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그곳에서는, 내가 그렇게 선망했던 밝고 쾌적하고 더없이 좋아보이던 그 장소에는 오히려 위생관념이라는 것이 부족했다.
위생관념이야말로 다중이 이용하는 시설에서는 특히 중요하고 철저하게 지켜져야 할 것이 아닌가.
일례로, 그곳 어르신들의 틀니세척에 관한 진실이다.
틀니는 나이 들어 치아가 소실되면 어쩔 수 없이 착용하게 되는 것이고, 그 틀니는 식사 후에는 이를 닦는 것과 마찬가지로 본인이 얼마든지 닦을 수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그곳의 친절하기 이를 데 없는, 희생정신충만하고 봉사와 사명감 출렁이는 요양보호사들과 심지어 사회복지사도 어르신들의 틀니를 손으로 들고 칫솔로 문질러 닦는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그 광경을 보고 아름답다, 보기 좋다, 나도 얼마든지 저렇게 해야지, 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점심, 저녁식사가 끝나면 어르신들은 거의 강제적으로 양치질을 하게 되어 있다.
지켜본 바에 의하면, 세면대 앞으로 간 어르신이 틀니를 꺼내면 옆에서 양치를 돕는 요양보호사는 그것을 받아들어 열심히 닦아주며 어르신에게는 그냥 잇몸만 남은 입안에 양치질을 하도록 유도한다.
그러면 어르신들은, 남의 틀니를 더럽다 하지 않고, 그것도 맨손으로 잡고 꼼꼼하게 닦아주는 요양보호사에게 무작정 미안해하고 고마워한다.
어르신들이 자신의 틀니를 닦기 싫다고 했을까.
그게 아니라면, 어르신들이 왜 굳이 남에게 본인 틀니를 닦게 하고 쓸데없이 고마워하게 하는가 싶었다.
나도 어르신의 틀니를 닦는 일에 봉착했다. 나는 맨손으로 하고 싶지 않았다. 다른 이들의 틀니세척 서비스 광경을 보며, 더욱이 맨손으로 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었다.
그래서 장갑을 찾았다. 일회용 장갑.
그런데 어디에도 없었다. 잠시 찾아다니다 보니 빨간 고무장갑이 있어서 급한대로 그것을 끼고 닦고 있었더니, 사회복지사가 다가와 나에게 화를 냈다.
왜 장갑을 끼고 틀니를 닦는냐는 거였다. 그러면서, 더구나 그 장갑은 청소용이라 안 된다며, 뭐가 더럽다고 그러냐며, 내게서 틀니를 뺏어들고는 자신의 맨손으로 헌신적으로 열심히 닦는 것이다..
보란 듯한 그녀의 행동에서, 요양보호사라면 너무나 당연한 일을 왜 너는 그렇게 더럽게 생각하느냐는 의미가 생생하게 전해져왔다.
우리 손은 보기와 달리 매우 더럽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손씻기가 중요하다고 하지 않는가. 만약, 정말로 맨손으로 틀니를 닦고 싶다면 먼저 자신의 손을 꼼꼼하게 닦고 소독한 후에 그것을 만져야 하지 않을까. 그게 어려우면 일회용장갑이라도 끼고 만져야 하지 않을까. 내가 잘못한 것일까.
또한 아무리 기운이 없는 노인일지라도 스스로 양치질을 할 수 있을 정도라면, 그 자신의 틀니정도는 스스로 닦고 헹구어 사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까지 닦아주는 것은 지나친 친절이고 과잉보호가 아닌가.
나는 다른 주간보호센터에서는 어르신들의 틀니세척서비스를 어떻게 하는지 확인하고싶었다.
검색을 해서 확인한 결과, 틀니는 사용자 본인이 스스로 세척하고 있었을 뿐더러 서비스차원에서 틀니세정소독기를 설치해서 그것조차 스스로 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었다. 더불어 틀니를 어떻게 관리하는 것이 위생적인지 계속적인 교육을 실시하고 있었다.
두번째로 충격을 받은 것은 화장실 뒤처리를 돕는 경우였다. 아무리 기운이 없어도 사지가 비교적 온전한 경우에는 모두들 스스로 화장실 이용뒤 뒤처리를 홀로 하신다. 그러나 반신불수이거나 중등도 이상의 치매를 앓는 몇몇 분들은 스스로 온전히 마무리를 할 수 없어 뒤를 정리해 주어야 했다.
뇌졸증 등의 후유증인지 몸의 한편을 자유롭게 쓰지 못하는 경우에도 그분들은 최선을 다해 스스로 마무리하려 애쓰셨다. 그중 한 남자 어르신은 좀 심한 편이라 화장실이나 좀 먼거리 이동은 휠체어를 이용했다. 휠체어로 화장실로 가면 스스로일어나 홀로 볼일을 보지만 끝나면 다시 휠체어로 앉아야 할 때, 미처 완전히 추켜올리지 못한 하의를 바짝 올려주고 휠체어에 제대로 앉게하여 이동한다. 그후 변기에 튄 소변방울을 닦아내는 일을 하면 된다.
