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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인사이트 4... 정신적 성장

정신적 쓰나미를 대하는 슬기로운 대처

by 소망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는 정신적 쓰나미


어느 날 갑자기 쓰나미가 몰려왔습니다. 집터의 흔적만 남긴 채 모든 것을 쓸어갔습니다. 살 희망을 잃었습니다. 절망의 순간에도 작은 희망의 불씨만 발견하면 살 수 있다고들 합니다. 처음 일을 당할 때는 희망의 불씨조차 보이지 않습니다. 그도 발견하려는 인간의 의지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의지가 무너질 때, 무기력에 압도당하고 우울에 잡혀 먹힙니다.




자연재해로 터전을 잃어 상실 속에 허덕이는 재해민들의 실제 고통에 비할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만, 마음 근력과 정신이 취약했던 저의 정신적 쓰나미는 저를 휘청이다 무릎 꿇게 했습니다. 지금까지 재건의 몇 년을 보내고 있습니다.


쓰나미 속에 드러난 인생의 터닝포인트를 알아채지도 못했고 끝날 때쯤 되어 터닝포인트였구나 했습니다.

어느 수필집에서 읽었을 수 있고 어디서 누군가에게 들었을 수는 있으나 삶에 무지했고, 무명 속에 살았던 저는 생의 전환기, 변곡점 등과는 전혀 상관없는 1인이었습니다. 갑자기 도래한 쓰나미를 거리 두고 지켜볼 수 있었으면, 나이스하고 날렵하게 터닝 포인트를 탁 터치하고 돌아설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제게 왔던 정신적 쓰나미는 어린 시절부터 예견된 신의 계획이었음을 시인합니다.




알아차리세요


정신적 전환기는 아무에게나 아무 때에 오는 것이 아닙니다.

어느 정도 살아 인격이 무르익어야 할 시기쯤?

그 시기가 왔음에도 전혀 알아차리지 못할 때?

삶에 무지한 사람에게?

일렁이는 파도가 아닌 쓰나미처럼 옵니다.


인생이 뭔지, 삶이 뭔지, 인간이 뭔지, 진리가 뭔지 모르고 지혜는 無였던 인간이 정신의 고통을 겪고 나니 많은 것이 달라졌습니다.



이 글을 읽는 인생 후배, 동료들은 독서와 글쓰기에 관심 있으며 삶을 생각하고 사는 이들이기에 저 같지는 않을 거라 믿습니다.


지금을 사는 후배들은 인생의 고비가 오면 초반부터 감지하고 슬기롭게 극복해 가면 좋겠습니다.


정신의 고통이 육체의 고통이나 재해보다 덜하지 않다고 봅니다. 사람마다 처지와 성향에 따라 다르겠지만요. 아마도 성난 파도처럼 올 수도 있고 평상시처럼 얌전한 파도로 왔다 갈 수 있습니다. 사람마다 사춘기를 다르게 겪듯요.


도스토옙스키가 말했다죠.

'인간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자신의 고통이 가치 없게 되는 것'이라고요.


고통도 사역이라는 말이 생각납니다. 인간은 고통으로 아름답게 피어나고 그로 성장하죠.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고통을 사역으로 주신 까닭입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삶에는 온전히 자신이 선택할 권리와 의지와 책임을 심어주셨네요. 제 삶은 그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제 몫이듯 고통이라도 감내하며 살아야 하는 우리는, 우리의 주인입니다.


고통의 가치는 우리네 정신을 초월합니다.

쓰나미 정도의 풍파와 고통이 있어야 모든 것이 리셋됩니다.

성난 파도가 들이쳐 위험을 줄 수 있지만 집을 삼키지는 않습니다. 삶의 터전은 쓰나미에 쓸려갑니다. 그리고 재건의 기회도 오는 거죠. 올 리셋되죠. 정신적 터전도 마찬가지입니다.


쉽게 쉽게 사는 인생은 그저 그렇게 흘러갑니다. 풍파를 겪어야 생활 터전도 정신적 터전도 새로워집니다.


고통을 가치 있게 만드는 것은 자신의 몫입니다. 인간으로서의 존재감은 책임적 실존에서 비롯된다고 봅니다. 지혜로운 인간은 고통을 성장의 기회로 보고 가치를 부여할 것입니다.


기왕 겪어야 할 일이라면 고통의 가치로 성장하세요.


그러나... 작은 고통으로 큰 성장을 이루세요.


