 그러신다.

"그냥 살아 보니 마음이 그런 거야. 좋아도 그런 거야."

충분히 이해한다.


어머니께서 담그신 나박김치가 너무 맛있다고 며느리에게 자랑하신다. 꼭 먹어보라고 보채시기까지....ㅎㅎ 작년 묵은지를 버려야나 했는데, 먹어보니 너무 맛있다고...

"어머니, 절대 묵은지는 버리면 아니 되죠. 살림 못하는 며느리도 그건 알아요. ㅎㅎ 등뼈 찜 할 때 두 포기 이상은 들어가요. 안 드시면 절 주세요. "


신나서 퍼 주신다. 굳이 제가 하겠노라 해도 손목 아프다고 당신이 직접 하신단다.


"하하 그러세요. 어머니 마음 이젠 다 아니 제가 양보할게요."


따님 시댁 어르신들이 보낸 시골 쌀이라며 먹어보라고 김치처럼 한 통을 주신다. 나도 어머니께서 싸 주시는 것을 흔쾌히 받아 왔다.

예전에는 "됐어요. 어머니 드세요." 했지만 이제는 어머니 맘 아니까 "고맙습니다."하고 받아온다. 신나게 들고 나왔다.


어머니께서 그러신다.

"뭔 돈이 있다고 옷을 그리 많이 사주나? 얼마나 많이 입을 거라고. 고맙고 미안하다."


연세 드신 어른들은 대게 그리 말씀하신다. 늘 가야 할 날이 멀지 않으니 자식들 돈 쓰게 하는 것에 미안함을 느끼신다.


"어머니, 신경 쓰지 마시고 예쁘게 부지런히 입으세요. 그리고 젊었을 때 안 해드렸으니, 지금 해드려야죠. 충분히 해 드릴만 합니다. 이 며느리가 많이 못 해드렸잖아요!"


문을 나오는데 어머니가

"우리 며느리가 옷 사줬다고 자랑하련다. 고맙다!" 하시며 덥석 안고 토닥여주신다.

"너랑 더 잘 지냈어야......"


맞다. 어머니는 나랑 잘 지내지 못한 세월을 후회하시는 모양이다.


나도 어머니를 안아드렸다.

환하게 웃으시는 주름진 어머니 모습도 이리 예쁘시다.




요즘 가끔은 내 죽음도 생각하지만 연로하신 어머니의 가실 날도 생각하게 된다. 사이가 별로였어도... 함께 태국과 베트남 여행도 다녀왔고, 제주도 여행에 휴양림 여행도 몇 번이나 갔다. 강화도 화개산 모노레일 모시고 태워드리니 아이처럼 좋아하셨고, 근사한 카페에서 흔들의자에 나란히 앉아 지는 노을을 바라보며 함께 커피도 마셨지. 산수유 마을에 놀러 가 신나게 미나리도 캤다.


70대 아버님이 돌아가신 후 적적하실 어머니를 생각해 한 일이다. 베트남 여행은 60대인 막내이모님도 동행하여 패키지 팀 여행객들로부터 엄청 소리 들었다. 딸이 아닌 며느리였냐는 질문... ㅋ


어머니는 7년 전쯤 화해의 선물로 내게 쌍가락지를 주셨다. 나이 든 내가 예쁘게 끼고 다니길 원하신다. 나도 이제 번쩍거리는 금반지를 끼고 어머니를 기쁘게 해 드려야겠다.


어머니는 그 어느 시어머니보다 욕심이 많으셨다. 자존심도 세셨다. 그러나 이 며느리는 욕심도 별로 없고 어머니 성에 안 차는 부족하고 비리비리한 며느리였다.


이젠 '우리 며느리가 살도 단단해졌다'라고 하시며 좀은 건강해진 나를 보고 기뻐하신다. 나도 어머니, "저 이런 동작도 다 해요." 하며 바닥에서 뒹구르며 온갖 동작을 다 해 보인다. ㅋㅋ 그러면 어머니도 덩달아 당신이 하시는 동작을 또 자랑하신다.


어머니도 사람이고 나도 그렇다.

어머니도 여자시고 나도 그렇다.


미움도 원망도 질곡의 세월 속 한 모습이고, 그도 관심이고 사랑이었다. 세월 따라 함께 늙어가는 두 여자의 넉넉해진 마음은 또 다른 드라마를 그려낸다. 그럴 뿐이다.


누군가와 귀가하며 마구 웃었다.

"우리 어머니는 천생 여자셔. 하하하~~ 며느리보다 매력 있는 천생 여자!"


어머니 인생도 참 멋졌어요! 슬퍼 마세요.

어머니, 건강하세요.

필요한 거 있음, 아들보다 며느리에게 말씀하세요. 남자들은 여자 맘 잘 모릅니다. ㅎㅎ 제가 해 드리겠습니다.


'늙어도 여자'라는 말이 있지.

인간의 본성은 생로병사가 없다.

아니타 무르자니가 쓴 임사체험기 '그리고 모든 것이 변했다'를 보면 영혼은 순수 그 자체이며 세상은 사랑뿐임을 알 수 있다. 태어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것은 육신의 몫이다.


육신은 늙어도 영혼인 본성은 젊고 늙음을 논할 수 없다. 그저 같은 마음. 그래서 아이도 노인도 그 누구라도 똑같이 존중받아야 하는 존재인 것이다.


반야심경의 불생불멸, 불구부정, 부증불감을 마음속에서 늘 되뇌곤 한다. 인간은 육신을 떼 놓으면 그런 존재이고, 세상 또한 그러하다. 주어진 육신은 선물이라는 말, 그러나 희로애락을 경험해야 하는 지독히 감정적인 고통의 선물이라는 것이 문제이다. 그러나 4계절 공기 속에서 피부도 건강하듯 다양한 맛이 삶에 활력을 주지.


본성에 젊음과 늙음이 없듯 남녀가 어찌 따로 있을 것이나, 이 육신의 현생은 모든 것이 분별이니 그저 '늙어도 여자'라는 말이 생길 수밖에...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