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임신일기
슬슬 입덧이 끝나가는 모양이다. 저녁시간을 앞두고 갑자기 족발이 먹고 싶어 졌다. 쫀득쫀득한 족발에 짭조름한 새우젓, 마늘을 상추에 싸 먹고 싶었다. 입덧 때문에 고생하고 있는데 육향 강한 족발이 괜찮을까 하는 생각이 잠깐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뭔가 먹고 싶은 게 얼마 만이던가. 당장에 족발을 먹으러 향했다.
간 곳은 선릉역 근처의 한 족발집. 서울 3대 족발집들도 물망에 올랐지만 이 곳을 택했다. 이 곳의 족발은 족발 특유의 냄새가 덜해서 족발을 좋아하지 않는 남편이 먹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족발이다. 임신 후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고 있는 중이라 다른 족발집을 선택해도 갈 수는 있었겠지만, 권력의 안정적인 유지를 위해 이 곳을 택했다.
족발은 원래 호불호가 강한 음식이다. 대개는 호불호는 족발의 콜라겐 때문에 생긴다. 껍질 부위가 많은 족발은 돼지고기 다른 부위에 비해 콜라겐의 비중이 높다. 콜라겐은 살코기에 비해 유달리 쫀득쫀득한 식감을 형성하는데 이 식감에 호불호가 갈린다. 족발을 좋아하는 사람은 콜라겐이 많은 발부분을 골라먹지만, 싫어하는 사람들은 살코기만 골라서 겨우 먹곤 한다. 이런 사람들을 보고 족발을 좋아하는 이들은 콜라겐이 피부에 좋다고 구슬리기도 하지만, 참고로 이는 사실과 다르다. 고기 속 콜라겐은 분자량이 커서 흡수율이 떨어진다. 즉 족발을 먹는다고 피부가 좋아질 확률은 낮다.
나는 둘 중 어느 쪽인가 하면 족발을 좋아하는 편이다. 족발을 싫어하는 부모님 영향으로 족발 자체를 좋아하진 않았지만, 술을 마시며 술안주로써 족발의 매력에 빠졌다. 대학교 때 근처에 유명한 족발 골목이 있었다. 낡은 주택가에 족발집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그곳은 소위 '술 먹을 느낌'이 나는 곳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순댓국이 무한 리필이었다. 여러 명이 나눠 먹으면 족발 가격은 학생 신분에도 크게 부담스럽지 않았고, 순댓국이 무한 리필이니 소주를 곁들이기 딱이었다. 처음에는 대단히 내키지는 않는 마음 상태로 따라갔지만 소주와 함께 하는 족발은 또 달랐다. 찐득한 콜라겐 때문에 더 기름지게 느껴지는 족발이 소주로 깔끔하게 씻어 내려졌다. 존재감 강한 족발 덕에 소주도 부담스럽지 않았다. 족발이 생각보다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 순간이었다. 그렇게 족발골목에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다 보니 족발에 익숙해지기도 하고 추억도 쌓이게 되었다.
학교를 졸업하며 족발 골목과 멀어지고 족발을 싫어하는 남편을 만났지만, 그래도 종종 족발을 먹으러 다녔다. 족발로 유명한 곳은 의외로 많았다. 우리 학교 근처의 공덕동 족발 골목은 알고 보니 순위가 한참 떨어졌다. 대한민국 족발의 역사가 시작되었다는 장충동 평안도 족발부터, 위에 잠깐 언급했던 삼대 족발-오향 족발, 영동 족발, 성수 족발-이 가장 유명하다. 그 외에도 이 날 방문한 선릉역 족발집처럼 원조나 삼대에는 못 들었지만 인기를 구가하는 곳들이 있다. 대부분의 족발집은 술과 함께하는 분위기로 가족보다는 친구들끼리 찾는 경우가 많다.
한국의 독특한 요리로 족발이 소개되면서 외국인 관광객들이 종종 족발을 먹으러 오기도 한다. TV나 유튜브에서도 족발을 먹는 외국인의 모습이나 반응이 종종 나온다. 영상에서는 대개 족발의 정체를 알고 기겁하는 반응이 나타나지만 실은 족발은 우리나라만 먹는 부위는 아니다. 유럽과 아시아 여러 국가에서 족발을 먹고 있다. 그중 독일의 슈바인학센이나 폴란드의 골롱카는 꽤 알려진 족발 요리다. 슈바인학센과 골롱카는 족발을 통째로 접시 위에 내서 비주얼만 보면 오히려 우리나라 족발보다 더 충격적이다. 통째로 오븐에 오래 조리한 이 음식들은 우리나라 족발과 달리 겉이 바삭하다. 하지만 기름진 맛은 비슷해서 이 음식들도 현지에서 곧잘 술에 곁들여 먹는다. 독일이나 폴란드에 비록 우리나라 소주는 없지만 보드카나 맥주와 함께 먹는다. (그곳의 맥주는 대개 우리나라 맥주보다 맛이 진해서, 족발과도 잘 어울린다.)
다시 이 날의 족발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사실 이 날 족발을 많이 먹지는 못했다. 두 세입까지는 맛있게 먹었지만 조금 먹다 보니 냄새가 올라왔다. 술을 곁들이지 않아서인지 입덧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뿌듯했다. 먹고 싶은 음식이 생기고 있다. 그리고 밥도 못 먹던 내가 육향 진하고 찐득한 족발을 먹어냈다. 입덧에도 끝이 보였다. 입덧이 끝나고 나면 엄청 먹기 시작한다던데 이제 시작인 모양이다. 후식으로 아이스크림까지 찾아 먹었다.
다시 찾아온 식욕이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다. 보통 식욕은 경계의 대상이었다. 먹는 걸 좋아하는 만큼 지나치게 살찌지 않을까 겁도 났다. 식욕에 대한 감정이 좋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아니다. 식욕에 대한 긍정적인 감정이 참 낯설다. 이 또한 임신을 통한 새로운 경험이다. 이번 경험은 긍정적인 경험이라 참 다행이다만, 다음에는 또 어떤 경험이 기다리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