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동네 아파트단지 옆 상가 2층에 자리한 그곳은 주간보호센터와 단기보호센터를 겸하고 있었다.
나는 센터장 대신, 대표라는 명함을 쓰는 그의 아내 P씨와 면접을 진행했다.
P대표의 첫인상은 매우 편안하고 자상한 느낌이었다.
말투도 조곤조곤하고 사회복지사업에 있어 돈보다는 사명감 혹은 의미...를 더 중시하는 사람이라는 느낌 또한 주었다. 특히 그들이 운영하는 사회복지사업체는 그뿐아니라, 다른 도시에서 운영되고 있는 요양원도 있다고 설명했다. 남편은 A주간보호센터장이고 아내는 총괄대표로서 요양원에도 오가며 관리하는 것이다.
A주간보호센터는 약 30여 명의 장기요양등급을 받은 노인들이 이용중이며, 모두 가족같은 분위기로 운영되고 있다고 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끝에 결론적으로 대표는 나를 요양보호사로 채용하겠다고 선뜻 말했다. 얼마전에 채용된 한 사람이 조만간 그만둘 것 같다며, 그 후임으로 들어올 수 있다는 것이다.
단, 자격증이 있어야 일을 할 수 있으니 그때까지는 기다려주겠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첫 인상이 좋고 성실하게 일을 잘 할 것같아 보인다'고 나에게 말했다.
(아, 그때는 2월말이었고 요양보호사 시험결과는 3월8일에야 나오게 되어 있었다. 그러니 합격여부도 모른채 지원을 한 셈이다. 물론 가채점결과, 나는 이미 충분한 합격점을 받을 것으로 예상되었기에 면접에 응한 것이다.)
3~4월경 언제든 자격증이 나오는 대로 연락을 해주면 그때부터 바로 일을 하도록 하겠다고 믿음직하게 약속해주었다.
기뻤다. 이렇게 쉽게...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그토록 선선히 채용되는 것이 어리둥절하기도 당황스럽기도 하였다.
아무튼 나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은 앉을 자리를 예약해둔 것이라고 생각하니 안심이 되었다.
그곳을 나서기 전, 대표는 사무실과 별도의 옆 공간에서 운영되는 주간보호센터 시설을 둘러보도록 해주었다. 잠금장치가 설치된 문을 열고 들어서자, 뜻밖에 마주친 첫풍경은 조금 실망스러웠다.
오후 2시가 넘은 시각이었는데 조용하고 어둑한 실내에서는, 이용자인 어르신들 대부분이 여기저기 놓인 간이 침대에 누워 휴식을 취하거나 소파에 기대앉아 졸고 있는 상황이었다.
다른 한쪽 공간에서는 요양보호사 몇몇 분들이 머물고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 나는 어쩐지 실망스러워하는 스스로를 깨달았다.
내가 아는, 내가 실습을 했던 주간보호센터는 조금더 깔끔하고 밝고 쾌적한 느낌을 주는 장소였다. 쉽게 말해 어린이들이 다니는 유치원만큼이나, 이제는 아이가 되어버린 노인들이 다니는 노치원 역시 가능한한 산뜻하고 단정한 공간이었다. 그런데, A주간보호센터는 그와는 좀 거리가 멀게 느껴졌다. 이를테면, 제대로 관리하지 않아 좀 낡고 오래되고 허름한...뭐 그런, 한마디로 쾌적한 느낌은 어디에도 없는, 늙고 야위어 지칠대로 지친 노구老軀들이 말할 수없이 초라하고 서글픈 표정의 사물처럼 힘겹게 칙칙한 공간을 채우고 있을 뿐이었다.
특히, 야위고 힘겨운 모습의 어른신들이 비좁은 1인용 간이침대에 제각각 몹시 불편한 자세로 누워 쪽잠을 청하고 있는 상황이 낯설었다. 나는 좀 궁금했다. 왜 저토록 불편하고 낙상방지장치도 없이 위태로운 간이침대에 노인들이 누워있어야 하는지, 조금더 제대로 된 수면실을 설치할 수는 없었는지, 그러한 조치가 의아하게 생각되었다.
내가 물었다, 저런 간이침대에서 주무시도록 하는 것은 좀 위험하지 않을까요...낙상위험도 있고...
