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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생산직?

_한없이 무모한, 뻘짓은 어디까지

by somehow May 05.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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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사가 되고자 하는 바람은 어느새 조금씩 퇴색되어갔다...나는 조금씩 희망의 크기가 줄어드는 만큼 부풀어가는 낙담의 크기를 하루하루 가늠하기 시작했다.


3월말이 다 지나도록, 매일 아침 워크넷 구인공고앞에서만 부질없이도 잠시 부풀었다가 이내 사그라드는 기대감때문에 조바심에 사로잡혀갔다.

이러다가는, 결국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는 것은 아닐까 두려웠다. 아무리해도 사회복지사는 면접도 어려운 현실이라면...그렇다면, 예전처럼 생산직은 어떨까 싶어졌다. 혹시 이제는 작년보다도 한살이나 더 먹어버린 마당에 생산직도 못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초조해졌다.


4월초, 나는 생산직을 키워드로 구인공고를 시험삼아 검색했다.

집에서 가까운 거리의 생산직 공고가 많이 있었다. 그중에서 해볼만한 공고에 두어 곳에 시험삼아 무작정 이력서를 보냈다. 하나는 소형가전제품의 부품 일부를 조립하고 포장하는 A전자업체, 또 하나는 국내에 체인점을 운영하는 외식업체의 메뉴에 해당하는 식품을 가공 포장하는 B외식업체.


뜻밖에도 두곳 다 곧바로 면접을 볼 수 있었다.

A전자는 집에서 15분정도 거리였고 면접은 무난하게 끝났다. 며칠 후 합격여부를 알려주겠다고 했다.

B외식업체는 그보다는 조금 먼 거리였으나 이름을 대면 아는 사람은 알 만한, HCCP인증을 받고 제대로 규모를 갖춘 대기업이었다. 그곳의 면접자도 나를 좋게 봐서 그자리에서 바로 채용을 결정하고 첫출근날짜까지 잡아주었다. 놀랍게도 더 팩토리_D에서의 식품생산직 이력을 경력으로 인정해주는 듯 월급도 기본시급 보다 높게 책정해 준다는 것이다.  


두 곳 다 각각 하는 일은 다르지만 충분히 할 만하고 해볼만한 일이었다.

나는 두 곳의 면접을 마치고 나오며 감사하고 안도했으며, 한편으로는 걱정과 근심에 사로잡혔다.


맨처음 구직에 나섰다가 가장 먼저 나를 요양보호사로 잠정 채용해준 A주간보호센터의 P대표가 마음에 걸렸다. 그녀는 내 요양보호사 자격증이 나오는대로 나를 채용해주겠다고 그때까지 친절히 기다려주겠다고 했던 사람이다. 그토록 넓은 아량을 베풀어준 사람을 생각할 때마다 마음속에 무거운 돌 하나를 얹고 다니는 기분이었다.

그의 친절을 뒤로 하고 더 나은, 혹은 더 마음에 드는 일자리가 없는지 나는 눈에 불을 켜고 찾아다니는 꼴이 아닌가....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친절과 배려가 감사하기는 하지만 그곳에서 일하고 싶은 마음은 갈 수록 희미해져만 갔다. 그대신, 어떻게 그 친절을 배신할 것인지...그 방법을 연구해야할 지경에 이른 것이다.


그즈음 4월13일이면 자격증이 나온다는 연락을 받았을 때, 나의 심적부담감은 굴러오는 눈덩이처럼 나를 향해 전속력으로 닥쳐왔다. 



생산직 두 곳의 면접을 보고 나온 날, 나는 결국 A주간보호센터를 찾아갔다.

그리고 미리 머릿속으로 꾸미고 다듬어낸 온갖 거짓말로, (부재중인 P대표 대신 )센터장에게 요양보호사 일을 할 수 없을 것같다고 둘러댔다. 그들이 나에게 베풀어준 배려에 비하면, 나는 너무나 큰 죄를 짓는 것만 같았다.