그중 '언니'라고 불리기를 원하는 비교적 젊은 여자어르신은 치매가 초기를 지난 듯 보였는데, 사지활동이나 거동은 완전 정상이지만 화장실에서 뒤처리를 스스로 하지 못한다고 했다. 그분의 경우는 화장실 볼일이 끝나면 요양보호사가 들어가서 물티슈로 마무리 지어주고 옷을 제대로 입혀주어야 했다.
바로 그때, 나는 일회용장갑을 사용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곳에서는 그게 아니었다. 얼덜결에 그분의 뒤처리를 처음 하게 되었을 때, 맨손으로 물티슈를 펼쳐들고 나는 손에 오물이 묻을까봐 떨고있는 나를 깨달았다. 그래서 가까스로 끝낸 뒤 선임 요양보호사들에게 물었다.
화장실 뒤처리에 일회용장갑을 쓰지 않느냐고. 그랬더니 자기들은 쓰지 않는다고 말하며 그것이 당연하다는 듯이 설명했다. 즉, 더 심한 경우에는 중증치매 어르신이 변을 본 기저귀를 갈아주는 상황일 때도 있는데, 그때는 재빨리 대처하느라 일회용장갑을 찾아낄 겨를이 없다고 한다. 그래서 너무 급해서 그냥 맨손으로 쓸고닦고 처리를 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직접 그런 똥기저귀처리하는 일을 해보지도 않았으면서 일회용장갑이나 찾고 있는 나를 가소롭게 여기는 듯했다.
나는 그들이, 지나치게 맹목적이고 무조건적인 헌신과 희생만이 정답이라는 착각에 빠져있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들었다.
내가 그때까지 경험한 것은소변 후 단순 뒤처리 도움정도였으나, 그 상황에서도 나는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만약, 계속 요양보호사 일을 이어가게 된다면 똥싼 기저귀를 처리하고 몸에 묻은 오물을 씻기고 속옷을 갈아입히는 일까지도 결국은 경험하게 될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그 상황에서, 그들의 말대로라면 나역시 처절하게도 맨손으로 그 모든 과정을 해내야만 한다는 의미가 된다....시간이 갈수록, 아직까지 닥치지 않았지만 언제든 내 순서가 될 그 일이 공포감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나는 물론 내어머니가 설사병이 나서 설사를 해대느라 망쳐버린 속옷과 이부자리까지 처리하고 어머니를 씻기는 경험을 하룻밤새 몇차례씩 몇번이나 했던 적이 있다. 그럴 때, 나는 비명을 질렀다. 끔찍한 냄새때문에, 비명을 지르기라도 하면 냄새가 사라지기를 바라듯 그렇게 꽥꽥 소리를 질러가며 '사고'를 수습하곤 했었다.
그렇기에 요양보호사들이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하게 될 그 일들도, 내 어머니라고 생각하면 할 수 있겠거니 하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 모든 일을 맨손으로, 나를 보호할 얄팍한 일회용 비닐장갑 한장 없이 해내야한다는 현실은 생각보다 무척이나 막막하고 두려운 일이 아닌가.
누구나 늙고 병들어 자신의 배설물조차 스스로 처리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를 수 있다. 나역시 수십 년 후에는 어떤 몰골로 소멸되어갈 지 짐작조차 할 수 없다. 그럼에도, 나는 아직 그분들을 진실로 내어머니처럼 여기고 희생과 봉사정신만으로 감당해낼 깜냥이 없지 않은가.
정말로 다급한 상황이어서 위생장갑을 찾지 못하고 자의적으로 맨손으로 처리를 하는 경우가 있을 지언정, 원칙적으로는 무조건 위생장갑을 끼고 일을 처리하도록 규정되어야 하지 않을까. 위생장갑을 쓰다 잘못하면 대상자의 몸에 스크래치를 낼 수 있어서 오히려 안쓰는게 낫다는 소리까지 해가며 맨손봉사를 강요하는 듯한 그들의 태도를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장갑을 끼면 희생이나 헌신이 아니고, 맨손으로 직접 스스로를 최대한 희생해가며 최악의 상황을 감당해나가는 자만이 실력있고 오래 살아남는 헌신적인 요양보호사로 인정받는 것일까.
또다른 상황이 하나 더 있었다. 그것은 목욕시간이었다.
출근 3일째, 목욕시간이 되었다. 요양보호사 둘이 하루에 5~7명을 목욕시키는 것인데, 그날은 두분이 빠져서 다섯명만 담당하게 되었다. 나와 또 한명, 선임 중에서 나와 동갑인 요양보호사와 함께 했다. 화장실에 목욕의자를 놓고 어르신 한 분씩 탈의 후에 앉게 한다.
