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트오프(Night Off)
점점 좁아지는 골목을 따라 걸었다. 아니, 기어갔다고 해야 맞을까. 발이 무거웠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서 발걸음을 멈췄을 때, 골목은 이미 막혀 있었다. 벽 앞에 멈추고 나니 그제야 긴 숨을 내쉬었다.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 주저앉아, 꼬리를 둥글게 감쌌다. 누군가를 원망해 보려고 했지만, 무엇이 원망스러워야 하는지도 모르는 채 고개를 떨궜다.
외투 같은 털 위로 쌓인 먼지를 한 번 털어냈다. 털어내면서도 나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 나왔다. 이 먼지가 날 따라다녔던 시간의 무게라면, 오늘 하루는 참 무겁게도 흘러갔구나 싶었다. 가끔은 이 모든 게 끝났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어디든 따뜻한 곳이었으면 좋겠다고, 그러니까 눈을 감고 잠시 누울 수만 있는 곳이었으면 좋겠다고.
나는 조심스럽게 몸을 벽에 기댔다. 언제부터였을까. 도시의 골목이 나의 집이 되었다. 하지만 이곳은 ‘집’이라고 부를 수 없는 곳이었다. 나를 기다리는 이도, 나를 반겨줄 이도 없으니. 그저 자리를 옮겨 다닐 뿐이었다. 사람들은 나를 불쌍하게 바라보곤 했지만, 동시에 나를 밀어냈다. “가! 가버려!” 하며 쫓겨나길 반복했다. 어디에 있어도 나는 불편한 존재였다.
작은 골목에는 사람들의 발걸음도, 차도 없었다. 나에게 익숙한 그런 ‘아무도 없는’ 시간이었다. 날은 저물고 있었고 어둠이 차근차근 골목을 채워나가고 있었다. 아무도 나를 찾지 않을 테니, 잠시만 누워도 괜찮지 않을까? 이대로 잠들어도 아무도 나를 깨우지 않을 것이다.
어릴 적에는 그래도 꿈이 있었다. 아늑한 곳에서 따뜻한 햇볕을 받으며, 사람의 손길이 전해주는 온기를 느껴보고 싶었다. 그런 꿈은 너무 오래전이라 이제는 희미해져 버렸다. 눈앞에 펼쳐진 것은 버려진 골목과 차가운 시멘트 바닥뿐. 나는 꿈속에라도 잠시 들어가 보고 싶었다. 그곳에서는 못다 한 악수도, 건배도 할 수 있을까. 그렇게 꿈속에서라도 사람들과 다시 만난다면 나는 웃을 수 있을까. “이제 와서 뭘 어쩌겠어.” 그렇게 나 자신에게 중얼거리며 나는 슬쩍 고개를 숙였다.
그날따라 지친 몸은 더욱 무거웠다. 발끝이 저리도록 오랜 시간 헤매었으니 당연했다. 하지만 이제는 무리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나를 기다리는 건 아무도 없으니까. 나는 그 생각이 가끔 위로처럼 느껴졌다. 아무도 나를 기다리지 않으니, 나 또한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는 것. 기댈 수 있는 벽이 있는 이 순간만큼은, 잠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싶었다.
나는 몸을 웅크리고 눈을 감았다. 골목이 나를 품어주는 것 같았다. 차갑지만 조용했다. 그 작은 틈 사이로 누군가의 말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아니면 꿈이 시작된 걸까. 떠난 친구들의 얼굴이 하나둘 떠올랐다. 어디선가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나를 떠난 그들처럼, 나도 따뜻한 곳으로 갈 수 있을까.
“조금만… 조금만 누워 있으면 안 될까.”
몸을 감싸 안으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이대로 잠들 수만 있다면, 그 꿈속에서는 모든 게 조금은 따뜻하리라 믿었다. 더는 바랄 것도 없었다. 단지, 조금만 쉬고 싶을 뿐이었다. 눈을 감고 나니 그동안 꾹꾹 눌러왔던 피곤함이 온몸을 덮었다. 귀에 들리던 도시의 소음도, 골목의 작은 울림도 희미해져 갔다.
‘이곳이 마지막이 되어도 괜찮을까?’
스스로에게 묻는 마지막 생각을 안고 나는 꿈속으로 스르르 빠져들었다. 오늘만큼은, 조금 쉬고 올 수 있을 것 같았다. 따뜻한 햇볕이 내려오는 곳에서, 나를 기다리는 누군가를 만날 수 있기를 바라며.
추운 겨울 이번겨울도 그들이 잘 버텨주길..(길고양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