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사로 취업되기만 한다면 서투른 열정과 출렁이는 자신감에 약간의 응원을 지원받아 얼마든지 잘, 충분히 해낼 수 있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이미 한번 내보았던 사회복지사 지원 이력서가 나의 의도와 걸맞는 결과를 전혀 회신하지 못했다는 사실에서 실은 적잖이 자존감의 손상을 입은 것도 맞다.
그 순간, 나는 어, 안되나? 역시 안 되는 거였나... 하는 의기소침한 감정이 스멀스멀 고개를 쳐드는 것도 진실된 감정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그시점에서 다른 선택지가 없는 것도 분명하다.
2년여 시간동안 공들인 사회복지분야 자격증을 이대로 이렇게 허망하게 불살라버릴 수는 없었다.
그로부터 나는 거의 매일 워크넷을 뒤적이며 이력서/자소서를 날리고 고치고 날리기를 반복했다.
어떤 공고는 워크넷에 구인공고를 내고도 워크넷으로는 지원서를 받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B주간보호센터가 그런 경우였였다. 반면, 요양원C는 워크넷 지원이 가능했으나, 두 곳 모두 사회복지사가 아닌 요양보호사를 찾는 공고라는게 문제였다.
나는 고민했다.
내가 일자리를 구하는 조건은 단순하다.
집에서 가능하면 30분 이내로 가까울 것, 사회복지사 업무일 것, 그리고 이왕이면 좀더 청결하고 깔끔한 센터일 것.
B주간보호센터는 집에서 걸어서도 5-10분 거리였고 요양원C는 승용차로 신호등 없는 산업도로를 70-80킬로미터 속도로 쉼없이 달려 25분정도...
일단 B주간보호센터에 '요양보호사 자격증 아직 없는데 면접이라도 볼 수 있느냐'고 연락했다.
요양원C에도 워크넷으로 이력서와 자소서를 보냈는데, '요양보호사 구인공고인 줄 알지만, 나는 사회복지사 직을 찾고 있으니 나중에라도 사회복지사가 필요하면 면접기회를 주길 바란다'는 당부의 말을 덧붙여 송부했다.
한편으로는 스스로도 이렇게까지나, 하는 생각에 좀 무모해 보이는 짓이 아닐까도 싶었으나, 최선을 다해 할만큼은 해보리라는 심정이었다. 특히 요양원은 홈페이지 사진으로 면면을 대략 살펴볼 수 있었는데, 나름대로 깨끗하고 규모있게 잘 운영되고 있는 듯한 인상을 받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두 곳 모두 바로 면접을 볼 수 있었다.
먼저 면접을 본 것은 B주간보호센터였다.
사회복지사도 아닌 요양보호사에 지원한 이유는 첫째, 단지 집에서 가까워서였다. 그리고 아직 요양보호사자격증은 없으니 그로인해 면접에서 떨어지더라도 상관없을 뿐더러, 센터장이 나를 면접보듯, 그곳이 어떤 센터인지 센터장은 어떤 사람인지, 내가 일할 분야의 전반적인 요구사항 등에 대해 사전에 나 또한 그 센터를 면접보겠다는 생각으로 연락을 했다.
문자로 면접가능여부를 묻자 곧바로 만나자는 답이 왔다.
나는 들뜬 심정으로 이력서를 챙겨 B주간보호센터로 갔다. 걸어서 늘 오가는 거리의 도로변에 위치하여, 사실은 이미 그 앞을 지나다니며 그 센터의 존재를 알고는 있었다.
센터장을 만났다. 40~50대의 그는(전직씨름선수인 박광덕 혹은 영화배우 마동석 이미지가 강한) 태양인스타일 외형을 가진 남성이었다. 체격만큼 목소리도 크고 화통한 느낌을 주는 센터장은 나를 보자마자 노골적으로 호감을 나타냈다.
내 이력서의 학력과 경력 등을 훑어보며 질문을 이어갔다.
생일이 저와 같은 날이네요, 12월 6일. 굉장히 반갑습니다!
나는 뜻밖이었으나 뭐라도 공통점이 있다니 일단은 다행스러운 첫느낌이었다.
사회복지사 자격도 있으시네요? 그런데 왜 사회복지사 대신 요양보호사를 하시려고요?
원래는 사회복지사로 일하고 싶은데, 몇군데 지원한 바로는 연락이 없고 어쩌면 쉽지 않을 것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요양보호사 일에도 관심있어서 일단 연락드렸습니다.