그러자 대표는 말했다, 각자 침대를 사용하는 것을 더 좋아하세요.
이용자가 좋다니까... 그게 맞는 것일까.
제3자인 나, 아니 부모를 맡긴 자녀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자니 더욱 허술하고 남루한 시설이 마음에 걸렸다. 주간보호센터를 이용하는 어머니를 가진 딸로서, 나라면 가장 깔끔하고 쾌적하며 노인들을 위하는 시설이기를 바랄 것이다. 그런데, 그곳은 언뜻 들여다 보자면 그저 오갈데 없는 노인들을 '단지' 데려다 방치해놓은 것처럼 느껴졌다.
주간보호센터의 일과를 대충 가늠하자면, 오전 9시무렵 센터에 도착하여 오전중 한가지 정도 인지프로그램을 진행하고, 11시반에서 12사이에 시작하여 한시간 정도 어르신들의 점심시간이 이어진다. 그후에는 1시간정도 각자 자유시간(=휴식, 담소나누기, 화투치기 등 여가활동)을 누리고 2~3,4시까지는 오후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오후에는 대개 노래강사를 초빙하여 노래교실을 열거나 인지활동 또는 신체활동프로그램, 혹은 하다 못해 영화VOD를 틀어주거나 텔레비전 시청 등의 시간을 갖는 것이다. 물론, 어르신들의 활력 특성상 모든 일정이 시간에 맞춰 딱딱 떨어지게 일사불란하게 진행되지는 않는다.
프로그램진행 중에도 몸이 아프거나 힘들어하는 경우에는 따로 수면실이나 물리치료실에 가서 누워 휴식을 취하거나 물리치료를 받거나 하는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요양보호사나 사회복지사의 도움을 받아 병원에 다녀오기도하고. 그렇다고해도 일단 주간보호센터는 초기치매단계인 인지등급부터 4~5등급까지, 즉 완전히 혼자 자유롭게 활동하기는 어렵더라도 요양보호사 등의 도움을 받아 거동이 가능한 어르신들이다. 그러니까 충분히 의사소통이 가능한 초기치매환자와 일부 독립적인 활동이 어려운 노인들은 주간보호센터의 신체적 정신적 잔존능력을 유지하기 위해 일정한 프로그램들에 동참하고 누릴 자격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아무런 의욕도 활력도 없는 어둑한 분위기 속에 쓸쓸한 자세로 일괄취침을 하는 광경은 좀 뜻밖이었다.
프로그램운영계획과 실행은 사회복지사가 하는 것으로 아는데, 사회복지사는 지금 무엇을 하느라 저렇게 시간을 때우며 노인들을 방치하는 것인지, 그게 A주간보호센터의 자연스러운 일상인지 어쩐지 모르겠으나, P대표는 '지금은 점심시간이라, 어르신들이 쉬시는 중이다'고 부연설명을 했다.
만약, 휴식시간이 좀더 지연되는 상황이라 하더라도 예정된 오후 프로그램이 있다면 그를 위한 준비작업이라도 이루어지고 있었어야 한다고 나는 본다.
집으로 돌아온 뒤로도 나는 마음이 점점 불편해지는 것을 느꼈다.
급한 마음에 일자리를 예약해 두긴 했으나 어쩐지 안심이 되지 않았다. 마음씨 좋고 사명감있는 자애로운 대표의 화끈한 채용 약속에도 불구하고, 나는 자꾸만 A주간보호센터가 시시하게만 느껴졌다.
아무래도 그곳이 내 취업의 최종 목적지가 되어서는 안될 것만 같았다.
아직 시간이 많은데 그 자리에 안주할 수는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일단 계속 사회복지사로서의 취업가능성을 타진해보리라, 끝까지 더 열심히 나의 목표를 위해 달려보리라 마음먹었다. 그로부터 나는 쉬지않고 날마다 워크넷을 뒤적였다.
수많은 구인공고가 올라온다 해서 무조건 내가 이력서를 낼 수는 없었다. 그들의 조건, 나의 조건이어느정도 일치되어야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러던중 집 근처 B주간보호센터에서 구인 공고가 올라왔다. 이번에도 요양보호사구인공고였다.
그곳은 딱 하나 집에서 걸어가도 5-10분이면 되는 가까운 곳이라는 이유로 전화를 걸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