이 글을 보는 분들 중에 아직 전환기를 맞지 않은 분들은 이리 하시면 좋겠습니다.


적은 고통으로 큰 성장을 이루기 위해서는요~ 파도가 치면 겁내지 말고 뒤로 물러나 감상을 하세요. 여유를 가지고 대처 방법을 찾으라는 거예요.

쓰나미가 오면 우선은 피해서 관망하세요.

알아차림이 늘 중요한 것 같습니다.


그 파도에 휩쓸리지 말고 뚝 떨어져 보면 그저 풍경처럼, 자연의 현상처럼 지나갈 것입니다.


감지할 수 있는 지혜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알아차리세요. 저처럼 미련스럽게 당하지만 말고요. 그런 지혜를 갖는다면 삶을 바라보는 눈은 훨씬 넓고 깊어지겠죠.


삶과 자신의 인생을 생각해 온 사람은 알아차림이 빠르죠. 저처럼 아무것도 모른 사람은 앉아서 파도에 휩쓸려 정신을 놓고 마는 겁니다.


여담요~ 파도에 휩쓸려보셨나요? 저는 청년기에 동해바다 파도에 한번 구른 적 있었어요. 어찌나 무섭던지... 작은 파도도 힘이 무척 세서 구르다 나왔네요. 목숨 건진 게 다행이었죠.


50대 중반에 맞은 삶 속 파도도 저는 엄청 무서웠어요.


젊은 시절의 저는 마음 근력도, 지혜도 없었지요. 파도가 치면 이 세상을 떠나고 싶다거나 이 세상이 무너져 버리면 좋겠다거나. 멀리 도망가고 싶었어요. 그래서 바다를 별로 좋아하지 않고 숨을 곳 많은 산을 좋아했었나 봐요. 그래도 풍파가 고만고만했으니 살아남았겠죠. 그런데 세상 이치를 모르고 삶에 대한 지혜의 눈이 없으니, 용기나 희망 등을 가질 수 없었고 무기력하기만 했어요.


인생 전환기를 맞고 터닝포인트를 딱 찍고 돌아서니 이젠 좀 살 것 같습니다. 이런 시기는 아무에게나 오는 건 아닌 듯싶습니다. 저처럼 무명 속에서 산 사람에게 오는 것 같아요. 쓰나미를 거치고 터닝포인트를 찍는다는 것은요. 거의 구사일생, 다른 사람으로 변화하는 기분입니다. 정신의 변화, 행동양식의 변화, 늘 해오던 생각과 말과 행동이 바뀌는 것 같아요. 모든 관습에 무감각해지기도 해요. 처음 대하는 변화에 저조차 제가 낯설었어요.


모든 의식의 변화는 기존의 저를 바꾸었지요. 오히려 지금의 제가 일상적으로 용인되는 일반인일 수 있어요.

저는 그리 생각합니다. 나이에 걸맞은, 위치와 역할에 걸맞은, 안정되고 좀은 날카로운 지성이 생겼고요. 무지렁이 같지 않아요.


쓰나미는 쓰나미대로 받아들이고 즐기세요. 단 알아차리세요. 저처럼 모른 채 속수무책 당하기만 하면 많이 슬프고 또 많이 오래도록 아픕니다.



고통이 사역이듯 쓰나미도 행운의 기회일 수 있습니다. 지금의 아픔과 슬픔, 고통도 어쩌면 새롭게 태어나라는 신의 메시지일 수 있습니다. 그는 반드시 끝납니다. 자연재해가 인력으로 어찌할 수 없듯 그도 자신의 것은 내려놓고 순응해야 합니다. 아집과 비틀린 자아로 종착까지 가져가는 愚는 범하지 마세요.


모든 전환기, 변곡점 앞에 서 있는 모든 분들을 응원합니다!


저 다 올 리셋 되었냐고요? 그렇다면 인간이 아니겠죠. 다 지나고 나면 어느 정도 예전의 저로도 돌아갑니다. 그래서 괴리감도 느끼고 모순도 느끼며 멀미 나는 몸으로 살고 있는 거죠.

인생은 늘 한 스텝씩만 움직여야 하나 봐요. 욕심을 허락지 않아요. 작은 파도를 겪으며 늘 조금씩 성장해 가야 하는 인생길이 값지다 합니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는 말이 괜히 있지 않아요. 나를 비호하며 살아온 인생의 덫요, 그들도 신과 힘겨루기 하던 성경 속 사탄처럼 힘이 세거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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