그는 내 대답에 고개를 끄덕이더니, 내 나이가 사회복지사에 취업되기는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보통 30-40대가 가장 많고, 몇년전까지와도 상황이 달라져서 해마다 대학에서 사회복지학과를 통해 쏟아져나오는 젊은 사회복지사 자격자가 넘쳐나는 상황이라, 굳이 나이 많고 경력도 없는 사람을 쓸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사회복지사의 업무 자체가 서류작업이 많은데다, 나이많고 경력없는 사람은 젊은 사람들처럼 적응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왜 앞서 다니던 생산직에서는 2년만에 그만두었냐고 다시 물었다.
더팩토리_D에서의 퇴사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나는 그에 관해 간단히 설명했다.
그 사회적기업에서 나는 가능하면 오래 일하고 싶었으나 거의 내쫒기듯 퇴사를 하게 되었고, 그나마 최소한 2년을 채우겠다는 나름의 기준을 세우고 이를 악물고 버티었다고.
그는 나의 답변에 더욱 호감을 보였다.
그렇게 한곳에서 이를 악물고 버틸만큼 끈기와 근성이 있다는 얘긴데, 저는 그런 사람을 찾습니다. 더더욱 선생님을 꼭 채용해서 같이 일하고 싶은데요! 하, 그런데 지원하신 요양보호사는 자격증이 아직 없으니 당장은 채용할 수가 없을 것 같고...한번 방법을 찾아보죠!
그때, 내가 용감하게 이렇게 제안 했다.
그렇다면, 혹시 저를 사회복지사로 쓰실 생각은 없으신가요? 제가 사회복지사 업무에 충실하기 위해 ITQ과정을 통해 엑셀프로그램도 익히고 해서 시켜만 주신다면 부족한 면은 얼마든지 배워가면서라도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러니 일단 센터장님께서 저의 가능성과 능력을 한번 믿고 사회복지사 업무를 맡겨서 지켜보시다가 도무지 봐줄 수 없을 정도로 일을 못한다 싶으면, 그때가서 요양보호사로 업무를 변경시키시면 안될까요??
나의 제안에 센터장은 껄껄 웃었다.
순전히 나의 이익만을 위한 뜻밖의 제안인데도 그는 재미있다는 듯, 더욱 호감을 보이며 엑셀같은 거 사실 그리 어렵지도 않고 가르쳐주면 배워서 하면되는거죠, 하면서 그러자고 답을 하는 것이다.
오, 왠일?? 나는 속으로 깜짝 놀라고 다소 안심하기도 했다.
그때, 그가 잠시 고민스레 말했다.
안 그래도, 지금 있는 사회복지사가 3월말에 그만둘 예정이니, 그전까지 3월 한달정도는 요양보호사로 일단 일을 하시고, 4월1일부터 사회복지사로 일하시도록 하죠!
놀라운 그 제안에 내가 말했다.
아, 그런데 제가 요양보호사 자격증은 아직 없는데, 무자격상태로는 일하면 안되는 걸로 아는데요...? 자격증이 3월중으로 나올 것 같긴 한데 정확한 시기를 몰라서요.(당시에는 자격증이 3월중에 나오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래서 요양보호사 일자리 면접도 보았던 것이나, 실제로는 4월 13일에야 손에 쥐었다.)
그러자 그가 또 말했다.
그러면 내일 당장 공단에 알아보겠습니다. 요보사 자격증이 없어도 향후 취업예정인 곳에서는 일해도 되는지, 만약 그렇게 된다면 다음 주부터 그렇게, 요보사로 3월에는 일하시다가 4월1일부터 사회복지사로 일하시도록 하죠! 공단에 알아보고 바로 연락드리겠습니다.
아 네, 감사합니다!
면접은 훈훈한 분위기에서 시원시원하게 끝났다. 아직 실업급여수급기간이 남아 있어서 조금 아깝기는 하지만 잘 되면 그렇게 하는 것도 방법이 될 것만 같았다.
센터장이 호탕한 성격이고 나를 무척 호의적으로 바라보아 더욱 유리할 것같은 생각도 들었으나, 마음 한편에서는 약간 부담스러운 점도 없지 않았다...
나는 가끔 내게 너무 관대하고 호의적인 사람이 두렵다.
나는 그런 사람을 만난 적이 있다. 더팩토리_D의 여사장G와의 경험에서 얻은 트라우마도 그 중 하나이다.
호탕한 첫만남에서 전면적으로 나에게 호감을 표현하고 그 자리에서 채용을 결정하고 무절제하게 나라는 존재를 지지하는 것같다가도 점차 시간이 흘러 자신의 마음이 변하거나 내가 자기 마음에 들지 않게 하거나 혹은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것 같으면 완전히 돌변하여 정반대의 태도를 보이는 것이다.
