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임신일기
들어갈 집도 들어올 사람도 다 정해지고, 이제 정말 이사 준비만 남았다. 이삿짐센터와 입주청소를 계약하고 짐을 정리하면 될 줄 알았는데, 의외로 마음 정리부터 필요했다.
동네 친구와 동네 카페에서 만나길 청했다. 동네 친구도, 동네 카페도 멀어질 터였다. 자리가 10석 정도밖에 안 되는 동네 카페는 은근히 인기가 많아 항상 자리잡기 어려웠다. 오픈 시간에 맞춰가도 허탕을 치는 게 다반사였지만 오늘은 웬 일로 자리가 있었다. 수시로 바뀌는 영업시간도 바뀌지 않았고, 먹고 싶은 샌드위치도 준비가 되어 있었다.
샌드위치 하나, 커피 한 잔씩을 시켰다. 샌드위치는 직접 구운 크루아상에 햄, 치즈, 루꼴라, 잼이 들어간 샌드위치는 단짠의 조합이 기가 막히게 좋았고, 라테는 씁쓸한 커피와 부드러운 우유가 딱 맞게 어우러졌다. 친구와의 수다는 끊이질 않았고 커리어, 인간관계, 부동산, 취미 생활, 정치, 육아 등등 대화의 주제는 사회 전반을 훑었다.
만나고 있으면서도 아쉬움이 너무 컸다. 천천히 먹고 천천히 얘기했지만 시간은 야속하게 흘러갔다. 친구는 이사 간 동네까지 오겠다고 했다. 마음이 감사했지만 쉽지 않다는 걸 안다.
결혼하고 처음 온 낯선 동네였다. 아는 사람 하나 없었고 어두컴컴한 주택가가 많아 처음엔 밤에 혼자 걷기도 무서웠다. 그러던 동네가 그새 애틋해졌다. 카페에 가면 말하지 않아도 내 주문을 알고 있고, 길을 가다 보면 와인집 사장님과 자꾸 마주치는가 하면, 자주 가는 미용실 사장님은 내 임신을 알리던 날 자기 일처럼 기뻐하며 기어코 커트 비용을 받지 않았다.
집도 마찬가지다. 오래된 아파트라 층간 소음도 심하고 자잘하게 보수할 일도 많았다. 살면서 내내 이사 갈 날만 꿈꿔왔는데 막상 이사가 정해지니 마음이 섭섭했다. 청소하다 실수로 찢은 벽지, 툭하면 안 켜지는 가스레인지 등등 애증의 대상들이 모두 애틋해졌다.
아직 이사까지 한 달 반은 남았는데 벌써부터 이렇게 애틋해서 어쩌려나 모르겠다. 이사 갈 동네도 이렇게 애틋해질 날이 오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