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킷 22 댓글 4 공유 작가의 글을 SNS에 공유해보세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

_신입사원이 되다

by somehow Jul 17. 2022
아래로

2022년 5월 30일 첫 출근을 시작으로 나의 n번째 취업도전은 종료되었다.




햇수로 4년여 전 시작한 생산직근로자로서의 삶의 도전은 이제 어느덧 적당한 기착지를 찾은 듯 보인다. 이 글은 50대 중반의 나이에 무모하고도 절박한 심정으로 시작된 첫 도전_가장 열렬한 하루의 기록과, 첫 번째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을 작성하며 얼덜결에 경험한_더팩토리_D에서의 747일간의 기록더불어, 나름대로 3부작으로 완결되기를 소망하는 1966년생의 마지막 취업도전의 기록인 나의 n번째 취업도전기마침표를 찍음으로써 가장 열렬한, 취업 도전기라는 제목의 브런치북으로 마무리하기로 한다.


글쓰기를 전업으로 하기를 포기하자,
월급생활자로서의 삶에 도전할 수 있었고 
글쓰기로 돈벌기의 집착을 끝내자아이러니하게도
글쓰기가 즐거워지기 시작했다.
 
어쩌면 가장 솔직하고 열렬한 글쓰기는
돈과 가장 멀어질 때 가능한 것일까.
그러므로 나의 3부작은
고통스럽고도 즐거운 삶의 기록이며
그 누구도 아닌 나자신에게 가장 소중하다.



2년6개월여의 일천한 생산직 경력은 나름의 고난과 역경을 견디어가며 허물어지지 않도록 쌓아온 스스로에게는 더없이 대견하지만, 실제 생산현장에서는 그리 대단할 것 없는 그저그런 정도에 불과하다.

내 생의 마지막 직장이 되기를 바라며 들어간 B제약에는 나와는 비교도 안되게, 그 자신들의 삶을 성실하게 차곡차곡 쌓아온 베테랑 생산직 경력자들이 놀랍게도 수두룩했다. 그뿐 아니라, 나보다 10살이나 어리고 나와 함께 면접을 보고 입사한 동기 S역시 이미 다른 건강식품생산현장에서 쌓은 경력이 자그마치 6년이나 된다고 했다.

6년이라니! 한 직장에서.

아직도 한참이나 젊은 나이에.

나는 그녀의 경력에도 깜짝 놀랐으나 B제약의 기존 생산직 경력자들의 경력을 알고 나서는 한번 더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우선, 현재 나와 같은 나이의 부장은 이미 근속 10년이 넘었고 그 아래 과장과 팀장은 9년째이며, 다음 경력자들은 5년, 6년, 가장 짧은 경력자가 3~4년된 젊은 외국인 결혼이주 여성 2명도 있었다.

특히 팀원중 48세의 한 주부는 이미 5년이나 경력이 있었는데 몇 해전 건강상의 이유로 퇴사하여 치료를 마치고 1년 전 다시 입사한 경우도 있었다.

이들 포장, 생산직의 베테랑들은 모두 9명 정도. 나와 함께 한사람이 이번에 충원되면서 총 11명이 된 것이다. 나를 비롯해 전원 모두 주부들이다. 외국에서 온 결혼이주여성 중 베트남에서 온 J는 39세로 가장 젊고, 그다음 캄보디아 출신 41세의 C도 있다.

놀랍게도 이 두사람은 특히 일을 잘해서 사장에게도 신임을 얻고 있다. 두 사람 다 한국에 온지 8~9년씩 되었고 B제약에서의 경력도 5~6년씩되지만, 한국말 실력은 여전히 유창하다고 하기에는 어려운 정도여서 그들의 말을 나는 얼른 알아듣기 힘들다. 그럼에도 그들은 귀화하여 한국이름도 있는 어엿한 한국인으로서 일하는데 필요한 정도의 한국어, 한글 실력은 습득한 상태인 듯하다.

그들은 한마디로 '열심이다. 혹은 억척스럽다'라는 표현으로 성실성을 인정받고 있다.


그들중 누구보다도, 내가 가장 놀라웠던 인물은 J부장이다.

그녀는 나와 같은 나이인데 10여년전 입사한 이래 묵묵하고 꾸준하게 일하여 어느새 부장의 자리에 까지 오른 것이다. 면접당시 관리부 과장과 함께 나를 만나러 온 사람도 그녀였다.

나는 그녀가 존경스럽다.


그 아래 과장이라 부르는 L은 나보다 두어 살 아래이고 9년의 경력자였다.