그럴때, 나는 만만한 내 어머니를 끌어들여 꾸며대었다.

구순의 어머니가 갑자기 설사병이 도져서 병원 입퇴원을 반복중이라며, 그래서 당분간은 일을 하지 못할 것같다고, 그래서 나를 믿고 기다려준 당신들께 미안하다고 입술에 침을 바르지도 못한 채 둘러댔다. 사들고 간 비타500박스가 나의 부끄러움을 씻어주기만을 바라며... 그래도 면접관이었던 P대표에게도 직접 얘기를 해야 할 듯해서 오후에 다시 전화로 그녀에게 연락을 했다.

그녀는, 이미 들어서 알고 있다며, 오히려 나를, 나의 어머니를 걱정했다. 그러면서 어머니가 회복되시면 그때 오라고, 그때까지 다른 사람 채용하지 않고 기다릴테니 오라고까지 말을 해주는 것이다...아...나는 그녀의 깊은 배려심에 감사했고 진심으로 부끄러웠다.

요양보호사 자격증도 없는 나를, 무작정 믿고 채용을 약속해주고도 어머니를 돌봐야해서 일을 못하겠다고 하는데도 나중에라도 일하게 해주겠다니...나는 죄책감에 휩싸인 채, 일단은 다른 사람을 채용하시는게 좋겠다고 말하고 그럼 나중에라도 도움이 필요하면 연락드려도 되겠느냐고 말했다. 그랬는데 또 얼마든지 그러라고 까지 하는게 아닌가.


그날 나는 나의 이기심만으로 가득찬 전화통화를 끝내며 어쩌면 그분들은 정말로, 단지 돈벌이를 위해 그 일을 하는 것만은 아닌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간신히...조여오는 죄책감을 털어내자 차라리 홀가분해졌다. 이제는 더이상 A주간보호센터와의 약속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한가지 문제를 제거했으나, 여전히 새로운 문제들이 나를 골똘히 쳐다본다.

생산직으로 결정을 하는 것이 맞나? 하는 것, 그러면 둘중 어디로 가는가 하는것, 다행인지 불행인지 전자업체에서도 채용되었으니 며칠후부터 출근할 수 있느냐는 연락이 왔다.

그당시, 나는 식품회사는이미 채용결정된 상태였는데도 전자업체에도 알겠다고 대답을 하고 말았다.

각각 출근날짜가 달랐기에 둘중에서 좀더 마음이 끌리는 곳으로 결정을 해야할 것같다는 나름의 꼼수를 부리기로 결심한 것이다. 이렇게 쓰고 보니, 오라는 데가 많아서 골라야 할 정도로 내가 뭐그렇게 대단한가 하는 우스운 생각이 든다.

그렇게 고심하고 있을 때 요양보호사 자격증이 나왔다. 그렇게 기다리던.


그런데 정말 어처구니없게도 나는 또다시 불현듯, 요양보호사로 취업을 해볼까 하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되었다.  미친, 이 복잡한 실업자는 그깟 월급생활자로 돌아가기위해 이토록 분에 넘치는 잔머리를 몇날며칠동안 진땀나도록 굴려대기 시작했다.

예전, 어머니가 이용하는 주간보호센터의 문제점이 해결되지 않아, 다른 곳으로 옮겨볼까하고 찾아다녀보던 곳 중 한군데가 있는데, 거기도 면접을 한번 보았으나 요양보호사자격증이 없는상태여서 보류된상태였다. 이제 기다리던 자격증이나왔으니, 내가 보기에 참 좋아보이고 바람직하게 생각했던 바로 그 주간보호센터H. 센터장에게 문자를 보내봤다.

무모하게, 오늘 요양보호사 자격증 나왔는데, 혹시 채용은 끝났나요? 하고.


그러자 뜻밖에도 연락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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