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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ME Jul 30. 2022

전남편은 내가 주방일 하는 걸 싫어했다

그만한 강박증을 가지고 이 날 이때까지 어떻게 살아왔을까


 전남편에 대해 글로 쓰자면 얇은 책 한 권 정도는 만들 수 있을 텐데, 그중 제일 처음 하고 싶은 말은 '주방 일'에 관한 것이다. 굉장히 인상적인 부분이라 그런 것 같다.


 내 전남편은 주말이면 주방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곤 했다. 평일 저녁도 마찬가지였다. 설거지와 음식물 쓰레기 버리기, 냉장고 청소, 그릇 정리 등을 자발적으로 나서서 했다. 내가 돕기라도 할라치면 기겁을 하며 손사래를 쳤다. 그뿐인가? 깔끔한 걸 좋아해서 우리 집 주방은 늘 일렬종대로 각을 맞춰 정리되어 있었다. (물론 이 청소가 주방에만 한정된 것은 아니었다. 어쨌든) 그는 항상 일정한 시간에 퇴근해, 정해진 순서대로 씻고 옷을 갈아입은 후, 주방에 서서 말했다.


 "여보야, 좀 쉬고 있어요. 내가 저녁 차릴 테니까."


 처음엔 남편이 저녁식사를 챙기는 게 무척 고마웠다. 퇴근하자마자 동분서주 움직이며 상대를 위한 식사를 준비해준다는 건, 사랑이 아니면 할 수 없다 여겼다.


 그런데 사실 전남편의 요리는 한 손에 꼽을 만큼 가짓수가 적었다. 우리는 늘 비슷한 메뉴로 저녁식사를 해야 했다. 아기가 낮잠을 잘 시간에 나 혼자 후다닥 저녁을 준비해 놓을 때도 있었는데, 희한하게도 식탁에 앉은 상대방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좋아 보이긴 커녕 오히려 굉장히 불편해 보였다. 음식이 맛없냐 물으면 그는 어색한 표정으로 이렇게 답했다.


 "아니야. 그저... 여보가 주방을 쓰고 나면 뒤집개나 간장 같은 게 위치가 바뀌잖아. 다음에 내가 요리할 때 못 찾을까 걱정돼서 그러지."


 전남편은 냉장고 속 물건들의 배치를 바꾸지 말아 달라고도 부탁했다. 그래서 나는 늘 정리정돈을 잘하려고 애썼다. 어느 저녁, 식사를 마친 뒤 설거지를 할 때였다. (이상하게 전남편은 내가 설거지하는 건 내 버려두었다. 그 이후 그릇 정리는 또 본인이 했지마는.)


 "근데 여보야. 소금을... 새로 샀어?"


 "응, 아까 마트 갔다 왔거든... 왜?"


 "아, 아니야 그냥 궁금해서."


 수상쩍게 대답한 전남편은 말없이 외출복으로 갈아입더니 휭 나가버렸다. 한 손에 박스 뭉치를 들고나갔기에, 분리수거하러 갔나 싶었지만 그는 조금 오래 걸려 돌아왔다.


 "오빠, 손에 뭐야? 소금 사 온 거야?"


 "아니 뭐... 나간 김에 갑자기 생각나서 마트 갔다가..."


 처음엔 좀 유난스럽다 생각하고 말았다. 남들이 동의하지 않는데 나 혼자만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있는 것처럼, 소금 브랜드가 그에게 그랬나 보다 할 뿐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자 이런 일은 더 많이, 더 자주 일어났다. 나로서는 그 소금이나 저 소금이나 뭐가 다르랴 싶었지만, 상대방을 탓하는 것처럼 들릴까 싶어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비단 소금뿐만이 아니었다. 식용유, 설탕, 식기류 같은 것도 그랬다. 그는 자신에게 익숙한, 딱 정해진 브랜드의 것들로 주방을 채우고 싶어 했다.


 "여보야, 설탕은 ㅇㅇ껄 사야 하는데."


 "내가 ㅇㅇ에서 나온 참치는 사지 말라고 했는데... 혹시 깜빡했어?"


 "후... 여보야 뒤집개가 왜 왼쪽에 걸려있지? 왼쪽은 집게 거는 곳인데."


 "접시는 여기, 밥그릇은 저기 두라니까 자꾸 위치가 바뀌네, 여보."


 "혹시 냉장고에 김치 2층으로 옮긴 거야? 왜?"


 "휴우... 안 되겠다 여보야, 나 잠시 마트 좀 다녀올게. 집에서 쉬고 있어."


 하루에도 대여섯 번씩 주방 일에 관한 잔소리 아닌 잔소리를 들어야 했다. 그는 가능하면 조용히 불만을 전달하려 애썼지만, 듣는 입장에선 여간 고단한 일이 아니었다. 나는 반박하기보다 그저 받아들이고 ‘저 사람이 주방을 참 좋아하고 아끼나 보다’ 정도로 생각했다.


  갈등은 아이가 자라면서 함께 커졌다. 아이의 이유식 준비 때문에 내가 주방에 있는 시간이 늘어난 탓이다. 소금과 설탕은 제 자리에 있는 날이 드물었으며, 어떨 땐 뚜껑을 닫는 것조차 잊고 싱크대 위에 덩그러니 놓여있기도 했다. 제때 치우지 못한 감자 껍질 같은 것들이나, 식 탁에 묻어있는 밥풀 같은 것들이 전남편의 심기를 엄청나게 거슬렀으리라 짐작한다. 각을 딱 딱 맞춰 정돈되었던 그릇장에 크고 작은 알록달록한 아동용 식기들이 자리했고, 그것들은 어떻게 정리해도 깔끔해 보이지 않았다. 그는 몇 번이고 쌓고 세우길 되풀이하다 결국 아동용 식기를 단정하게 정리하는 걸 포기했다.