나는 등 뒤에서, 다른 한 명은 앞쪽에서 동시에 거품타월로 재빨리 온몸을 문질러 씻기고 머리를 감기고 더운물을 앞뒤로 뿌려가며 씻어드리는 것이다. 한명 두명까지는 괜찮았으나 세 명째부터 땀이 나기 시작했다. 목욕이라기 보다 샤워가 끝나면 재빨리 옷을 입히고 드라이어로 머리를 말리고 양말까지 신기고 인증샷을 찍으면 끝이 난다.
그 과정에서도 나는 다시 의문을 갖게 되었다.
거품타월에 비누를 묻혀 온몸을 문질러 닦아낸 뒤에는 물을 뿌려가며 헹구어야 하는데, 그때는 맨손으로 어르신들의 몸을 내 몸처럼 문질러가며 닦아주는 것이다...이 역시 맨손으로. 서둘러 다섯 명을 해치우느라 당시에는 별로 생각을 못 했는데 이후 가만히 생각하다 보니, 왜 목욕을 맨손으로 보조해야 하는지 다시 한번 의문이 생겼다. 더구나 그날의 목욕대상자 중에는 남 자어르신도 있었다.
뭐, 다 같은 동등한 어르신일 뿐 남자 여자를 왜 따지느냐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좀 따지는 생각이 들었다. 여자 어르신이야, 내 어머니같아서 맨손으로 할 수도 있다고 치자, 하지만 남자어르신은 내 아버지가 아니고 어쩌고...하는 생각이 이어지다보니 그분들의 몸 비눗기를 씻어내느라 맨손으로 등과 어깨를 문지르고 겨드랑이를 문지르고 했던 상황이 머리속에서 재생되다 보니 왠지, 목욕 도움 역시 맨손이 아닌 장갑을 끼고 이루어졌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이르렀다.
나는 집에 돌아와 주간보호센터를 2년 넘게 이용중인 내 어머니께 여쭈었다.
어머니는 나의 이야기를 듣고 나만큼 깜짝 놀라셨다.
왜 맨손으로 남의 틀니를 닦느냐며, 그보다, 왜 틀니를 남이 닦아주느냐며, 모두들 자기가 닦는다는 것이었다.
또 배변후 뒤처리를 도와줄 때도, 목욕서비스를 시행할 때도 어머니의 주간보호센터에서는 무조건 위생장갑을 착용한다는 것이다. 특히 목욕서비스시에는 고무장갑을 낀 위에 때밀이 타월 등 거품타월을 장갑처럼 끼거나 사용해 몸을 닦아준다는 것이다.
내가 그곳에서 사회복지실습을 할 때도 나는 어르신들이 직접 식후에 양치를 하면서 자신의 틀니를 세척하는 것을 보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화장실도움이나 목욕서비스는 사회복지 실습생에게는 시키지 않아서 해보지는 않았지만 요양보호사들이 수시로 위생장갑을 끼고 왔다갔다 하는 것을 본 기억이 있다.
나는 빨리 결단을 내려야겠다고 결심했다.
수많은 고민 끝에 힘들게 선택한 요양보호사라는 직업을 내가 과연 얼마나 오래 할 수 있을지 갑자기 자신이 없어졌다.
막연히 선망했던 사회복지시설에 들어오긴 했으나 막상 현장에 뛰어들어 부딪히는 현실은 생각이나 이상과는 너무나 달랐다. 특히 센터장의 반말컨셉이나 기본적인 위생관념이 없이 무조건 맨손으로 헌신하기가 기본원칙으로 자리하고 있는 이곳에서, 정말로 똥기저귀 치우기에 직면하는 것은 그야말로 공포였다. 그 공포를 이길 자신이 없었다.
그리고 출근 이틀째, 나는 센터장에게 퇴사를 통보했다.
위에 열거한 외에도 내가 꼽은 사항은 더 있으나 나는 다만, 생각과 달리 힘들어서 오래 못할 것 같아서, 당신들에게 피해줄까봐 그냥 빨리 끝내겠다고 말했다.
센터장은 약간 어이없어했다.
실은 나역시, 내가 가장, 나스스로에게 실망하고 있었다.
아무리 힘들어도 최소 한달은 버티자는 것이 내 신조였는데 이건 불과 이틀만에 백기를 들어버리다니. 그런데 그게 부끄러워서 참고 버티기에는 내가, 봉사정신이 희생정신이 무척 부족하다는 사실을 깨달아버렸다.
내가 할 수 있겠다고 교만했던 것은 단지 내어머니의 경우였던 것이다.
내어머니가 아닌 사람을 내어머니라고 여기려면 나는 오히려 위선자가 되어야만 할 것같았다.
센터장은 처음엔 그래도 한달은 일해주라고하더니 다음날 곧바로 다른 사람을 구했다며 그럼 이번 주까지 하고 종료하자고 했다. 나는 너무나 고마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