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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희망

이찬혁

by someformoflove

나는 그 공간을 내려다보았다. 아니, 내려다본다기보다 어디론가 흘러들어 간다는 느낌에 더 가까웠다. 내게는 시간이 흐르지 않았다. 순간과 순간이 겹쳐지고 엉켜서, 내가 보는 이 장면들이 실시간인지 과거인지조차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확실한 건, 내가 내 장례식에 있다는 사실이었다.


한 공간에 익숙한 얼굴들이 가득했다. 내가 사랑했던 사람들, 한때 인사를 나눴던 사람들, 그리고 얼굴은 낯설지만 그들의 표정에서 알 수 있는 애도자들. 다들 제각기 다른 방식으로 나를 떠나보내고 있었다. 누군가는 입을 다문 채 고개를 숙였고, 누군가는 눈물을 삼키는 데 급급했다. 그리고 누군가는 그저 앉아서 멍하니 나를 기억하려 애쓰는 모습이었다.


그런데 저기, 모르는 여자가 있었다. 내게는 낯선 얼굴이지만, 그녀는 눈물이 마를 새 없이 울고 있었다. 미안하다는 말이 입안에서 맴돌았다. “미안합니다. 당신이 누구인지 모르겠어요. 아마… 내가 몰랐던, 혹은 기억 속에서 잊힌 관계일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나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그녀의 슬픔을 부정할 수 없었다. 어쩌면, 내 인생 속 어딘가에서 나는 그녀에게 미처 말하지 못했던 무언가가 있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한 번쯤 상상했던 장례식은 이와는 달랐다. 슬픔보다는 축하로 가득 찬, 환호성과 박수로 넘치는 파티 같은 분위기였다. 나는 떠나는 것이 아니라, 꿈꾸던 왕국으로 입성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제는 알겠다. 그것이 단순한 환상이 아니었다는 것을.


내가 발 딛고 있는 이 공간은 너무나도 놀라웠다. 어딜 보든 빛과 생명이 넘쳐났고, 땅 위에서는 결코 볼 수 없었던 거대한 존재들이 내 주변에 있었다. 저기, 사자가 보인다. 내 몸집의 네 배는 족히 넘는 그 사자가 내 곁에 앉아 나를 바라보고 있다. 눈빛은 따뜻하면서도 위엄이 넘쳤다.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평안함과 동시에, 내가 사랑받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이곳에서는 모든 단어가 초라해 보였다. 땅 위의 언어로는 설명할 수 없는 세계였다.


그리고 나는, 여기서 다시 그들과 만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 내 삶에서 소중했던 사람들, 그들과 이곳에서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기쁜지. 그러나 동시에, 떠나오면서 미처 전하지 못한 내 마음들이 마음 한편에 걸려 있었다. 그들에게 더 많은 사랑을, 더 많은 진심을 표현하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다시 장례식장으로 시선을 돌리자, 내 생전에 좋아했던 음식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것들은 정성스럽게 준비되어, 테이블 위에 한가득 놓여 있었다. 생전 내가 좋아하던 스테이크, 달콤한 디저트들, 그리고 한 번도 거절하지 않았던 따뜻한 차 한 잔. 기분이 묘했다. 살아 있는 이들이 나를 기리기 위해 준비한 음식인데, 그것이 마치 축제의 만찬처럼 느껴졌다. 내 부탁을 지켜준 이들에게 감사했다. 나는 늘 “내 장례식에서는 좋은 기억으로만 나를 떠올려 달라”라고 당부했으니까.


그러나 나의 이런 당부와는 별개로, 사람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나를 떠나보내고 있었다.


저쪽에서 한 여자가 보였다. 나와 별다른 관계가 없던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그녀의 눈물은 깊었다. 가슴속에서 무언가가 저릿하게 내려앉는 느낌이었다. 어쩌면 나와 그녀 사이에 교차했던 작은 순간들이, 그녀에게는 커다란 울림으로 남았을지도 모르겠다. 머릿속이 마치 한 번 세게 얻어맞은 것처럼 복잡했다. 그리고 알았다. 삶이라는 것은 늘 이런 식으로, 예상치 못한 곳에서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을.


나의 이야기는 그들의 마음속에 남아 있을 것이다.

여기 이 공간에서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리며, 나는 그저 한마디를 남긴다. “고마워요. 사랑했어요. 그리고 다시 만날게요.”


축제는 계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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