 내가 열심히 만든 이유식은 아이의 몸속으로 들어가는 양보다 바닥에 흐르는 양이 더 많았기에, 열심히 닦고 치워도 흔적이 남았다. 게다가 팔다리에 힘이 생겨 자신만만해진 아기는, 젖병을 들고 이 방 저 방 다니며 우유를 흘려대기 일쑤였다. 아기 입장에서야 그만하면 안 흘리고 잘 먹은 편이지만, 청소병 말기 환자에게는 곱게 보일 리가 없었다. 대부분의 경우 그는 유순하게 말하려고 노력했으나, 어떤 날은 화를 참을 수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시작은 주방 일이었지만, 어쨌든 그는 이 집안 전체를 자신의 관리 하에 두고 싶어 했다. 그리고 성장하는 아이는 그것을 내버려 두지 않았다. 육아가 나에게 하나의 거대한 시련이었던 것처럼, 아이의 성장이 청소를 좋아하는 전남편에게 거대한 시련을 안겨주었다는 말이다. 아기가 기어 다니기 시작하자 잔소리가 배로 늘었다. 엄마인 나를 향한 건지, 기어 다니며 이것저것 건드리는 아기를 향한 건지 알 수 없는 잔소리였다. 나는 대부분의 경우 함께 청소하며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남자의 말에 동의해서가 아니었다. 그가 보이지 않는 적(이라고밖에 못하겠다)과 싸우며 힘들어하는데 해줄 수 있는 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뿐이라 그랬다.


 아기가 걷기 시작하자 전남편의 시련은 절정에 다다랐다. 그는 어느 순간부터 어지르지 말라며 아가에게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아이는 울고, 나는 달래고, 전남편은 소리 지르며 청소하는 나날이 이어졌다. 되풀이되는 긴장감 속에서 우리는 조금씩 지쳐갔다.


 그는 아이가 가만히 있기를 바랐다. 나에게 바랬듯이. 다 자란 어른인 나도 그가 원하는 만 큼 가만히 집에 있기 힘들었는데, 하물며 생명력 넘치는 아이는 어땠을까. 나는 남자가 없는 낮 시간 동안 아이와 힘차게 놀아주고, 남자가 돌아오기 전에 집을 원상복구 시키려고 애썼다. 내 청소가 마음에 안 든 그가 한숨을 쉬며 다시금 손을 대긴 했지만... 어쨌든 나로서는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청소를 해도 싫어하고, 요리를 해도 싫어하고, 장을 봐와도 싫어하고, 밖에 나가 다른 사람을 만나는 것도 싫어했기에 그 시기에 나는 약간 창살 없는 감옥에 갇힌 기분으로 살았다.


 대화를 여러번 시도해 보았지만, 이것은 일종의 습관에 관한 것으로, 바꾸기가 무척 어려웠다. 무엇보다 전남편은 이런 것들이 나를 힘들게 한다거나, 그래서 바꿔야 한다는 인식 자체를 하지 못했다.


  '전남편은 내가 주방일 하는 걸 싫어했다'는 말을 들으면 누군가는 부럽다고 말할지 모르겠다. 나도 처음엔 그를 굉장히 가정적이고 좋은 남편이라고만 생각했으니까. 그러나 같이 사는 집에서, 동거인의 눈치를 보며 언제나 종종대야 하는 건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우리 부부가 이혼한 건 단순히 한두 가지 문제 때문만은 아니었는데, 어쨌든 그의 이런 결벽적인 성향도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으리라.


 그는 계획대로 되지 않는 아이를 불안해했고, 이 불안함을 견디지 못했다. 언제 터질지 모를 시한폭탄처럼 구는 남편 때문에, 아이와 동선이 겹치지 않도록 하느라 나 또한 무진장 애를 썼었다. 그렇게 다정했던-그렇게 보이기 위해 애썼던-남편은 폭탄이 터지듯 뻥 폭발해버렸고, 솥뚜껑 같은 손에 얻어맞은 아이는 죽을 뻔했고,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던 나는 이혼을 결심했다.


 이제는 미움도 많이 희석되어 괜찮을 줄 알았는데, 이 짤막한 글을 써내는데 열흘이 걸렸다. 퇴고에 퇴고를 반복하여도 마음에 썩 차지 않아 은근히 마음고생을 했다. 결혼하지 않았으면, 아이가 없었다면 그는 스스로 꽤 괜찮은 사람이라 여기며 살아갔을지 모른다. 아이가 생긴다는 것은, 내 뜻대로 조종할 수 없는 연약한 개체와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내 고집의 대부분 을 내려놓아야 하는 일이다. 나에게도 육아는 쉽지 않은 것이었고, 그에게도 그러했으리라. 그의 고생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나, 다만 어른으로서 책임감을 가지고 더욱 도 닦는 마음을 냈어야 하는 거 아닌가 한다. 조막만 한 아기가 서른 넘은 아비를 이해하고, 알아서 조심하기란 불가능한 이야기니까 말이다.


 만일 부모가 되었다면 평생 묵은 생활습관을 한 순간에 바꿀만한 마음을 내야 한다. 그게 어디 쉬운 일이겠냐마는, 어렵다고 집을 대충 지어버리면 결국엔 작은 빗줄기에도 무너지고 만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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