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껏 사랑했더니 남는 게 하나도 없었다. 적어도 그때는 그렇게 느꼈다. 사랑이 끝난 후, 빈손으로 남겨진 나는 그 모든 시간이 헛된 것처럼 느껴졌다. 마음을 다 주었고, 그 마음은 닳아 없어지기까지 했으니 당연히 상실감이 컸다. 그때의 나는 그렇게, 아무것도 남지 않은 채로 홀로 남겨졌다고 믿었다.
사랑이 끝난 건 한여름이었다. 함께 갔던 작은 카페에서 우리는 마지막 대화를 나눴다. 그날도 평소처럼 뜨거운 햇빛이 창문을 가득 채우고 있었고, 에어컨 바람이 우리를 겨우 식혀주고 있었다. 그때 나는 우리의 이별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너무 많은 시간을 공유했고, 너무 많은 감정을 쏟아냈기 때문에 더 이상 남은 것이 없다고 느꼈다. 그동안의 사랑이 마치 바닥까지 긁어 내린 것 같았고, 나는 그 안에서 지쳤다. 빈 컵을 보는 듯한 허무함이었다.
이별 후 나는 한동안 그 사랑을 떠올리기조차 싫었다. 그 많은 시간과 노력, 감정이 무색해진 것 같았다. 마음을 다 주면 결국엔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는 결론만 남은 것 같았고, 그렇게 잔뜩 상처만 받은 채 하루하루를 살아갔다. 나름대로 내 방식으로 사랑을 했다. 그러나 결국, 나는 무엇도 얻지 못한 채 그 사랑에서 빠져나왔다. 그 사실이 나를 더 힘들게 했다.
시간이 흘러 나도 어른이라는 존재가 되었을 무렵, 다시 그때의 사랑을 떠올렸다. 사실, 그때도 여전히 나는 사랑이라는 감정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제대로 알지 못했지만, 이제는 그 사랑이 나를 어떻게 만들었는지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었다. 그 사랑이 끝나고 나서야 나는 알았다. 남는 것이 없다고 여겼던 그 시간들이, 사실은 나에게 많은 것을 남겼다는 사실을.
가끔 친구들과 술을 마시다가도 그 이야기가 나오곤 했다. 모두 각자의 첫사랑을 말할 때 나는 조금 뒤로 물러나 있었다. 그 사랑에 대한 기억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첫사랑은 언제나 아프고, 그 아픔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 아련하게 다가온다고들 했다. 내 첫사랑 역시 그랬다. 그때의 나는 너무나 뜨겁게, 마치 전부를 쏟아내는 것처럼 사랑했다. 그 사람을 위해 시간을 쓰고, 에너지를 쏟고, 심지어는 내 자신을 깎아내면서까지 그 관계를 유지하려 애썼다.
한 번은, 그 사람을 위해 기차를 타고 몇 시간을 달렸던 적이 있다. 서프라이즈를 좋아했던 나는 그녀에게 말도 없이 무작정 찾아갔다. 낯선 도시, 낯선 풍경 속에서 그녀를 만났을 때, 그 미소 하나로 그 긴 시간이 보상받는 듯했다. 하지만 나중에 생각해 보니, 그건 오로지 나 혼자만의 열정이었을지도 모른다. 혼자 설레고, 혼자 기대하고, 혼자 그 모든 에너지를 쏟아내며 사랑을 이어가고 있었던 거다.
그리고 또 한 번은, 우리가 함께 꿈꾸던 여행을 떠났을 때였다. 그때 우리는 바닷가에 앉아 파도가 치는 소리를 들으며 밤새 이야기를 나눴다. 바람은 차가웠고, 모래는 축축했지만 그 순간만큼은 전혀 상관없었다. 그때 나는 우리가 영원할 거라 믿었다. 함께 있을 때만큼은 모든 것이 완벽해 보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틈이 생겼고, 그 틈은 조금씩 넓어져 결국엔 우리를 갈라놓았다. 사랑은 그렇게 흘러갔다. 마치 밀물처럼, 어느새 물러가버렸다.
그 후로 나는 사랑을 쉽게 믿지 않았다. 모든 걸 주면 결국엔 남는 게 없다는 그 결론이 나를 붙잡고 있었다. 내가 쏟아부은 시간과 에너지가 결국 나를 채우지 못했기에, 다음에는 조심하리라 생각했다. 그래서 한동안은 누구를 사랑하는 일이 두려웠다. 사랑이란 감정이 결국엔 상처로 돌아오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나는, 그때의 사랑을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예전에는 남는 것이 하나도 없다고 느꼈지만, 이제는 알 것 같다. 그 사랑은 나에게 많은 것을 남겼다는 것을.
그 사랑은 살면서 단 한 번, 마음껏 사랑할 수 있었던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은 그 자체로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