그녀 역시 부장을 도와, 우리 생산직 주부사원들의 일일 업무 포지션을 정해주고 전반적인 영역에서 서포트하는 역할이다. 그아래로 각 팀장들이 있다.


그렇게 일을 익히고 사람들과 합을 맞추어가는 동안 일주일여가 지났으나 계약서는 쓰지 않은 상태였다.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나는 의아했다.

물론, 입사 당시의 고지에 의하면, 최초 두달은 수습기간이며 3개월째부터 정규직이 된다는 것이다.

그 수습기간의 의미는, 알고 보니 회사나름의 궁여지책이라고 해도 옳을 듯했다.

당연한 일이지만, 나보다 앞서 여러 명이 열심히 일해보겠다며 입사를 했을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 힘들다며, 손목이 아파서 혹은 허리디스크때문에 무거운 것은 들 수 없다며, 아니면 야근에 관한 얘기는 처음부터 들은 적이 없으니 야근은 절대로 할 수 없다며, 하루 이틀만에 혹은 계약서를 쓰자마자 다음날 그만두더라는 것이다. 번번이.

회사입장에서는 애써 일을 가르치자마자 뜻밖에도 갑자기 어이없는 이유로 일을 포기하는 지원자들때문에 골치를 앓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번에도 또 그럴지 모른다, 얘들은 또 얼마나 버티는가 보자, 하는 생각으로 일단 계약서쓰기를 보류한 채 그대로 지켜보기로 했다는 것이다. 입사 첫날부터 동료가 된 그들은 조심스레  내게 묻곤했다.

-힘들지않아요?

나는 대답했다. 아니요! 이게 뭐가 힘들어요?

-어머, 그래요? 다행이네요. 일 많이 해봤어요?

나는 또 한숨을 쉬며 농담 반 진담 반 대답했다.

-생산직은 다 이 정도는 힘들고 무거운 것도 들어야 하잖아요? 처음 해보는 일들은 낯설지만 시간이 가면 익숙해지겠죠. 저는 이 회사에 뼈를 묻을 각오로 들어왔어요!

나는 결코 단시간내에 그만둘 생각이 없었기에 나에 대한 그들의 근심과 의혹이 그리 달갑지는 않았으나 어쩔 수 없었다.


그럴수록 무조건 버티기, 성실하게 맡은 역할을 잘 해내기에만 관심이 있을 뿐.


나의 입사동기와 나는 언제쯤 계약서를 쓸 것인지 궁금해 하며 시간이 지났다. 2주 정도가 지루하게 흘렀을 때 관리부서에서 호출이 왔다. 드디어 계약서를 쓰는 것이다.

다름아닌,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


관리과장이 입사동기와 나를 앞에 놓고 계약서와 조건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현재 수습기간이지만 계약서는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서가 작성되었다.

현재의 수습기간도 근속기간에 포함된다. 연차는 첫달 만근을 시작으로 이후로 1년간 11개가 발생하는데, 첫 해에는 매월 만근을 할 때에만 다음달에 하루씩 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장기근속을 독려하기 위한 회사의 소소한 지원노력이라고 생각되는 부분은 바로, 근무기간이 1년이 넘어가면 그때마다 1년에 OOO원씩 급여를 더해 준다는 것이다.

다른 회사들은 어떤지 나는 모른다. 나는 다만, 내가 경험하게 된 두번째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 관계의 새로움에 대해서만 이야기할 수 있을 뿐이다.

그것은, 단지 몇푼의 돈이 아니다, 나는 그 의미에 감동받았다!

오래 다닐수록 회사측에도 직원에게도 긍정적이라는 사실을 이해하고 있다는 의미가 아닌가.


어느 사회적기업처럼, 정부에서 지원해주는 인건비나 따먹기 위해 사람을 고용했다가 효용가치가 없어지면 가차없이 거리로 내쫓아버리는 것이 아닌, 노-사 상생의 관계.


채용통보를 받고 입사하게 되었을 때, 보건증발급과정에 약간의 불편과 애로가 있었음에도 채용되어 감사했고 나이만 많고 경력은 길지도 않은 아줌마를 믿어 준데 대해 감사했다.

계약서를 쓰고 나자 드디어 마음이 제대로 놓였다.


이제는 정말로 성실하고 묵묵히 하루하루를 채워가는 일만 남은 것이다.




어느새 7월 중순.

나는, 어린이들의 최애 아이템 중 하나라는 건강기능식품을 생산하는 고단하고도 행복한 생산직 근로자이다.




https://brunch.co.kr/brunchbook/my600days


https://brunch.co.kr/brunchbook/thefactoryd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