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나는 무심했다. 사랑은 내게 너무 익숙해져 있었고, 그 무게를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그녀가 어떤 말을 하든, 어떤 표정을 짓든, 나는 그저 아무렇지 않게 흘려보냈다. 우리는 오랫동안 함께했고, 그 시간이 나를 너무나 안일하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사랑도, 그 관계도 영원할 거라고 믿었던 나에게, 그날의 대화는 그저 일상의 연장선에 불과했다.
“그냥 그렇게 하면 되겠네.”
지극히 무심한 말이었다. 상대의 감정을 헤아리지 않은, 무성의한 한 마디였다. 그녀는 그 말에 잠시 멈칫했지만, 나는 눈치채지 못 했다. 아무것도 아닌 듯 넘겼고, 대수롭지 않게 대화를 끝냈다. 그날 이후로도 별다른 후회나 미안함은 없었다. 사랑이란 늘 옆에 있는 것이라 생각했기에, 그런 작은 상처가 우리의 관계에 큰 영향을 미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순간이 자꾸 떠오르기 시작했다. 내가 던진 말, 그녀의 잠시 머뭇거린 표정, 이어진 침묵. 모든 게 뚜렷해질수록, 그때의 나를 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왜 나는 그렇게 무심했을까? 왜 그녀의 마음을 제대로 보지 않았을까? 그녀는 아마도 나의 그 한 마디에 상처를 입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상처를 외면한 채 일상으로 돌아갔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그 무심함이 우리의 사랑을 조금씩 갉아먹고 있었다. 그날의 나를 이해하지 못한 채, 나는 자꾸만 후회 속에서 길을 잃었다. ‘더 따뜻하게 대할걸.’ ‘왜 그때는 더 신경 쓰지 않았을까?’ 내 머릿속을 떠도는 질문들이 나를 계속 괴롭혔다. 아무렇지 않게 흘려보낸 그 순간들이, 지금의 나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작은 말 한마디가 우리의 관계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지, 그때는 몰랐다.
하지만 후회만으로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내가 그녀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그리고 여전히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도 이제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 그때의 나는 무심했고, 그 무심함이 오늘의 나를 만들었다. 아무리 그 순간을 되돌리고 싶어도, 그때의 나는 변하지 않는다.
나는 그때의 나를 이해하기로 했다. 후회로 가득한 기억 속에서 나를 계속 괴롭히기보다는, 이제는 받아들이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때의 무심함도 결국 나였다. 내가 너무 사랑을 당연하게 여겼고, 그만큼 마음을 덜 썼던 나의 모습도 나였다. 그녀를 향한 내 사랑이 변한 적은 없었지만, 그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이 너무 서툴렀던 것이다.
후회는 이미 충분히 했다. 이제는 그 후회를 더 이상 끌어안고 살고 싶지 않다. 지나간 일들은 결국 내가 만든 것이고, 그것을 미워해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걸 이제는 안다. 그때의 나도, 지금의 나도, 결국 나 자신일 뿐이다. 내가 과거에 저지른 실수를 계속 곱씹는 것은 결국 스스로를 더 깊은 상처로 몰아넣는 일일 뿐이다.
그날의 나를 이해하기로 마음먹은 순간, 비로소 조금은 자유로워지는 기분이었다. 사랑은 완벽할 수 없다. 때론 무심하게 지나가는 날도 있고, 그로 인해 상처받는 순간도 있다. 하지만 그 모든 과정이 결국 나를 더 성숙하게 만든다는 것을 이제는 받아들이려고 한다.
그녀는 떠났지만, 내 마음속에서 그녀를 놓지 못한 건 결국 내가 나 자신을 붙잡고 있었던 것이었다. 나는 그녀가 아니라, 그때의 나를 사랑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이제는 그때의 나를 조금은 이해하고, 앞으로의 내가 더 나은 사랑을 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