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의 삶은 복잡하고 반복적이었다. 사람들 사이를 헤집고 지하철과 도로 위를 오가다 보면 어느새 하루가 지나갔다. 너와 헤어진 뒤의 서울은 더 삭막했다. 함께 보던 거리의 풍경, 나란히 앉았던 카페, 손을 잡고 걸었던 길들은 모두 내가 피하고 싶은 장소가 되었다. 매일 같은 일상을 견디는 것이 버거웠다. 그래서 나는 제주로 떠나는 방법을 선택했다.
몇 년 전, 처음 올레길을 알게 되었을 때 그 이름이 왠지 모르게 끌렸다. ‘천천히 걷는다’는 의미를 담은 길이라니. 서울에서는 느낄 수 없는 시간이 그곳에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매년 제주를 찾았다. 올레길은 내게 특별한 약속이 되었다. 혼자 걷는 길. 어쩌면 너를 떠나보내기 위한 여정이었다.
처음 제주에 도착해 올레길을 걸었던 날을 아직도 기억한다. 그날의 공기는 맑고 차가웠다. 발끝에 바스락거리는 자갈 소리가 들리고, 해안가로 몰려오는 파도가 시야를 가득 채웠다. 길 위에서는 아무도 나를 재촉하지 않았다. 바다와 하늘이 끝없이 이어져 있었고, 그 사이를 걷는 동안 나는 나만의 시간 속에 머물렀다. 하지만 그 시간은 늘 너를 떠올리게 했다.
서울에서 나는 너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애썼다. 휴대폰 속 사진과 메시지를 정리하고, 너와 관련된 물건들을 하나둘 치워냈다. 하지만 제주에 오면 너는 다시 내 앞에 나타났다. 내가 너와 나눴던 대화들이 바람 속에 묻어나고, 너의 모습이 해안가에 비친다. 길을 걷는 동안 나의 발걸음은 마치 너에게로 향하는 것 같았다.
올레길은 그저 걷기만 하면 되는 길이다. 하지만 그 단순함이 나를 복잡하게 만들었다.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나는 너와의 기억을 떠올렸고, 발걸음이 멈추면 우리 사이의 마지막 대화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그 길은 나를 위로하면서도 아프게 했다.
몇 년째 올레길을 걷고 있지만, 아직 끝내지 못한 코스들이 남아 있다. 완주를 하면 너를 완전히 보내줄 수 있을까. 아니면 이 길이 끝난다고 해서 내 안의 너도 끝나는 건 아닐까. 때로는 스스로에게 형벌을 주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너를 떠나보내겠다고 다짐했으면서도, 길 위에서 너를 붙들고 있는 나 자신이 어리석게 느껴진다.
서울로 돌아오면 다시 복잡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 안에서는 너를 잊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제주에서의 시간은 나를 또다시 너에게로 데려다놓는다. 나는 여전히 너를 떠나지 못했고, 그래서 또 제주를 찾는다.
언젠가 올레길의 마지막 코스를 완주했을 때, 나는 무엇을 얻게 될까. 길 위의 바람이 내 마음을 가볍게 해줄까. 아니면 너의 잔상은 여전히 내 안에 머물러 있을까.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다. 다만 지금 나는 또다시 제주행 비행기 티켓을 손에 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