물론 내게 나의 첫인상만으로 관대하고 호의를 베푸는 이들이 모두 다 그렇게 돌변한다고 단언할수는 없을것이다.
그럼에도. 그와의 면접이 끝나갈 즈음,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는길에, 다시 하루이틀이 지나는 동안, 알 수 없는 불편한 심정이 커져가는 것을 느꼈다.
내가 아직 절실함이 덜 한 것일까, 박광덕과 마동석을 꼭 닮은 듯한 외모와 다혈질적인 호탕함과 전면적인 호의를 표현하던B센터장이 점점 부담스럽게 다가왔다.
그러면서, 시간이 갈수록 어쩐지 B주간보호센터에서는 일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굳혀가게 되었다.
그러니까 나역시 B주간보호센터장에 대해 면접을 한 결과, 마음속으로 '함께 일하기 어려울 것 같다'는 불합격통지서를 작성하기에 이른 것이다.
그러므로, 약속대로 공단에 알아본 내용을 알려 주러 전화를 해올 경우, 결과에 상관없이 나는 내가 작성한 면접 통지서를 그에게 읽어주어야겠다고 결심했다.
바로 다음날, B주간보호센터장이 한껏 들뜨고 기대에 찬 목소리로 전화를 해왔다.
선생님, 우리 요양보호사 한 분이 갑자기 오늘 발을 다쳤어요! 그래서 당장 내일부터 일해주세요. 이번달은 요양보호사로 일하시고, 4월부터는 사회복지사로 근무하시죠!
알겠습니다! 바로 내일 출근할게요!할 것이라고 한껏 기대에 찼던 그에게,
나는 결국 취업포기를 통보했다.
센터장님, 죄송합니다. 제가 여러가지로 이번 달까지는 일을 시작할 수 없을 것같습니다.
나의 대답에, 센터장은 크게 실망한 듯 순식간에 웃음기 사라진 음성으로 사무적으로 대꾸했다.
...당장은 일을 하실 수 없다는 말씀이죠? 알겠습니다...
그가 보인 호의의 크기와 정도에 비하면 마지막 통화는 지나치게 짧고 간단했다.
그의 호의에 배신을 때린 것만 같아 일말의 죄책감을 내포하고 있던 나는 차라리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내가 사회복지사가 되고 싶은 것은 진심이었음에도 요양보호사 면접을 보러(혹은 내 입장에서도 그센터와 센터장에 대한 면접자의 입장으로) 갔다는게 최초의 잘못 채워진 단추였을까....그럼에도 요양보호사로는 자격문제로 당장 일하기는 어려우니 사회복지사로 먼저 일해 보다가 안되겠다 싶으면 요양보호사로 일하겠다는 나의 제안에 비해,
센터장의 제안은 (자격도 없는 나에게)먼저 요양보호사로 한달정도 일하고 다음달부터 바라던 사회복지사로 일하게 해주겠다는 것인데...그냥 역겨움을 조금만 참고 견디었으면 될 것인데...하는 생각도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문제는 무자격상태로는 절대로 일을 해서는 안되는 게 맞다는 것이 현실이었다.
나중에 알아보니 무자격상태에서 일하다 건보공단의 실사에 적발되면 모두에게 이로울 것이 없는 것이다. 그 센터장도 틀림없이 그런 사실을 확인해 보았다면 알았을 텐데....무작정, 근무하던 요양보호사가 펑크낸 자리에 굳이 급하게 나를 끼워넣으려는 생각까지 한 이유가 나에 대한 무조건적인 호의때문이라면, 더욱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무척 모호하지만 나는 약간 두려웠다.
1년여 전 B주간보호센터를 개소하기 전 오랫동안 영업직에서 일했다는 센터장은, 면접하는 동안 열렬한 호의와 적극적인 채용의사를 내게 보이고 다소 무리할 수도 있는 제안을 선선히 수락하는 등의 태도로 나의 판단력을 흐릴뿐더러, 상대를 안심시키고 현혹하여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는 영업적 화술에 능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어쩌면 그는 자신이 운영하는 주간보호센터나 공동생활가정 등 사회복지시설 또한 영업을 하듯 돈벌이수단으로만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도 일어났던 것이 사실이다.
모든 사업은 이익추구가 기본이겠지만, 사회복지사업은 이익추구 우선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명감 같은게 필수요소는 아닐지라도 최소한 인간을 상대로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일방적인 피해의식에 빠져 순수한 그의 호의를 지나치게 곡해한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과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이기적이고 오만한 나자신이 물의를 일으킨 것은 아닌가 걱정스럽기도 했으나, 결정을 하고 나자 마음은 편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