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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게 왜 그랬어

장기하와 얼굴들

by someformoflove

문이 열리자 그녀가 서 있었다. 비에 흠뻑 젖은 모습이었다. 머리카락은 얼굴에 들러붙었고, 얇은 겉옷은 물을 먹어 축 늘어졌다. 남자는 그녀를 보자마자 짧게 한숨을 쉬었다.


“그래, 또 왔네. 근데 비는 왜 맞았어? 무슨 영화 찍어?”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늘 그랬다. 싸우고 나간 뒤 다시 돌아올 땐 항상 이렇게 침묵이었다.


“들어와. 뭐 하러 거기 서 있어.”

그는 문을 더 활짝 열었다. 그녀는 머뭇거리더니 천천히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문을 닫으며 덧붙였다.

“얼른 씻어. 보일러 켜놨어. 근데 나 잘 거다. 내일 일 있거든.”


그녀가 욕실로 들어간 뒤, 거실엔 정적이 흘렀다. 그는 소파에 털썩 주저앉아 휴대폰을 들었다. 몇 번 화면을 위아래로 스크롤하다가 던져놓고는 고개를 뒤로 젖혔다.


‘맨날 이 짓이다.’


싸우고, 헤어지고, 다시 돌아오고. 그 고리를 끊어야 한다는 생각은 늘 했지만, 막상 그녀가 찾아오면 문을 열어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 자신이 왜 그러는지에 대한 답은 매번 미뤘다.


그녀가 나왔다. 머리는 제대로 말리지 않아 여전히 물방울이 맺혀 있었고, 담요를 둘러썼지만 축축한 기운이 감돌았다. 그는 한 손으로 소파 옆에 있던 수건을 던졌다.


“머리 좀 말려. 너 감기 걸리면 또 내 탓이라고 할 거잖아.”

그녀는 그를 바라보며 천천히 수건을 받아 들었다. 담요를 꼭 쥔 채 한참을 가만히 있더니, 입을 열었다.

“미안해.”


그는 비웃음을 흘렸다.

“그 말도 이제 좀 신선도가 떨어지지 않았냐?”

그녀가 고개를 푹 숙였다. 말없이 눈물을 떨구는 모습에 그는 다시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아, 진짜. 또 왜 울어? 내가 뭐 괜찮아서 이런 줄 알아?”

그녀는 여전히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짙어진 침묵 속에서 다시 한숨을 내쉬며 팔짱을 꼈다.


“맨날 왜 그래? 뭐가 그렇게 힘들어서?”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눈물이 번진 얼굴로 말했다.

“그냥… 네가 없으면 안 될 것 같아서.”

“그래? 근데 네가 나갈 땐 그렇게 쉽게 나가더라.”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뱉었다. 그녀가 움찔하는 게 보였지만, 별 감흥이 없었다.


잠시 후 그녀가 그에게 다가와 조용히 안겼다. 그 순간 그는 또다시 복잡한 감정에 휩싸였다. 따뜻했다. 좋았다. 하지만 좋으면서도 기가 찼다.

“나 이렇게 안고 있으면 좋긴 하거든,” 그는 담담하게 말했다. “근데 결국 또 나갈 거잖아. 그럴 거면 뭘 하러 또 돌아와?”


그녀는 고개를 떨군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그녀를 밀어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불 끄고 자. 난 잔다.”


그는 방으로 들어가면서 생각했다.

‘진짜 이번이 마지막이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문득 고개를 돌려도, 그 자리에 그녀가 없어질 것 같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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