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
차 안에서 라디오가 흘러나왔다. DJ는 느린 목소리로 “사랑은 노력으로 되는 게 아니라는 말, 맞는 것 같아요”라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나는 잠시 스쳐 지나가듯 그 말을 들었지만, 묘하게 가슴에 걸렸다. 옆자리의 그녀는 창밖을 보고 있었다. 말없이 스치는 풍경에 시선을 두고 있던 그녀의 옆모습을 보며 나는 생각했다.
‘우린 왜 이렇게까지 됐을까.’
“무슨 생각해?”
그녀가 갑작스레 물었다. 나는 당황한 듯 대답을 피하며 웃어 보였다.
“아니, 그냥.”
그 답은 나조차도 내 마음을 숨기고 있다는 신호처럼 느껴졌다. 그녀는 더 묻지 않았다.
우리는 함께 자주 가던 카페로 향했다.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익숙한 커피 향이 우리를 맞았다. 예전에는 이곳에서 대화가 끊이지 않았다. 우리는 서로의 이야기에 진심으로 귀를 기울였고, 그 시간은 너무 빨리 지나갔다. 그러나 오늘의 우리는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여기 오랜만이다. 그렇지?”
그녀가 말을 꺼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쳤다.
“응, 그래. 여전히 좋네.”
하지만 나는 이곳이 더 이상 좋지 않았다. 익숙한 장소가 익숙했던 감정을 되돌려주지는 않았다.
“요즘 많이 바빠 보여.”
그녀는 커피를 천천히 휘저으며 말했다. 그녀의 말투에는 짙은 피로와 희미한 서운함이 묻어 있었다. 나는 잠시 말을 삼키다 대답했다.
“조금 그래. 일도 그렇고, 신경 쓸 게 많아서.”
그 말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내가 그녀에게 시간을 내지 않는 건 일이 아니라 마음의 문제라는 걸 알고 있었다.
커피를 마시는 동안 그녀는 가벼운 이야기로 대화를 이어갔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쳤지만, 대화의 흐름은 자꾸 끊겼다. 그녀도 느끼고 있을 것이다. 우리가 더 이상 예전처럼 자연스럽게 이야기할 수 없다는 것을.
자리에서 일어설 때, 그녀가 말했다.
“너무 늦었네. 이제 집에 가자.”
그녀의 표정은 밝았지만, 나는 그녀의 눈빛에서 무언가 놓아버린 듯한 느낌을 받았다.
차 안에서 우리는 다시 침묵했다. 도로 위의 불빛들이 창문을 타고 흘러내렸다. 나는 그런 그녀를 곁눈질로 바라보며 생각했다.
‘언제부터 이게 노력이 되었지? 사랑이 자연스럽게 흘러가던 때는 어디로 갔을까.’
도착해서 그녀를 집 앞에 내려줬다.
“오늘도 고마워. 집에 조심히 가.”
그녀가 차 문을 닫으며 말했다.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문을 닫고 돌아서자마자, 나는 차 안에서 깊게 숨을 내쉬었다.
며칠 후, 그녀가 만남을 제안했다. 나는 거절할 수 없었다. 약속 장소에 도착했을 때 그녀는 평소보다 훨씬 단정한 모습으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무슨 일 있어?”
내가 묻자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냥 할 말이 있어서.”
그녀는 잠시 말을 고르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요즘 우리, 좀 이상한 것 같아.”
나는 그녀의 말을 끊지 않았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계속 말했다.
“내가 너를 더 사랑하는 건 아닌가… 그런 생각을 자주 해. 아니, 내가 더 사랑하려고 애쓰는 것 같아.”
그녀의 말에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너는 나와 함께 있는 게 행복해? 아니면… 노력하는 거야?”
그녀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나는 그 순간 모든 걸 끝내야겠다고 생각했다.
“우리 그만하자.”
내 입에서 나온 말은 생각보다 담담했다. 그녀는 놀란 듯 나를 바라보다가, 이내 고개를 숙였다.
“그래.”
그녀는 짧게 대답했다.
그 순간, 나는 느꼈다. 사랑은 노력으로 되는 게 아니라는 말을. 우리의 관계는 오래전에 이미 끝을 향해 가고 있었고, 나는 그저 그걸 인정하는 데 너무 오래 걸렸다.
돌아오는 길, 라디오에서는 느린 음악이 흘러나왔다. 나는 그녀의 뒷모습을 떠올리며 다시 한번 생각했다.
‘사랑을 노력한다는 게… 말이 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