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임신일기
감기에 호되게 걸렸다. 병가를 냈다가 복직한 후 그래도 잘 버티고 있다 싶었는데 역시 무리였나 보다. 목요일 즈음부터 컨디션이 안 좋다 싶더니 주말에는 완전히 앓아누웠다. 이틀 내내 꼼짝 안 하고 쉬었지만 전혀 나아지는 기미가 없었다. 뭔가 조치가 필요했다. 고심 끝에 삼계탕을 먹기로 했다.
삼계탕은 우리나라의 대표 보양식이다. 기운이 없을 때 기운 차리라고, 더운 복날에 더위 먹지 말라고 삼계탕을 먹곤 한다. 삼계탕(蔘鷄湯)은 인삼 삼자와 닭 계자를 사용한다. 이름대로 인삼과 닭을 넣어 푹 끓인 탕이다. 사실 인삼보다는 닭이 주재료라 예전에는 계삼탕이라고 했지만, 어느 순간 이름 순서가 바뀌었다. 귀한 인삼이 들어갔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유사한 음식으로는 백숙이 있다. 백숙은 닭을 푹 고아 끓인 것인데, 차이는 인삼이 들어갔는지 여부다.
만드는 방법은 간단하다. 닭과 인삼을 포함한 각종 약재, 그리고 찰밥을 함께 끓이면 된다. 재료 구하기도 쉬운 편으로, 마트에 가보면 삼계탕 세트라는 이름으로 약재들을 한데 모아 판다. 조리법도 간편하고 재료 구하기도 쉬우니, 집에서 해 먹기 부담 없다. 평소에는 집에서 곧잘 해먹는 편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사 먹기로 했다. 손하나 까딱할 기력도 없고, 남편한테 시키면 내가 하는 것과 똑같은 공수가 들게 분명했다. 어차피 주변에 삼계탕집도 많다.
삼계탕은 워낙 보편적인 음식이다 보니 파는 식당도 많다. 회사가 모여있는 곳에는 웬만해선 삼계탕집이 하나씩 있다. 만원 중후 반대의 가격이 싸다고 하기는 어렵지만 다른 고기 메뉴에 비해서는 저렴한 편이라 기운 없을 때 찾을만하다. 복날이라는 특수 시즌이 있기도 하다. 식당에서 파는 삼계탕은 들깨가루를 듬뿍 넣어 걸쭉하게 만들거나, 녹두를 넣어 집에서 만든 기본 삼계탕과 차별화하기도 한다. 인삼주를 한 잔씩 줘서 '삼'계탕임을 강조하기도 한다.
나도 종종 찾는 삼계탕집이 있다. 들깨 삼계탕이 특히 맛있는 집이다. 기본 삼계탕이야 하기 쉽지만 들깨 삼계탕은 제대로 끓이려면 들깨 외에도 여러 추가 재료가 필요하고, 무엇보다 걸쭉해서 눌어붙지 않게 계속 저어줘야 하기 때문에 가능하면 이 곳에서 사 먹는다. 이번에도 그 집을 갈까 했지만, 20여분을 차를 타고 갈 힘도 나지 않았다. 그냥 집 가장 가까운 곳으로 가기로 했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곳이고 식당 안에 사람도 많지 않아 걱정도 되었지만 별다른 도리가 없었다. 아침 점심 모두 먹는 둥 마는 둥 했고, 몸은 뜨겁고 무거워서 축축 늘어졌다. 내일 회사 가는 것도 두렵고, 이렇게 아프면 뱃속의 아이는 괜찮은 걸까 걱정이 되었다. 미식을 따질 때가 아니었다. 뭐라도 먹고 힘을 내야 했다. 실패 확률을 줄이기 위해 가장 기본 삼계탕을 시켰다. 영계 한 마리와 걸쭉한 국물이 뜨거운 뚝배기에 담겨 나왔다. 뜨끈한 국물을 한 숟갈 떠 넘겼다.
... 너무 맛이 없었다. 미식을 따질 때가 아니라는 위의 결심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조미료 맛이 너무 심했고, 거기다가 걸쭉하게 만들기 위해 전분을 너무 많이 넣었다. 따뜻한 국물을 먹는다는 생각으로 먹어보려 했으나 힘들었다. 고기에도 국물의 조미료 맛이 배어 있었다. 남편은 못 먹을 정도는 아니라고 했지만, 나는 미각과 후각이 너무 예민해져 있는 탓인지 힘들었다. 억지로 먹으니 속만 미슥거렸다.
보양을 하러 나갔다가 기운만 더 빠진 채로 돌아왔다. 삼계탕집에 가느라 기력만 소진해서 이젠 억지로라도 뭘 먹을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힘 없이 자리에 누웠다. 그러고 보면 결혼하고 나서 아프면 더 힘들고 서러워졌다. 예전엔 아프면 엄마가 챙겨줬지만, 지금은 나 스스로 나를 챙겨야 했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더 막막해졌다. 아이가 태어나고 나면 더 힘들 게 분명하다. 아플 때 나 하나뿐 아니라 아이까지 챙겨야 했다. 할 수 있을까?
하지만 도리가 없다. 돌이킬 수도 없는 노릇이다. 강해지는 수 밖엔 없다. 여자는 약해도 엄마는 강하다고 하더니, 엄마는 어쩔 수 없이 강해야만 하는 것이었다. 또다시 막막해졌지만 그냥 눈을 질끈 감았다. 막막해서 어쩔 건데.
(이번엔 실패했지만) 삼계탕이라도 미리 많이 먹어둬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