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란 게 참 묘하다. 어느 순간 깨닫게 되면, 그 존재가 너무 뚜렷해져 오히려 불편해진다. 그러니까, 아무리 숨기고 눌러두려 해도 결국 그 사랑이 날 휘감아 오는 것 말이다. 그때가 딱 그랬다.
널 처음 만난 건, 아마 우리가 아는 것도 한 5년쯤 된 거 같으니까, 그즈음이었던 것 같다. 처음엔 널 의식하지 않으려 했지. 좋았으니까. 네가 너무 좋았으니까, 더 거리를 두려고 했던 거 같아. 사람 마음이 원래 그렇잖아. 가까워지면 더 불안해지는 것처럼. 그래서 나도 괜히 네 옆에서 무덤덤한 척,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곤 했던 것 같아.
압구정 거리에서 걷던 기억이 난다. 그날은 유난히 사람도 많고 차도 많았다. 네가 아무 말 없이 걷고 있을 때, 난 옆에서 조용히 네 무표정한 얼굴을 훔쳐보곤 했지. 그때마다 ‘이게 무슨 감정일까’ 하고 혼자만의 생각에 잠기곤 했어. 그때는 내가 너를 그렇게까지 좋아하고 있을 줄 몰랐어. 그저 네가 신경 쓰이고, 네 목소리가 들리면 귀가 더 기울어지고, 네가 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에 더 웃게 되는 정도라고 생각했지.
어느 날, 우리 둘이 우연히 단둘이 시간을 보낸 적이 있어. 강남구청역 근처였지. 아무 계획도 없었고, 그냥 우연히 만난 자리였는데, 그날은 이상하게 편안하면서도 어색했어. 점심으로 뭘 먹었는지 기억도 안 난다. 사실 먹으면서도 그게 제대로 들어갔는지 모르겠어. 식당에선 웃으며 대화했지만, 나는 긴장해서 손이 땀에 젖어 있었고, 입맛도 잃었거든. 네가 한마디 했던 게 기억난다.
“왜 그렇게 조용해?”
웃으면서 대답했지. “그냥… 피곤해서.”
하지만 속으로는 난리도 아니었어. 네 앞에선 항상 멋져 보이고 싶었거든. 그러면서도 나 자신에게 묻곤 했어. ‘내가 왜 이러지? 왜 이렇게까지 긴장하지?’
그 후로 우리는 점점 더 가까워졌어. 이상할 만큼 자연스럽게. 마치 물이 흘러가는 대로 흐르듯이, 너와 나도 그렇게 흘러갔어. 그날 이후로 매일 같이 시간을 보냈지. 강남구청역 카페 거리에서 차를 마시며, 서로의 일상 이야기를 털어놓고, 또 어느 날은 압구정 로데오에서 길을 걷기도 했고. 그런 시간이 계속되다 보니 어느새 너는 내 삶의 아주 큰 부분이 되어버렸어.
그때쯤이었을까. 내가 너를 사랑하고 있다는 걸 처음으로 제대로 의식하게 된 건. 사람 마음이 참 신기해. 사랑은 분명 좋은 감정인데, 그걸 의식하는 순간부터는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더라. 그 감정이 불편해졌어. 너무 가까워졌다는 사실이, 그리고 내가 네게 느끼는 감정이 단순한 호감 그 이상이라는 게. 솔직히 말하면, 널 사랑하면 안 된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어.
왜냐고? 글쎄, 이건 내 문제겠지. 나는 원래 이런 사랑을 두려워하는 사람이었으니까. 네가 더 소중해질수록 더 겁이 났어. 나는 네가 너무 중요해졌고, 그게 오히려 나를 조심스럽게 만들었거든. 사랑은 기쁨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무게감이기도 하니까.
네가 언젠가 묻더라.
“너 왜 자꾸 피하는 거 같아?”
그때 나는 그냥 웃으면서 대답했어.
“아니야. 그런 거.”
하지만 사실은 그때부터였어. 내가 사랑을 의식하면서 너를 멀리하고 있다는 걸 스스로 느끼기 시작한 게. 가까워질수록, 내 마음은 더 무거워졌고, 그러면서도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어. 너와의 모든 순간이 너무나도 소중했는데, 그 소중함이 오히려 나를 주저하게 만들었지.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가 참 그립다. 네 앞에서 긴장하고, 또 어쩔 줄 몰라하던 내가. 그 어색하고 불편한 순간들이 이제 와서는 다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아 있으니까. 네가 웃던 얼굴, 네가 무심히 던졌던 말들, 함께 걸었던 거리들. 그 모든 게 지금은 꿈만 같아.
하지만 나는 그때 그 마음을 억누르려고 했어. 사랑을 말하면 안 되는 것처럼. 사랑하면 안 되는 것처럼. 내가 그랬던 이유는, 아마도 너를 잃을까 두려웠기 때문이겠지. 사랑이 커질수록 더 불안해졌고, 그 불안이 나를 지배했던 거야.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그때는 그냥 솔직하게 말했어야 했을지도 몰라. ‘나, 널 사랑해’라고. 그런데 참 이상하지. 그 말을 꺼내는 게, 마치 내 마음속 무언가를 넘어서야 하는 일처럼 느껴졌거든. 사람 마음이 참 그렇다. 사랑이란 건 참 불편한 동시에 가장 큰 행복이기도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