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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이 닿지 않는 곳에서

by someformoflove

물가에 사는 것이 좋았다.

멀리서 바라보는 일.

잔잔한 파도를 눈으로 좇고,

어디선가 부서지는 소리를 듣는 일.

그건 늘 적당했고, 그 적당함이 내겐 평온이었다.


어느 날은 그 적당함이 조금 지루하게 느껴졌다.

조금 더 가까이 가보고 싶었다.

흠뻑 젖고 싶기도 했다.

그 사람과 함께 바다에 들어갔다.

발이 닿는 얕은 곳,

두 사람은 물을 튀기며 장난을 쳤고

가끔은 서로에게 웃음을 던지며

모래알과 물방울로 마음을 풀었다.

물에서 나온 우리는

불을 피웠고, 타닥이는 소리에 몸을 기댔다.

물에 젖은 몸을 불 앞에 말리면서

우리는 사랑이 따뜻하다는 걸 믿었다.


그러다 어느 날,

서로 동시에 바다 깊은 곳을 바라보았다.

좀 더 안쪽으로, 좀 더 깊은 감정의 언저리까지

들어가 보고 싶다는 마음이

거의 동시에 우리를 움직였다.


처음엔 괜찮았다.

숨은 충분했고, 마음은 꽤 단단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바닥이 느껴지지 않았다.

발이 닿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고

그때부터 몸이 흔들렸다.

나는 수영을 할 줄 몰랐다.

감정을 밀어내거나 버틸 줄 몰랐다.

깊은 곳에 들어선 이후

내 마음은 계속 아래로 가라앉았다.


그 사람은 수영을 할 줄 알았다.

갈팡질팡하던 나를 붙잡아

간신히 다시 물가로 이끌어냈다.

그날 이후

나는 다시는 바다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물이 무서웠다.

감정이 무서웠다.

사랑이, 그 끝을 보게 될까 봐 두려웠다.


그 사람은 물을 좋아했다.

물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에게

물가에서 머무는 나는 답답했을 것이다.

결국 그 사람은 떠났다.

조용히, 불도 꺼지지 않은 채

언제 나갔는지도 모르게

그저 어느 순간 사라졌다.


나는 남았다.

불 앞에서.

불은 따뜻했지만 어쩐지 외로웠다.

그 온기는 오래된 기억처럼 잔잔했고

무너질 만큼은 아니었지만

당장 일어설 힘도 되지 못했다.

그렇게,

온기 앞에 앉아 멍하니 시간을 흘려보냈다.


많은 계절이 지났다.

불은 잦아들었다가도 다시 피워졌고

내 몸은 어느새 그 열기에 익숙해졌다.

때로는 잠깐씩 물가로 걸어가 보기도 했다.

발끝에 닿는 물이 더 이상 두렵지 않다는 걸

깨달았을 때쯤,

다시 바다를 보고 싶다는 마음이 스며들었다.


하지만 이제는 알고 있다.

깊은 곳에는 언제나 발이 닿지 않는 순간이 있고

사랑은 가끔 그곳까지 우리를 데려간다는 걸.

그래도 나는 예전처럼 물을 미워하지 않는다.

그건 단지 내가 감당할 수 없던 시절의 깊이였을 뿐,

바다 자체가 나빴던 건 아니니까.


사랑은 결국 그런 것이었다.

물을 좋아하는 사람과

물을 무서워하는 사람 사이에서

잠시 함께 젖었다가,

다시 각자의 자리로 돌아오는 일.


나는 아직도

불 앞에 자주 앉아 있다.

그러면서 가끔,

물가 쪽을 바라본다.

이번엔 조금 더 천천히,

한 발씩 내딛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 때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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